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한류’ 현장으로 외국인 의사들이 몰려온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8.2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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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천명씩 국내 유명 병원에서 연수받고 돌아가

지난 8월22일 서울 신촌의 세브란스병원에서 노성훈 위암 전문 외과 교수가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수술대 주위에서 외국에서 온 연수 의사들이 수술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재미교포 샘 윤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는 미국에서 위암 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위암 권위자이다. 그는 2008년 위암에 걸린 어머니를 서울대학교 병원에 맡겼다. 당시 샘 윤 교수의 어머니를 수술했던 양한광 서울대병원 위암센터장은 “(윤교수의 어머니는)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고, 그 후 윤교수와 가끔 전화로 상의한다. 그가 서울대병원에 수술을 맡긴 이유는 한국의 위암 치료 성적이 세계 최고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은 해마다 약 9백건의 위암 수술을 한다. 세계 최다 수술 실적이고, 수술 후 사망률도 0.6%로 유럽(10%)보다 낮다.

세계적인 의사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수술을 맡길 정도로 한국 의술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 과거에는 환자들이 세계 유명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 싶어 한다. 심지어 외국 의사들이 한국 의술을 배우기 위해 이 땅을 찾는다. 한 해 1천명에 육박하는 외국 의사들이 한국 의술을 배워 간다. 한국 의술은 또 세계 의대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8월22일 서울 신촌의 세브란스병원 수술실에서 외국인 의사들을 만났다. 위암 수술의 세계적인 권위자 중 한 사람인 노성훈 외과 교수의 수술을 보려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페루 의사도 있었다. 노교수의 수술법은 세계 의대생들이 공부하는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개발한 ‘전기소작기 수술법’은 세계 위암 치료의 표준이 되었다.

노교수는 “볼펜처럼 생긴 이 기구는 고열로 출혈 부위를 지져 지혈한다. 신경외과에서 미세혈관의 출혈을 지혈하기 위해 사용하던 도구였다. 나는 이를 수술칼 대신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피가 나지 않는 수술이 가능하므로 시야가 좋아서 수술 부위를 정교하고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다. 환자는 수혈을 받을 필요가 없으므로 수혈에 의한 감염이 사라졌다. 기존에 4시간이 걸리던 수술 시간이 2시간으로 줄어들었고, 환자는 수술 다음 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입원 기간도 2주에서 1주로 줄이는 효과도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고 암센터로 꼽히는 미국 메모리얼 슬로언케터링 암센터의 수술 후 사망률이 2%인데, 노교수의 수술법 개발로 한국 병원의 수술 후 사망률은 0.5%로 낮아졌다. 수술 후 생존할 비율(5년 생존율)도 78%로, 외국보다 20%포인트나 높다.

위암 수술 종주국 일본을 넘어서다

지난 8월22일 노성훈 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가 외국인 의사들에게 수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1996년 그리스에 세계 위암 대가들이 모였던 때의 일이다. 노교수가 이 수술 사례를 발표하자 당시 위암 수술 종주국이었던 일본 의사들이 깜짝 놀랐다. 도쿄 대학 병원 교수는 한 달 후 한국을 찾아 직접 눈으로 수술을 확인했을 정도로 한국 의술을 믿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 무렵부터 일본과 한국의 위암 치료 수준이 뒤집혔다. 2000년부터 일본으로 유학을 가던 한국 의사들은 크게 줄어들었고, 대신 일본 의사들이 한국을 찾기 시작했다.

노교수의 수술을 참관한 에이 타나카 일본 교토 대학 병원 교수는 “내 스승도 한국에서 수술을 배웠고, 나도 그런 목적으로 한국에 왔다. 수술하는 방법은 비슷하지만 한국은 수술 경험이 풍부하고 다양하다”라고 말했다. 에르란 산토스 페루 곤잘레스프라다 메디컬센터 교수는 ”나는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했지만 위암 수술법은 한국에서 배우고 싶었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배워서 페루에서 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한국 의술이 세상에 없던 방법을 개발해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른 대표적인 분야는 장기 이식이다. 특히 간 이식 분야는 독보적이다. 한국은 1998년 무렵부터 간 이식을 시작했는데, 당시 서울아산병원의 수술 성공률은 70%였다. 나쁘지 않은 결과였지만, 나머지 30%의 환자는 사망하는 셈이었다. 의료진은 30%를 살리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간을 이식할 때 주요 혈관(중간정맥)이 없어서 환자가 사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 끝에 혈관을 만드는 방법을 찾았다. 환자의 허벅지 정맥의 일부를 잘라내 간 혈관으로 이용하는 고난도의 기술이었다. 1999년 첫 수술이 성공하자 한국의 간 이식 성공률은 95%로 높아졌다. 당시 세계 최고의 성공률을 자랑하던 미국 스탠퍼드 대학 병원보다 10%나 높은 수치였다.

