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아침형 CEO’를 택했나
  • 엄민우 기자·윤명진 인턴기자 ()
  • 승인 2012.07.1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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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수개월째 새벽 출근 두고 해석 분분…‘아침 경영’이 효과 있는지에 주목

이건희 삼성 회장
지난 3월부터 수개월째 이어지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새벽 출근을 두고 해석이 난무한다. 대외 경제 환경 악화로 삼성그룹이 긴장해야 한다는 메시지라는 분석에서부터 속도 경영을 강조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이회장은 책이나 비디오를 보면서 밤 늦게까지 깨어 있기 일쑤이다. 한때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자택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구조조정본부장(옛 미래전략실장)으로부터 경영 상황을 보고받고 지시를 내렸다. 그런 이회장이 새벽에 일어나 꼬박꼬박 출근하니 임직원들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전 계열사 임원들에게 새벽 출근을 지시했다는 보도까지 나오기도 했다. 삼성그룹 계열사 관계자는 “이회장이 자리에 있을 때와 없을 때 임직원의 근무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회사 근처에서 멀리 나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2분기 사상 최고 실적 거둬…임직원 독려한 덕인지 궁금

‘삼성그룹 기함’ 삼성전자는 2분기에 분기 사상 최고의 실적을 거두었다. 나머지 계열사도 경기 악화에도 선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건희 회장의 아침 경영이 효과를 본 것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새삼 ‘아침형 CEO’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새벽에 출근하는 CEO(최고경영자)는 이건희 회장뿐만이 아니다. 대체적으로 CEO의 아침은 회사의 아침보다 빠르다. 직원들에게 보고를 받기 전 세상으로부터 먼저 보고를 받는다. 업무 시간 전에 외신을 보며 간밤에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들을 챙긴다. 조용히 기도를 하며 하루를 준비하기도 한다. CEO의 아침 경영은 좁게는 자신과 주변 임원, 넓게는 조직 전체에까지 영향을 준다.

대표적인 아침형 CEO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다. 보통 새벽 6시에 양재동 본사에 도착한다. 정회장이 보통 7시에 회의를 주재하기 때문에 임원들도 자연스레 6시 반 이전에 출근을 마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정몽구 회장의 서울 한남동 자택에는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일이 없다’라는 뜻으로 원래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청운동 자택에 걸려 있던 것이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새벽 4시에 기상해 5시부터 현장을 돌며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정몽구 회장 역시 새벽 4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5시부터 정주영 회장의 청운동 자택에서 아침 식사를 함께했다. 정몽구 회장의 부지런함은 아버지 고 정주영 회장에게 물려받은 유산이다. 이 유산이 현대차그룹의 정신이 되었다. 현대차그룹의 사훈은 근면·검소·친애이다. 현대차 소속의 한 간부는 “현대차의 아침 경영은 고 정주영 회장의 유산으로, 아침형 인간 열풍이 불기 훨씬 전부터 이미 시행되고 있었다. 일찍 출근 하는 것이 익숙해지니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등 개인적으로도 얻는 이점이 크다”라고 전했다.

아침 일찍 회사 업무를 시작하는 것으로 유명한 CEO들. 왼쪽부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채은미 페덱스코리아 사장,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 ⓒ 시사저널 자료

현대차그룹 일반 직원 대부분도 오전 7시30분 이전에 출근한다. 자동차그룹답게 30여 대 통근버스가 서울시 구석구석과 경기도 인근을 돌며 직원들을 실어나른다. 이 버스들이 현대차 양재동 본사에 들어오는 시간이 보통 7시에서 7시20분 사이이다. 그렇다 보니 출근길 ‘지옥철’이나 ‘교통 혼잡’은 현대차그룹 직원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이다. 용인시에 거주하는 현대차그룹의 한 직원은 “통근 버스를 타기 위해 보통 5시 반에 기상한다. 이른 시간이라 용인에서 양재동 본사까지 30분이면 출근할 수 있다. 너무 일찍 와버려 버스에서 잠을 붙일 수 없을 정도이다”라고 전했다. 

업계 트렌드 빨리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박성철 신원 회장은 새벽 기도로 아침을 연다.
현대차그룹의 이같은 아침 경영이 빛을 발한 것은 2년 전 폭설이 내렸을 때이다. 2010년 1월 25cm가 넘는 폭설로 온 길이 마비되다시피 하는 일이 발생했다. 기상청은 ‘100년만의 폭설’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날은 2010년의 첫 월요일로 대다수 회사의 시무식이 잡혀 있던 날이다. 극심한 교통 정체로 대다수 대기업이 시무식 날짜를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으나 현대차그룹은 달랐다. 예정 시간인 정각 8시에 시무식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당시 10대 그룹 중 시무식을 예정대로 진행한 곳은 우리밖에 없었다”라고 전했다.

