‘1인 생활’ 시대 외톨이족이 늘어난다
  • 노진섭 기자·윤고현 인턴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9.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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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를 보고 나 혼자 노래하고….’ 여성 가수 집단 씨스타의 <나 혼자>라는 노래의 일부이다. 가사처럼 혼자 식사하고 노래 부르고 영화를 보고 여행하는, 이른바 외톨이가 많아졌다. 과거에 외톨이는 별종 취급을 받았다. 요즘은 20~30대뿐만 아니라 40~50대도 이 부류에 합류했다. 가족이 있어도 나 혼자만의 생활을 찾고 싶은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문화와 사회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별종에서 주류 취급을 받는 대상으로 등장한 셈이다.
외톨이족은 싱글족과 구분된다. 외톨이족은 사회와의 단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직장 등 사회 속에서 생활하면서도 사회생활 이후에는 남들과 어울리기보다 자신만의 시간을 추구한다. 싱글족은 결혼이라는 틀에 맞추기보다는 탄탄한 경제력을 갖추고 자신만의 삶을 만끽하며 홀로 사는 신세대를 말한다. 자유, 이상,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남들과도 관계를 잘 맺는다. 이들의 출현은 다양한 생활 방식의 표출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자칫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올해 초 서강대 구내식당은 창가를 따라 긴 테이블을 설치했다. 혼자 밥을 먹는 학생이 많아지자 창밖을 보면서 혼자 식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취업 준비생 윤성민씨(27)는 “혼자 밥을 먹는 학생이 워낙 많아서 혼자 식사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교문 밖에서도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기자는 지난 9월11일 연세대·홍익대·이화여대 등 대학가를 돌아보았다. 신촌역 부근에 있는 한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혼자 휴대전화, 노트북, 책을 들여다보는 젊은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른바 ‘외톨이 손님’이 22개 좌석 중에 10개 좌석을 차지했다. 85학번인 이종현씨(47)는 “매일 친구와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과거의 대학가 풍경과 사뭇 다른 분위기에 격세지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신촌 현대백화점 뒤편에 있는 일본 라면집을 찾았던 때는 오후 5시였다. 저녁 식사를 하기에는 이른 시각이지만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일명 ‘독서실 라면집’으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곳이다. 주문하는 것부터가 여느 식당과 달랐다. 입구에 있는 주문 자판기에서 음식을 선택하고 돈을 넣어 식권을 뽑았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복도 양옆으로 칸막이가 쳐진 테이블이 늘어서 있었다. 테이블마다 ‘1인석’ ‘2인석’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작은 테이블과 의자 한 개만 있는 1인석에 앉아 벨을 누르자 종업원이 와서 식권을 받아갔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을 들고 온 종업원이 음식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나가면서 커튼을 쳤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칠 일이 없이 식사할 수 있었다.

외형만 보면 일반 독서실과 흡사한 이 식당은 일본의 것을 본떠 만들었다. 오진권 사장은 “7~8년 전 일본의 1인 전용 라면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남 눈치를 보지 않고 혼자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이 한국에서도 성공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23개 좌석 중에 11개는 1인석이다. 하루 고객 1백50여 명 중에 70~80%가 혼자 오는 손님이다”라고 소개했다.

1인 좌석 늘리는 가게도 갈수록 증가

여럿이 가서 즐기는 노래방에도 최근에는 혼자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홍익대 주변에는 아예 1인 전용 노래방까지 생겼다. 지난 7월 영업을 시작한 이 노래방은 입소문을 타면서 요즘 문전성시를 이룬다. 여러 명이 이 노래방에 가더라도 각자 독립된 공간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 공간에는 노래방 기기가 없고 정면에 모니터와 고정식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헤드폰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가수가 음반을 녹음하는 음향실의 분위기와 흡사했다. 남궁종인 점장은 “손님의 30~40%가 내성적인 사람이어서 처음에는 망설이지만, 일단 노래를 부르고 나올 때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변한다”라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런 풍경은 대학가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서울 강남역과 신논현역 주변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지역에 있는 한 고깃집은 아예 간판에 ‘혼자 구워 먹는’이라는 말을 써붙였다. 어차피 마주 볼 사람이 없는 외톨이족이 바(서양식 술집)처럼 테이블에 앉아 고기 몇 점을 구워 먹는 곳이다. 지방의 음식점도 변하고 있다. 대구 범어동에서 두산동으로 뻗은 ‘들안길’ 주변은 온갖 식당이 즐비해서 맛집 거리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도 혼자 식사를 하는 사람을 위한 식당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한 초밥집은 최근 긴 테이블을 놓고 중간에 칸막이를 친 1인 좌석을 늘리는 공사를 마쳤다.

