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나이테’는 과거의 기후 담은 하드디스크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07.1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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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서부의 가뭄 시기 알아내는 데 ‘사료’로 쓰여…‘급격한 기온 변화에는 민감하게 반응 못 한다’는 연구 결과도

ⓒ 연합뉴스

지난 7월2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는 나이테를 이용해 950년부터 1250년까지 미국 북서부에 심각한 가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바이런 슈타인만 박사팀의 연구 내용이 실렸다. 당시는 겨울에도 비의 양이 극히 적어 상당히 건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이 낮고 강수량이 적어 ‘소빙기’로 불렸던 1450~1850년보다 더 건조했다고 하니 가뭄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천만 년 전의 날씨가 추웠는지 더웠는지, 비가 많이 왔는지 건조했는지를 나무의 나이테를 보고 어떻게 알까.

나무가 살아온 세월을 보여주는 증명서

오늘날 지구의 기온 변화는 인공위성과 각종 기상 관측 자료를 통해 얻는다. 하지만 인류가 기기를 이용해 기후를 관측한 지는 수백 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전에는 기후를 확인할 수 있는 당시의 사료들이 별로 없다. 있다고 해도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슈타인만 박사팀이 연구한 미국 북서부의 경우도 1500년을 전후로 날씨가 가물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시기나 가뭄이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 자세한 기록이 없어 연구 대상이 되었다.

과거의 기후를 알아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연대를 정확히 측정하는 일이다. 연대는 주로 방사성동위원소와 화석을 통해 얻는다. 1950년대 이후로 등장한 산소동위원소 측정법은 과거의 온도 정보도 알 수 있기 때문에 가장 흔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방법은 수만 년에서 수십억 년에 걸친 연대 측정을 위해 주로 이용된다. 과거 수십 년에서 1만년 이하의 연대는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얻는다.

1만년 전 이후의 기후는 나이테를 이용해 1년 단위의 기온을 거의 정확히 알 수 있다. 나이테는 나무가 살아온 세월을 보여주는 증명서이다. 나무는 온도와 강수량에 따라 자라는 속도에서 차이가 나며, 그 성장한 환경이 나이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열대 지방을 제외하면 나이테는 1년에 하나씩 생긴다. 나이테의 너비는 기후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가뭄이 심한 해나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할 때는 나이테가 촘촘하고, 따뜻한 햇살과 비가 풍부할 때는 나무가 잘 자라므로 나이테의 간격이 넓다. 홍수가 난 해는 성기다. 병충해나 늦서리처럼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도 나이테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많은 과학자는 기후 변화를 추적하는 데 나이테를 활용해왔다. 해마다 생기는 나이테의 너비 변화를 그래프로 만들고 여기서 나타나는 규칙을 찾으면, 과거 온도 변화 추세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알아낸 과거 기후에 대한 정보의 정확도는 비교적 높다. 실제로 명품 바이올린으로 손꼽히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유럽이 꽁꽁 얼어붙었던 12~19세기의 소빙하기 때 자란 나무로 만들어졌다. 추위와 싸우며 생긴 치밀하고 단단한 나무 조직 덕분에 울림이 좋은 악기로 태어난 셈이다.

미국의 브리슬콘 잣나무는 4천년 이상 살아 옛날 기후 연구의 보물단지로 불린다. 그 이전의 날씨는 관 등에 쓰인 목재의 나이테를 이용해 알아내기도 한다. 2001년에 미국 컬럼비아 대학 고돈 자코비 교수는 나이테를 이용해 ‘18개월 동안 여름이 없었다’는 알래스카 인디언의 전설이 사실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슈타인만 박사팀도 날씨가 건조할수록 나이테 간격이 좁아진다는 점에 주목해 가뭄이 일어난 정확한 시기를 찾아냈다. 하지만 한 가지의 방법만으로는 그 결과를 신뢰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산소동위원소 측정법도 함께 사용했다. 날씨가 건조해 호수의 물이 많이 증발하면 퇴적층에 질량이 큰 산소가 많이 남는다. 이를 이용해 박사팀은 미국 북서부 근처 호수의 퇴적층에서 이 시기의 산소동위원소 비율을 10년 단위로 확인했다. 나이테를 통한 분석 결과와 퇴적층의 산소동위원소 측정법을 통한 분석 결과는 정확히 일치했다. 과학자들은 과거의 기후 정보를 얻기 위해 이처럼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각각의 방법으로 얻은 결과가 공통적인 패턴을 가질 때에만 그 자료를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기후 정보는 미래 기후 변화 예측하는 데 단서 제공

ⓒ 연합뉴스
그런데 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마이클 맨 교수팀이, 온도 변화를 잘 감지하는 나이테도 화산 폭발 때문에 일어난 짧은 시간의 급격한 기온 변화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다고 발표해 화제를 낳고 있다. 연구팀은 전 지구적 기후 모델(GCM)과 나이테로 추정한 북반구의 기온 변화를 그래프를 통해 비교하는 연구를 했다. 기간은 1200년대부터 지금까지다. 그 결과 화산 폭발이 일어났던 1258~1259년, 1452~1453년, 1809~1815년 사이에서 그래프가 다르게 나타났다. 이를테면 GCM에서는 1258년의 대형 화산 폭발로 인해 이후 기온이 2℃ 정도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지만, 나이테에서는 0.6℃ 정도 내려간 것으로 표시되었다.

나이테는 왜 기후 변화의 폭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을까?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 화산재가 햇빛을 가려 지구의 온도가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나무의 성장이 멈춰 나이테가 생기지 않을 수 있고, 그래서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맨 교수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왜 이토록 과거의 기후를 들춰내려 하는 것일까? 우리는 앞으로 기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지구온난화는 정말 일어날 것일까. 온난화가 일어나면 얼마나 더워질까. 과연 생태계나 인간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더 나아가 먹고사는 일은 걱정이 없을까 등등. 과학자들은 이같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 기후를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현재 기후를 이해하고 미래 기후 변화를 예견하기 위해 과거 기후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기후를 변화시켰던 원인들이 현재나 미래에도 계속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기후는 과거에 일어났던 원인들과 현재의 인간 활동에 의한 원인들이 복합적인 형태로 작용해 변화한다.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과거의 기후 변화에 대한 정보가, 앞으로의 기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또 과거에 기후 변화가 일어났을 때 자연 생태계에서 발생한 변화는 미래 기후 변화에 따라 자연 생태계에 일어날 수 있는 극심한 변화를 예견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준다. 과학자들이 과거 기후에 매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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