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들, ‘트위터’에서 웃다 울었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7.10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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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박용만·이찬진 등 활동 그만두거나 뜸해…오너로서 대중들과의 소통에 한계 느낀 듯

ⓒ 시사저널 박은숙

재벌 2·3세들의 ‘트위터 경영’이 주춤해지고 있다. 대중들과의 소통 창구였던 트위터를 접고 ‘은둔 모드’에 돌입한 것이다. 해킹 우려와 사생활 노출, 트위터리안(트위터 이용자)과의 잦은 마찰 등이 이유로 꼽힌다. 재벌 2·3세들 사이에서는 한때 트위터 열풍이 불었다. 트위터를 통해 공개되는 소소한 이야기들은 일반인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경우 ‘트위터 어록’이 인터넷에 떠다닐 정도였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한때 12만명의 추종자(팔로워)를 거느리면서 대중들로부터 주목되었다.

오너가 대중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면서 재벌에 대한 이미지도 많이 개선되었다. 기존의 재벌 이미지는 어둡거나 딱딱했던 것이 사실이다. 2·3세 승계 과정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언론에 거론되었다.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 역시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너 일가가 격의 없이 대중들과 소통하면서 재벌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두산그룹은 지난 2010년 미국의 건설 장비 계열사인 밥캣의 증자설이 나돌면서 곤욕을 치렀다. 계열사들의 주가가 한 달여 만에 30% 가까이 동반 하락했다. 언론에 적극적으로 해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박용만 회장은 당시 트위터를 통해 “밥캣의 증자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끝없이 곤두박질치던 주가 역시 진정되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트위터 계정 삭제해

정용진 부회장은 트위터리안 사이에서 ‘민원실’로 통했다. 신세계나 이마트 관련 민원을 제기하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었다. 심지어 언론에 나오지 않은 사건까지 트위터에 공개하면서 홍보실을 곤혹스럽게 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오너의 투명한 경영 의지가 부각되면서 일반인들의 반응이 좋았다. 박회장과 정부회장은 최근 한국PR협회가 발표한 ‘홍보 잘하는 오너 경영인’ 1위와 2위에 나란히 올랐다. 그 밖에도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와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 이우현 OCI 부사장 등이 트위터를 통해 대중과 활발히 소통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재벌 총수들의 트위터 활동이 뜸해지고 있다. 이수영 OCI 회장의 장남인 이우현 OCI 부사장은 한때 열렬한 트위터 마니아였다. 신혼여행 때의 모습까지 트위터를 통해 공개할 정도였다. 현재는 트위터를 접은 상태라고 한다. ‘트위터 전도사’로 알려진 이찬진 대표도 지난해 12월부터 트위터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박용만 회장과 정태영 사장은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다. 이들 역시 논란의 소지가 없는 일상사를 소개하거나 격언 등을 올리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연예인 못지  않은 주목을 받으면서 앞서 가던 재벌 2·3세들의 자취가 트위터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는 아예 트위터 계정을 폐쇄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지난해 10월께 갑자기 트위터 계정을 삭제했다. 정부회장의 계정이 해킹당한 것이 트위터를 접은 표면적인 이유이다. 정부회장이 스팸메일을 여는 과정에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도용당했고, 결국 트위터를 접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신세계의 한 관계자는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도용당해서 트위터를 접고 현재는 페이스북만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회장이 사용하는 트위터 계정은 현재 ‘본격 혁명봇’이라는 아이디로 바뀐 상태이다. “정용진은 가라”라는 내용이 트위터 글에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트위터 폐쇄 이유를 해킹으로 돌리기에는 의문점이 적지 않다. 정부회장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해킹되었다면 수사를 의뢰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최소한 자신을 비방하는 내용을 담은 계정을 폐쇄시켜야 한다. 정부회장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을 비방하는 내용을 담은 트위터를 방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문이 일고 있다. 정부회장의 계정 사용자도 “해킹이 아니다”라고 강변한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정용진 부회장이 탈퇴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아이디 그대로 가입했더니 회원 가입이 되었다. 해킹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심지어 “언론이 신세계 홍보처냐”라고 불변한 심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조현민 대한항공 상무(오른쪽 아래)와 여행용품 회사 대표가 최근 트위터상에서 논쟁을 벌여 화제가 되었다

네티즌과 설전 벌이는 과정에서 이미지 상처

때문에 재계에서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회장은 지난해 트위터를 운영하면서 적지 않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정부회장이 외제 벤츠 미니버스로 출근을 하고, 이 버스의 가격이 수억 원대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을 빚었다. 트위터리안들과의 설전도 이어졌다. 문용식 전 나우콤 대표와는 막말 논쟁까지 벌였다. 문대표가 골목 상권 침해 문제를 거론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나중에는 상대의 전과 내역까지 공개되었다. 정부회장의 소탈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트위터리안들은 적지 않게 실망해야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의 오너 집안 CEO가 현안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회사나 개인에게 부정적인 이슈가 터졌을 때는 관리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회장이 갑작스럽게 트위터를 끊은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미 상당수 재계 인사가 비슷한 사정으로 트위터를 접은 상태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사위인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은 박지성 선수를 폄하한 발언을 해 곤욕을 치렀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웃자고 한 얘기가 일파만파로 퍼져 당혹스럽다”라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자 트위터를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삼녀인 조현민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상무도 최근 여행용품 전문 회사 대표와 트위터 설전을 벌였다. 논쟁은 결국 법적 소송 논란으로 번졌다. 이 과정에서 조상무가 ‘명예훼손’을 ‘명의훼손’으로, ‘무궁한 발전’을 ‘무근한 발전’으로 잘못 표현하면서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트위터를 사용하는 상당수 CEO들이 네티즌과 설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이미지 타격을 입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친구 수준을 정할 수 있는 페이스북 등으로 옮겨가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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