외톨이 문화는 20~30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난 9월11일 서울 잠원동에 있는 한 식당에서 만난 회사원 박재형씨(가명·43)는 혼자 간장게장을 저녁으로 먹은 후 인근 룸살롱에서 술을 마셨다. 그는 “가정과 회사에서 시달리다 보면 아내와 동료에게 털어놓지 못할 고민이 생긴다. 전혀 남남인 사람에게 고민을 말하고 술 한잔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밖에 없다”라며 외톨이 생활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 술집 영업책임자는 “중년 고객 10명 중 네 명은 혼자 오는 손님이다. 접대나 회식으로 술자리를 가져도 사실 그 자체가 직장인에게는 업무이고 스트레스이다. 이런 사람들이 혼자 이곳을 찾아 술을 마신다”라고 귀띔했다. 

지역과 나이 구분 없이 외톨이 분위기가 형성되자 기업들도 이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다. 대형 할인점에서 1인용 식판을 주요 진열대에 올렸고, 편의점에서는 도시락 종류를 늘렸다. 신세계 홍순상 홍보부장은 “외톨이족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끓여서 먹기만 하면 되는 간편 조리 식품이 대용량에서 1인용 소용량으로 나오고 있고, 단체급식에서나 사용하던 식판이 잘 팔려 잘 보이는 진열대로 위치를 바꾸었다. 두부를 4분의 1 토막으로 팔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편의점 CU(씨유) 관계자는 “1인 가족이 늘어나면서 대형 할인점 대신 편의점을 찾아 한두 품목을 사가는 사람이 늘었다. 이들을 위한 전용 제품이 나오고 있다. 기존 5백g짜리 케첩이나 마요네즈가 3백g으로 줄었다. 9백90원짜리로 작게 포장한 채소나 과일도 잘 팔린다. 예전에는 한두 종류밖에 없었던 도시락은 10종류가 넘는다. 올해 도시락 매출만 지난해보다 26% 늘어났다”라고 설명했다.

외톨이 문화는 인터넷 공간에서도 전파되고 있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는 ‘신촌 혼자 밥’ ‘강남 혼자 밥’ 등이 주요 검색어로 등장했고, 네티즌들은 혼자 밥 먹기 좋은 곳이나 경험담을 블로그·트위터·페이스북 등 인터넷 공간을 통해 공유한다. 

한 여대생이 서울 홍익대 앞 1인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은둔형’ 늘어나면 사회 문제로 번질 수도

심지어 사람 대신 가상의 인물과 대화하는 외톨이족도 등장했다. 일례로 채팅 로봇(심심이) 프로그램을 깔고 가상 로봇에게 말을 가르치고 대화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내려받은 횟수는 2천4백만건이고, 하루 사용자 수는 65만명에 달한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블로그씨’라는 가상의 인물로부터 매일 질문을 받고 각자 다양한 대답을 블로그에 올린다.

