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거름 팍팍 줘도 시들한 ‘신수종’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8.07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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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성장 산업으로 채택한 태양광·물 처리 등 녹색 사업에서 손실 이어져…“체질 개선 필요한 시점”

지난해 6월 독일에서 열린 ‘인터솔라 유럽 2011’에서 LG전자가 고효율 태양전지를 선보이고 있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LG는 수십 년 동안 TV·가전제품·에어컨·휴대전화를 팔아서 먹고살았지만, 10~20년 후에는 에너지 기업으로 간판을 바꿔달지 모른다. 2020년까지 태양전지와 수(水) 처리 등 이른바 녹색 사업의 비중을 그룹 전체 매출의 1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구본무 회장의 구상이다. 2015년까지 8조원을 투자해 10조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도 정했다. 그러나 몇 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 경영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LG는 미래 먹을거리로 녹색 사업을 낙점했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2010년 부회장직에 오르면서 ‘독립사업부’를 조직했다. 현재 솔라(태양광) 사업부, 물 처리 사업부, DS(네트워크 저장 장치) 사업부, EC(전기자동차 모터 등) 사업부가 각각의 독립사업부이다. LG전자 관계자는 “현재 주력 이외의 사업군을 독립사업부로 두고 있다. 대부분 그린 비즈니스(녹색 사업)이다. 이를 LG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추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초라한 독립사업부 성적표 ‘2년째 적자’

지난해 4월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LG화학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공장 준공식. 대통령의 오른쪽이 구본무 회장, 왼쪽이 김반석 LG화학 부회장. ⓒ 연합뉴스
점점 고갈되는 석유 등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환경 파괴를 줄이는 신재생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이 녹색 사업의 핵심이다. 이 중에서 태양전지 사업과 물 처리 사업에 LG전자가 공을 들이는 중이다. 태양전지는 태양광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장치인데, 인공위성에 날개처럼 달린 널빤지가 그것이다. LG전자는 연간 3백30메가와트(MW)인 생산 능력을 2013년까지 1기가와트(GW)로 확대하고, 2015년에는 이 분야 선두 기업으로 올라선다는 청사진을 그려놓았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경북 구미의 생산 시설을 직접 둘러볼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10.9MW급 영광 태양광발전 건설 사업(한국수력원자력의 사업)에 태양전지를 공급하는 업체로 선정되는 등 외형을 넓혀가고 있다.

LG전자는 국내외 생활 상·하수 등을 재사용해 물 부족을 해결하는 물 처리 사업도 챙기고 있다. 약 4백50조원 규모인 세계 물 처리 산업은 해마다 5%씩 성장하는 초대형 시장이다. LG전자는 이 사업에 10년간 5천억원을 투자하고, 2020년 세계 1위 자리에 오르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물 처리 전문 업체(대우엔텍)를 인수하면서 국내 사업에 물꼬를 텄다. 지난 2월에는 일본 기업(히타치플랜트테크놀로지)과 합작법인을 설립하면서 해외 시장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부서장이 아니라 경영자가 각별히 신경을 쓰는 독립사업부이지만, 지금까지의 성적은 초라하다. 2010년 4조6천5백억원이던 LG전자 독립사업부 매출은 지난해 4조5천억원대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4분기에는 태양전지 사업에서 1천억원 적자를 보는 등 독립사업부와 계열사에서 모두 1천6백5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열심히 품을 팔았지만 밑진 장사를 한 셈이다.

조직과 경영 방식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지난해 12월 독립사업부였던 PC(컴퓨터) 사업과 Car(자동차) 사업을 다른 부서로 떼어내는 등 조직을 재편했다. 정도현 LG전자 부사장(CFO)은 지난 2월 기업설명회에서 “독립사업부는 대체적으로 썩 좋지 않다. 태양전지 사업도 힘들고, DS(저장 장치) 사업도 어려운 상황이다. IT(정보기술) 산업이 전반적으로 부진했으며 제품 자체가 사양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부를 통합해서 비용을 경감하고 손익 위주로 모델을 운영할 계획이다. 태양전지 공장 가동도 선별적으로 하고, 시설 투자는 시장 상황과 기술 추세를 반영해 집행 시기를 조정하겠다. 이런 노력으로 올해 1분기부터는 순이익이 나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적자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4백5억원과 4백6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지속적인 적자 행진에 대해 LG전자 관계자는 “독립사업부는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사업이므로 현재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장 상황에 따라 적자가 많거나 적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실적이 개선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기자동차용 전지와 바이오 의약품도 LG그룹의 신수종 사업이다. 전기자동차용 전지 사업은 LG화학이 주도하는데, 리튬이온 전지 생산 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연간 50만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사용할 수 있는 전지를 생산한다. 이 회사의 전지는 GM(제너럴모터스)과 현대·기아차 등의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장착된다. 2015년 매출 3조원, 세계 전기자동차 시장의 25% 점유를 목표로 삼고 미국 현지 공장도 건설했다.

전기차 전지·바이오 의약품도 녹록지 않아

이 미국 공장은 지난 4월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아직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기가 침체된 것이 주된 요인이다. 게다가 LG화학 자동차용 전지 매출의 절반가량이 GM의 전기차 판매 증감에 편중되어 있는 점도 아킬레스건이다. 자동차용 전지 매출은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전지 부문 전체 매출 2조2천6백억원 중 자동차용 전지는 약 3천억원(13%) 수준에 불과하다. LG화학은 올해 자동차 전지 매출 목표를 대폭 낮추기로 했다.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지난 7월18일 기업설명회에서 “올해 자동차용 전지 매출은 목표 자체를 30% 정도 수정해야 한다고 판단된다. 당초 8천억원 매출을 목표로 했으나 5천억~6천억원 수준으로 낮춰야 할 것 같다”라고 밝혔다.

바이오 의약품 사업은 LG생명과학이 담당한다. 1990년대부터 바이오 의약품 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해마다 7백억원 가량(매출액의 18~19%)을 신약 등의 연구·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2010년에는 영업이익(2백억원)의 세 배가 넘는 6백75억원, 지난해에도 1백6억원의 일곱 배가 넘는 7백29억원을 연구·개발 비용으로 집행했다. 제약업계가 매출의 10% 미만을 기술 개발에 할당하는 것에 비하면 큰 수치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LG생명과학은 일반 제약사와 달리 연구·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화학약품이 아니라 바이오 의약품을 개발한다. 바이오 의약품 중에서도 복제약이 아니라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든다. LG는 투자한 만큼 앞으로 바이오 신약 부문에서 앞서갈 기업이다”라고 평가했다.

LG생명과학은 그동안 B형 간염 백신, 성장 호르몬 결핍 치료제, 불임 치료제 등을 내놓았다. 2003년 개발을 시작해 9년 만에 시판 허가를 받은 당뇨병 치료제는 최초의 국산 당뇨병 치료 신약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둡다. 지난해 1분기 20억원이던 영업이익이 4분기에는 10억원으로 줄어들더니 올해 1분기에는 5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경영으로 전환되었다. 이 회사는 약가 인하와 신제품(당뇨병 치료제) 출시에 따른 마케팅 비용이 증가한 것을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 물론 당뇨병 치료제 시판에 이어 백신, 소아용 인간 성장 호르몬 등 신제품이 국내외에서 허가를 받으면 올해 안으로 실적이 개선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삼성과 한화도 바이오 의약품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은 만큼 경쟁을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이 미래를 대비해 장기 투자하는 사업이라도, 장기간 적자가 이어지면 회복하기가 어려워진다. 체질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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