2000년에는 두 사람의 간 일부를 떼어내 한 환자에게 이식하는 방법(2 대 1 간 이식)도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체형이 커서 큰 간이 필요하지만 여의치 않을 때에는 두 사람의 간을 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방법이다. 심지어 혈액형이 다른 두 사람의 간을 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도 성공했다. 실제로 혈액형이 다른 딸과 남동생으로부터 두 개의 간 일부를 이식받아 새 생명을 찾은 사례가 있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를 인정받아 2008년 서울아산병원 간 이식 팀은 세계 간 이식학회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당시 간 이식 분야의 선진국인 일본을 따돌리는 순간이었다. 같은 해 미국 ABC방송이 이 병원을 찾아 간 이식 수술을 취재해 보도할 정도로 한국 의술은 세계적인 관심사였다.

이 병원은 거의 매일 간 이식 수술을 진행하며 현재까지 3천5백건이 넘는 세계 기록을 세웠다. 이 병원 간 이식 팀의 황신 교수는 “이 병원에만 미국·일본·유럽 등 20여 개국에서 연간 100명의 장기 이식 전문의들이 찾는다. 현재도 일본인 의사 여섯 명이 우리 수술법을 배우고 있다. 혈관을 만들어 이식하는 방법이나 2 대 1 이식 등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의학 교과서에도 실려 세계 의사들이 공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여러 장기를 한 번에 이식하는 수술도 성공했다. 조은서양(7)은 소화기계가 운동하지 않는 희귀병에 걸렸지만 몸속 장기 일곱 개(간·소장·췌장·위·십이지장·대장·비장)를 동시에 이식하는 수술을 통해 건강을 회복했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장기 이식 의사가 생체 간 이식 수술을 하려면 조건이 있다. 미국 국립장기이식센터가 정한 일정 시간 이상의 생체 간 이식 수술에 참여해야 한다. 세계 최고 병원 중 하나인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 장기이식센터의 간 이식 의료진은 삼성서울병원을 연수 병원으로 정했다. 신장 이식의 대가인 로버트 몽고메리 교수가 2005년 이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 연수를 받은 사실은 세계적인 화젯거리가 되었다. 이석구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예전에는 국내 의료진이 장기 이식 수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이나 유럽으로 연수를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생체 간 이식 수술 분야만큼은 한국의 생존율과 수술 성공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외국 의사들이 한국으로 몰려온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 브라질 의사들이 서울대병원을 찾아 수술을 참관하고 있다. ⓒ 서울대병원 제공

미국 간 이식 의료진의 연수 병원이 한국에

폐암 수술 분야도 한국이 내세울 만하다. 2009년 세계폐암학회에 따르면 폐암(1기)의 수술 후 생존율은 73%이다. 2010년 삼성서울병원의 폐암 수술 후 성공률은 82%로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3기 말기 폐암 환자의 수술 후 생존율도 18%로, 국제 평균 생존율과 2배 차이를 보였다. 이 병원은 1994년 처음 폐암 수술을 시작한 후 18년 동안 5천여건의 폐암 수술을 진행했다. 최근에는 연간 6백~7백건을 수술한다. 수술 건수뿐만 아니라 수술 방법도 진화했다. 가슴을 절개하는 과거의 수술은 환자에게 신체적인 부담이 컸다. 지금은 전체 수술의 58%를 내시경(흉강경)으로 한다. 수술 후 환자 회복이 빠르고 부작용도 줄었다. 이와 같은 수술을 보기 위해 최근 3년 동안 44명의 외국 폐암 전문의들이 이 병원에 다녀갔다.

한 명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여러 의사가 힘을 모으는 점도 한국 의료의 수준을 높인 밑거름이다. 지난 8월21일 국립암센터에서는 50대 난소암 3기 환자가 수술을 받았다. 아침 8시에 시작한 수술은 오후 4시에 끝났다. 난소암은 다른 장기로 잘 옮아가는 특징이 있다. 이날 수술에서는 자궁 전문의뿐만 아니라 대장·위·간·폐 등 다른 장기 전문의들도 시간 간격을 두고 차례로 수술을 진행했다. 난소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의 암도 제거한 것이다. 외국에서는 보기 드문 방법이라고 한다.