‘돈은 아침에 잘 모인다’라고 외치는 페덱스코리아의 채은미 사장(49)도 아침형 사장으로 유명하다. 채사장의 아침형 인생은 20대부터 시작되었다. 20대 중반 순수 국내파로 글로벌 기업에 입사한 그는 외국어를 익히기 위해 새벽반 영어학원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일찍 출근해오던 것이 CEO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이후 6시까지 영자 신문, 종합지, 경제지 등을 훑어보며 업계 흐름과 국내외 주요 이슈를 살핀다. 이후 6시40분까지 세면과 아침 식사를 마친다. 그리고 7시에 학원으로 가 1시간 동안 외국어 공부를 한다. 회사에 도착하면 8시10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채은미 사장은 “아시아 본사가 있는 홍콩이나 중국의 시차가 한국보다 1~2시간 정도 빠르다. 아침 시간을 활용해 해외 동정을 살피면 그날의 업무를 미리 파악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라고 전했다. 채은미 사장은 취임 이후 6년 동안 직원 수를 5백50명에서 7백50명, 운행 차량을 1백89대에서 2백95대로 늘렸다. 채사장은 “단기적 관점에서 보면 매일 아침 신문을 읽고 업무를 일찍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해당 일을 반복하면 업계 트렌드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같은 장점이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데 큰 도움을 줘 조직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라고 전했다, 이같이 아침형 사장을 둔 페덱스이지만 직원들은 각자 일정에 맞춰 출근한다. 사무직, 콜센터 직원, 택배원 등 다양한 직종으로 이루어진 물류회사의 특성 때문이다.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도 대표적인 아침형 CEO 중 한 명이다. 지창훈 사장은 오전 7시30분이면 회사에 도착한다. 조원태 전무를 비롯한 임원들도 이때쯤 출근한다. 이후 한 시간 동안 ‘커피 브레이크(쉬는 시간)’를 준비한다. 커피 브레이크는 매일 아침 8시30분 본부장급 이상 임원들이 커피를 마시며 회의를 하는 대한항공만의 문화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무겁지 않은 현안이나 업계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특징이다. 항공 분야는 다양한 사업 분야로 구성되어 있어 각 분야 임원들의 의견 교류가 중요한데, 커피 브레이크가 그러한 역할을 한다. 금요일에는 상무급 이상을 대상으로 오전 8시 스탠딩 회의(서서 하는 회의)가 열린다. 일반 직원들의 출근도 빠르다. 직원 상당수가 7시20분쯤 회사에 도착한다. 회의 전까지 일과를 검토하고 변동 내지 특이 사항을 확인해 어떻게 진행시킬지 결정하는 것도 모두 이때 이루어진다.

중요 의사 결정이나 중대 회의는 아침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박성철 신원 회장은 새벽 기도로 아침을 연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신길교회에서 새벽 기도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후 오전 6시 서울 마포구 본사에 도착해 사내 기도실에서 신원의 발전을 기원하는 묵상 기도를 한다. 매일 아침 하는 기도는 박회장이 그날 하루 신원의 CEO로 활동할 에너지를 얻는 일종의 의식이다. 기도 후 박회장은 세계 각지에 나가 있는 해외 법인을 점검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과테말라와 같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직원들에게는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한다. 이후 신문이나 책을 보는 시간을 갖는다. 본격적으로 회장의 하루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은 오전 7시30분이다. 신원의 한 관계자는 “박회장은 항상 아침 시간에는 집중력이 높아지고 여러 가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기에 좋은 시간이라고 강조한다. 박회장이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거나 중대한 회의를 진행하는 시간은 항상 아침이다”라고 전했다.

CEO들은 왜 아침 시간을 중요하게 여길까? 장만기 한국인간개발연구원 회장(75)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1975년부터 37년 동안 매주 목요일 CEO들의 조찬 포럼을 이끌어온 장회장은 대한민국 CEO들을 아침형 인간으로 만든 대부로 평가받는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이 포럼에 참석한 바 있다. 장회장은 “일단 일과가 시작되면 CEO는 단 한 순간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틈이 없다. 하루 일을 계획하고 정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바로 세상이 움직이기 전인 아침 시간이다. 또 간밤에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장 먼저 파악해 조직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야 하는 것도 CEO의 역할이다”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아침형 경영을 전파하는 그이지만 조직 전체를 아침형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장회장은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 삼성도 과거 조기 출근제를 도입했다가 거둬들인 전력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 메커니즘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와 맞게 돌아가야 할 조직의 경우 아침형 경영이 힘들 수 있다. 무조건 아침형을 고집하기보다는 자신이 이끄는 조직이 아침형에 적합한지 고려해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CEO의 행동은 조직원 전체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CEO의 아침 경영은 직원들 입장에서는 ‘일찍 출근하게 되어 일만 늘어났다’라는 불만을 갖게 할 수 있다. 아침 경영이 성공하려면 직원들의 퇴근 시간을 보장해 주는 등의 환경 조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IT 기업에서는 ‘저녁형’들이 더 반짝반짝 

아침형 인간의 열풍도 아직까지 발을 들여놓지 못한 업종이 있다. 바로 IT 업종이다. 일반적으로 IT 기업은 출근 시간이 늦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개발한 카카오의 공식 출근 시간은 오전 10시이다. 네오위즈인터넷과 NHN의 출근 시간도 10시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 말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시간 및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특성 때문이다. 제조업 및 기타 업종은 특정 장소에서 다 같이 협력하거나 일정한 라인을 거쳐야 생산물이 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IT 업종은 각각의 개발자들이 생산물을 만들어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창의적 작업이다. 함께 모여 기획을 할 때가 아니면 각자 주어진 개발 미션에 집중하면 된다. 두 번째 이유는 야근이 많다는 점이다. 개발에 몰입하다 보면 업무가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침형 삶의 전제 조건인 ‘일찍 잠자리에 들기’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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