외톨이 문화는 인구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통계청의 ‘2010년 인구 주택 총조사’를 보면, 서울시의 전체 가구 수에서 1인 가구 비율(24%)이 처음으로 4인 가구(22.5%)를 앞질렀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990년 1백2만 가구였던 싱글족은 지난해 4백36만 가구로 4.3배 늘어났고, 2020년에는 5백88만 가구로 증가해 전체 가구의 3분의 1에 육박할 전망이다. 미혼·이혼·사별 인구의 증가로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지난해 이들의 소비 지출액이 50조원으로 전체 가구 소비 지출액의 12%를 차지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사람 관계가 무서워서 스스로 외톨이가 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방글라데시와 같은 나라에서는 이런 현상이 없다. 즉, 경제 수준이 어느 정도 되면서 나타나는 다양성으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외톨이 문화가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무한 경쟁 시대로 접어들면서 가족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다. 그렇다고 사회적 공동체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교육받은 동양의 문화가 서양의 개인주의와 결합하면서 개인이 파편화된 모습으로 나타났다”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과 어울릴 정도로 한가롭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도 있다. 대학생 이주형씨(23)는 “다른 친구들은 취업 준비로 저만치 달려가는데, 나만 철없이 사람들과 어울리기에는 부담이 있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자애씨(24)는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혼자 시간을 보내면 시간도 아끼고 이것저것 결정하는 데에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아서 좋다”라고 말했다.

또, 공동체 생활에 대한 반동도 외톨이가 늘어나는 배경이다. 직장인 김형수씨(40)는 “회식을 하러 노래방에 가서 상사 비위를 맞추기 위해 손뼉을 치고 좋아하지도 않는 뽕짝을 부르는 것이 싫다. 노래방은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 아니라 쌓이는 곳이다. 또 직장 동료와 술을 마셔도 예전에는 서로 위안이 되었지만, 지금은 술 취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거나 넋두리를 녹음해서 인터넷으로 퍼뜨려 오히려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아예 소통을 꺼리는 것은 아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그러나 개방적일 것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 일부 외톨이족은 폐쇄성을 유지하기도 한다. 자신의 기호나 생각에 맞지 않은 사람들은 배제하는 것이다. 

외톨이가 자칫 은둔형 외톨이로 변질되면 사회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은둔형 외톨이란 몇 개월 이상 가족 외에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책임성이 결여된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에서 은둔형 외톨이 사례가 나온 것은 2000년 초반이며, 현재 그 수가 1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톨이가 무책임성을 띠게 될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주변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혼자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무책임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르면 ‘묻지 마 범죄’와 같은 현상이 늘어날 수도 있다. 세대·지역·정치 갈등이 심해질수록 아노미 현상은 짙어진다. 빈익빈 부익부가 아니라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신세대와 구세대로 나뉘지 않고 중간 세대인 40대를 기준으로 화합할 수 있는 공통적인 가치 기준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외톨이, 미국·일본과 어떻게 다른가 

한국의 외톨이 문화는 일본과 미국의 개인주의와는 다르다. 일본에는 남의 눈치를 살피는 개인주의가 있다면, 미국에는 남을 의식하지 않는 개인주의가 있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배려는 공통으로 깔려 있다. 한국의 외톨이 문화는 이 배려가 부족한 상태이다. 이 때문에 외톨이 문화를 ‘특징을 규정하기 힘든 개인주의’로 사회학자들은 보고 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 아노미(무규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도덕의 틀, 규범의 가치가 무너진 탓이다. 빠른 사회 변화에 맞는 새로운 규범이 등장하지 않았다. 따라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공동체의 역할이 작아졌다. 또 인간관계, 친밀함, 사람에 대한 평판도 계량화되고 있다. 대학에서도 친구 관계를 인적 자본 네트워크에 투자한다고 생각하는 흐름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가정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자녀 위주로 바뀌었다. 또 자식을 한두 명만 두면서 아이들이 자신만 생각하는 개인주의 성향을 띠게 되었다. 이들은 단순히 외톨이로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생활에서 기성세대와 충돌하기 시작했다. 직장 이직률이 높아지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인식 변화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본의 이지메는 단순한 외면이나 따돌림이다. 그러나 한국의 왕따는 폭력이 동반된다. 또 반따(학급 전체가 한 학생을 따돌림), 전따(전교생이 한 학생을 따돌림)도 한국에만 있는 따돌림이다. 이런 청소년이 성인이 되면 큰 사회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 외톨이 문화에 배려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에게 배려 교육을 해야 한다. 일본 등 외국은 배려 교육을 정기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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