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지 않은’ 스마트폰이 불행의 씨앗
  • 이쳘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2.08.0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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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아이폰 혁명 이후 스마트폰 전략 부재로 고전…디스플레이 등 주요 계열사에까지 악영향

ⓒ 시사저널 사진자료

LG전자의 위기는 스마트폰 전략 부재 탓이다. 지금 경기 침체에 아랑곳하지 않고 불티나게 팔리는 IT(정보기술) 제품은 스마트폰이 유일하다. 삼성 전자 부문 계열사 소속의 한 최고경영자는 “지금 팔리는 것은 스마트폰밖에 없다. 삼성전자도 가전이나 TV가 당초 예상보다 팔리지 않아 악전고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LG전자는 2년 전만 해도 세계 휴대전화업계 3위였다. 노키아와 삼성전자만이 LG전자보다 앞서 있었다. 불과 3년 전인 지난 2009년까지만 해도 LG전자 휴대전화사업부(MC)는 1조2천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두었다.

“스마트폰 개발팀 규모, 삼성과 상대 안 돼”

애플이 지난 2008년 7월 아이폰3G를 발표하면서 스마트폰 혁명을 예고했다. 2010년 휴대전화 시장이 스마트폰 위주로 재편되자 삼성전자는 아이폰을 베끼다시피 하며 수개월 만에 갤럭시S를 내놓았다. 삼성전자 갤럭시S 개발팀 소속 연구원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사용자 경험(UX) 부문별로 연구원이 총동원되어 수개월 동안 하루 종일 일해야 했다. 야근이 비일비재했다. 숙소에 들어가면 잠만 자고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스마트폰을 바로 출시하지 못하면 시장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LG전자는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LG전자 휴대전화 개발팀 소속의 한 연구원은 “(LG전자) 스마트폰 개발팀은 삼성전자와 비교해 숫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이폰이 나올 때만 해도 휴대전화 시장이 이처럼 빨리 개편될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그로 인해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이 LG전자 휴대전화 사업부의 몰락을 초래했다”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사업은 단지 LG전자의 실적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2차전지(LG화학), 갖가지 부품(LG이노텍)부터 통신 서비스(LG유플러스) 사업까지 주요 계열사 실적에도 영향을 미친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 시리즈의 잇단 성공으로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하면서 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삼성SDI 같은 부품업체의 실적도 아울러 좋아지고 있다. 이에 반해 LG전자는 스마트폰 전략 부재 탓에 LG디스플레이·LG화학·LG이노텍 같은 계열사 실적도 아울러 곤두박질치고 있다.

하반기에 나올 ‘구본준폰’에 기대 걸지만…

LG전자 휴대전화사업부는 서둘러 스마트폰 위주로 사업 구조를 재편했다. 지난 2분기 휴대전화 판매량 중 스마트폰 비중은 44%까지 올라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LG전자는 지난 8월2일 ‘전략 스마트폰 옵티머스LTE2가 출시 70일 만에 50만대 넘게 팔렸다’라고 밝혔다. LG전자가 지금까지 출시한 스마트폰 가운데 판매 속도가 가장 빠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지난 5월29일 출시한 갤럭시S3는 50일 만에 1천만대가 팔렸다. 하루 판매량이 19만대나 된다. 옵티머스LTE2의 70일간 판매량이 갤럭시S3 3일 판매량보다 적다.

LG전자 경영진도 ‘스마트폰 사업에서 반전에 성공해야 위기 타개를 모색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올해 하반기에 중대 전환점을 마련할 계획이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7월23일 ‘하반기 글로벌 확대 경영회의’에서 “이제 제대로 된 스마트폰 하나 만들어 턴어라운드(전환)를 달성하자”라고 말했다. 정도현 LG전자 부사장은 지난 7월25일 2분기 실적 기업설명회에서 “하반기에 출시할 쿼드코어 LTE폰은 디스플레이, 전지, 카메라 모듈 같은 부품 개발 단계부터 LG그룹 계열사 역량을 총집결한 고사양 전략 모델이다”라고 말했다. 속칭 ‘구본준폰’이라고 불리는 새 스마트폰은 미국 통신 전문 업체 퀄컴이 개발한 쿼드코어스냅드래곤이라는 프로세서를 탑재해 통신 속도, 연산 처리 속도, 전지 성능에서 기존 제품을 압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LG전자 관계자는 “날이 선선해질 때쯤 (구본준폰이)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LG전자의 운명이 걸린 구본준폰의 앞날은 밝지 않다. 아이폰5가 출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구본준폰이 아이폰5와 정면 대결하는 셈이다. LG전자는 사양이나 성능에서 아이폰5에 뒤지지 않는 제품을 출시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구본준폰이 아이폰5와의 시장 경쟁에서 버텨낼 것’이라고 판단하는 산업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애플은 갤럭시S3의 돌풍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아이폰5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아이폰5 출시를 기다리는 대기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기존 아이폰4S 판매가 증가하지 않고 있다. 조성은 삼성증권 연구원은 “8~9월에 아이폰5의 대기 수요가 늘어나면 LG전자의 LTE스마트폰 수요가 예상치를 크게 밑돌 위험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구본무 LG 회장(맨 오른쪽)이 LG필립스 LCD 파주 공장 현장에서 구본준 LG필립스 LCD 부회장으로부터 브리핑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LG전자가 최근 위기에 빠진 이유는 스마트폰 못지않게 피처폰의 영향도 컸다는 분석이 있다. 지난 2009년 말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기 전까지만 해도 LG전자는 ‘피처폰 왕국’으로 불렸다. 초콜릿폰, 프라다폰이 잇달아 인기를 얻으면서 세계 시장 점유율 2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LG전자를 성공 반열에 올려놓은 피처폰이 오히려 회사의 발목을 잡았다. 후속타로 내놓은 프리미엄 피처폰인 메시징폰(모델명 LG-VX9200)의 판매가 부진에 빠진 것이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스마트폰 열풍이 불면서 새로 출시한 기기의 판매가 10%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미 생산된 제품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거액의 판매 지원금을 지출했다”라고 귀띔했다. 뒤늦게 스마트폰 개발에도 나서면서 LG전자는 지난 2010년에만 6천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다른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아이폰 열풍이 불면서 시장이 급속하게 스마트폰 체제로 바뀌었다. 하지만 LG전자는 피처폰 시장에서 여전히 우위를 차지했다. 단순히 스마트폰 대응 실패로 6천억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회사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지난 2009년 미국 버라이즌 사에 프리미엄 피처폰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되었다. 이로 인해 LG전자는 수천억 원 상당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버라이즌 사는 제품을 제때 팔지 못했다는 이유로 납품 가격을 20~30% 정도 깎았다. 기기 결함을 해소하기 위해 대규모 비용을 투입한 LG전자로서는 피해가 두 배로 커졌다. 결국 LG전자를 성공 반열에 올려놓은 피처폰으로 인해 회사의 위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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