박상윤 국립암센터 자궁암센터장은 난소암 수술의 범위를 넓히면 수술 합병증도 줄어들고 생존율이 많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협동 수술을 10여 년 동안 발전시켰다. 그 결과를 최근 유럽에서 열린 학회에서 발표했고, 외국 의사들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못 믿겠다던 미국 난소암 대가 세 명이 최근 국립암센터를 찾아 눈으로 수술을 확인한 뒤로 유럽·미국·일본 등 의료 선진국 의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박센터장은 “국제학회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떻게 한국 의사들이 협진을 하는가이다. 사실 유럽은 산부인과병원·소아과병원 식의 단일병원 개념이고, 미국은 종합병원 형태이지만 의사들이 자신의 환자만 보려고 하고, 일본도 보수적이어서 협진이 어렵다. 반면 한국 의사들은 자신의 환자를 진료하다가도 필요하면 시간을 내서 다른 환자를 수술한다. 내 환자, 네 환자를 가리지 않는 한국 고유의 특성이 환자 생명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난소암 수술 후 세계 평균 생존율은 3기가 35%, 4기가 20%인데, 한국에서는 각각 55%와 60%이다”라고 말했다.

요즘은 로봇 수술을 받는 사람이 많다. 로봇이 스스로 수술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조종하는 수술 기계이다. 같은 수술 로봇을 사용하더라도 의사의 손재주에 따라 수술 후 환자의 상태는 달라진다. 한국인은 손재주가 좋아서 미세혈관이나 머리카락보다 가는 신경을 훼손하지 않고 수술한다. 수술 로봇은 미국에서 만들었지만, 로봇을 이용한 표준 수술법은 한국 의사들의 손에 의해 개발된 것도 그 덕이다. 2007년 로봇 수술을 도입한 세브란스병원은 10여 개 질환에 연간 1천건의 수술을 로봇을 이용해 진행한다. 현재까지 7천건의 수술 기록을 세우면서 표준 수술법을 작성해 세계에 발표했다. 2008년 이 병원은 아시아 공식 로봇 수술 교육센터로 지정되었고, 이후 미국·일본·이탈리아 등 25개국에서 4백여 명의 의사가 로봇 수술법을 배워갔다.

로봇으로 갑상선암을 수술하는 정웅윤 외과 교수는 “로봇 수술에서 전립선이나 산부인과 질환 분야는 외국이 앞서 있지만, 갑상선암·대장암·위암 수술은 한국이 최고 수준이다. 같은 로봇으로 수술하더라도 외국에서는 실패했지만 한국에서 성공한 사례가 부지기수이다. 그만큼 한국 의료진이 여러모로 방법을 개발하고 연구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로봇 수술법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은 수지아 빈티모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병원 교수는 “6개월 훈련 과정으로 로봇 수술법을 배우고 있다. 우리 병원에는 수술 로봇이 한 대 있는데, 전립선 치료에는 사용하지만 갑상선 수술에는 아직 적용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배운 로봇 수술법으로 갑상선 수술에 도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외국 의사들은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1년 동안 한국에 머무르며 한국 의술을 배운다.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병원들이 한국 치료법 강의를 듣기 위해 한국 의사들을 초청하는 사례도 부지기수이다. 연예·문화·전자 분야뿐만 아니라 의료에서도 세계적인 한류(韓流) 바람이 거세다. 


ⓒ 서울삼성병원 제공
지난 3월 두바이에서 긴급 환자가 한국으로 이송되었다. 현지 병원에서 간경변 말기 판정을 받은 모하메드 마리 씨(58·사진에서 가장 왼쪽)가 사망할 확률은 76%로 높았다. 그는 세계 최고의 의료기관을 찾다가 두바이 보건청의 추천으로 삼성서울병원을 택했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간 68%를 떼어준 막내아들 샤리프 씨(23)는 “처음에는 독일이나 싱가포르 병원을 고려했지만 삼성서울병원의 간 이식 성공률이 높다는 두바이 보건청의 말을 듣고 한국행을 택했다. 그 말대로 수술이 잘 되어서 아버지가 살았다. 두바이에 돌아가면 한국의 의료 수준을 많이 알리겠다”라고 말했다.

그를 수술한 조재원 교수는 “사전 검사를 해보니 간경변뿐만 아니라 2기의 간암도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의 생명을 담보하기 어려웠을 정도였다. 한국 의료는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했지만 아직 저평가된 부분이 있다. 이런 인식을 깨기 위해 고난도 환자 치료에 집중한다면 앞으로 외국 의사와 환자가 한국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의료 한류와 관련해서 임명철 국립암센터 자궁암센터 전문의는 “의료 기기를 국산화할 필요가 있다. 국산 의료 기기로 수술하는 법을 배운 외국 의사들은 자국으로 돌아가서도 한국산 의료 기기를 선호한다. 그 제자들도 한국 의료 기기로 환자를 치료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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