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쒀서 군부에 준 이집트 ‘마이너스 혁명’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06.2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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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운영을 군부에 일임한다는 포고령 발표해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 권한도 대폭 축소

지난 6월18일 이집트 대통령 후보 모르시의 지지자가 다른 후보인 샤피크의 포스터를 슬리퍼와 함께 들고 있다. ⓒ AP연합
이집트 혁명이 좌절되었다. 지난해 2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독재를 무너뜨린 ‘아랍의 봄’ 시위가 시작된 지 15개월 만이다. 8백50여 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를 낸 피의 혁명을 원점으로 돌린 것은 이집트 군부이다. 권력에 대한 군부의 욕망은 끝내 이집트의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과 세계 인류의 열망을 짓밟았다. 6월17일은 이집트 역사에서 슬픈 날이다. 군부는 이날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모든 국정 운영을 군부의 재량에 일임한다는 파격적인 포고령을 발표했다. 1950년대부터 절대 권력에 맛들인 군부는 일요일의 ‘연성 쿠데타’를 통해 역사를 뒤로 돌리는 반(反)민주·반(反)혁명 조치를 단행했다. 군부의 고질적 관행에 순치된 듯 민선 대통령의 손발을 묶는 군부의 조치에도 크게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 소속 대통령 후보 모하메드 모르시가 결선 투표에서 군부의 지지를 받는 군 출신 전 총리 아메드 샤피크를 누르고 승리를 쟁취할 것이 확실해지자 이집트의 새로운 미래에 기대를 걸었던 수많은 민주운동가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무바라크를 추방한 뜨거운 민주화 시위의 현장이었던 타흐리르 광장에는 겨우 수백 명이 모여 모르시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으나 맥 빠진 모습이었다. 몇 주씩 텐트를 치고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던 함성과 열기는 볼 수 없었다. 무슬림형제단은 다른 민주화 단체와 더불어 새로운 거리 시위를 촉구했다. 마치 이집트 민주화 혁명이 숨을 거둔 것 같은 비장함이 광장을 짓눌렀다. 

짧은 일생을 마친 이집트 혁명은 ‘아랍의 봄’ 시위가 일어난 중동은 물론 전세계에 거대한 파장을 줄 것이 확실하다. 이스라엘과 평화를 유지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연간 27억 달러의 군사·경제 원조를 받는 이집트의 군부가 계속 미국의 동맹으로 남을지의 문제도 시험대에 올랐다. 거대한 군중 동원 능력을 갖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은 의회를 해산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무력화한 군부의 총성 없는 쿠데타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포고령에 따라 군부는 입법·사법권을 장악했다. 이에 따라 의회는 새 헌법이 마련될 때까지 구성되지 못한다. 대통령은 군 인사와 예산 편성권을 상실했다. 또한 군부의 승인 없이는 전쟁을 선포할 수도 없게 되었다. 쉽게 말해 허수아비가 되었다는 말이다.

군 최고회의, ‘국가 위의 국가’ 기관으로 등장

지난 6월18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군 최고회의(SCAF)의 최고위원인 모하메드 알 아사르(왼쪽)와 맘도우 샤힌(오른쪽)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EPA연합

군 최고회의(SCAF)는 입법·사법·행정 등 3권을 장악하고 헌법과 기타 국정에 대한 비토권을 갖는 ‘국가 위의 국가’ 기관으로 등장했다. 아울러 모든 사법 처리로부터의 면책권도 갖게 되었다. 이집트 언론에 따르면 결선 투표의 결과는 이번 주 후반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무슬림형제단의 후보 모르시가 승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나 무바라크 정권하의 마지막 총리인 샤피크는 투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SCAF의 최고위원 모하메드 알 아사르 소장은 포고령 발표 직전에 “군부는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한 의식을 통해 대통령에게 권한을 이양할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결국 희대의 사기극이 되고 말았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군부 통치를 연장한 조치에 미국은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이집트 역사에서 위급한 순간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이런 태도에도 군부가 가까운 시일 안에 어떤 양보를 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특히 예산권과 민간 부분 사업권에 대해서는 군부의 집착이 강하다. 이권이 관련되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정이지만 무슬림형제단 모르시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작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군부는 내심 샤피크를 밀고 있었다. 그러나 출구조사에서 그가 밀리는 것으로 나타나자 군부는 쿠데타를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모르시가 집권하면 군부가 설 땅은 좁아질 것이며 바로 이 상황이 쿠데타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결선 투표에서 승리한 대통령은 새 헌법이 기초되는 연말까지만 집권할 것으로 보인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불행한 원점으로 회귀한 이집트 혁명의 비극에는 무슬림형제단의 슬픈 과거사도 겹쳐 있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이집트의 이슬람 정치 세력으로 성장할 야망을 키워왔다. 그러나 이들은 긴 정치 역정에서 고문과 처벌을 자행해 은연중에 극단주의를 표방했다. 이런 모습은 군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군부는 심지어 터키의 에르도안 총리처럼 무슬림 세력이 군부의 손발을 묶을까 우려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슬림형제단은 6월18일 타흐리르 광장을 행진하면서 창립 84년 만에 대통령을 배출한 것을 자축했으나 몇 시간 후 그 축제가 마감되는 운명을 감지하지 못했다.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인기는 최근 몇 달 동안 현저히 감소했다. 이들의 정치색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집권 전망에 도취한 이들은 일상사에서 이슬람 교리를 강요하고 정치적으로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등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이집트 혁명을 뒤틀리게 만든 여러 가지 요인 중에는 아랍 세계에 수십 년째 이어져온 정교(政敎) 이념 갈등이 깔려 있다.

군부, 세속주의 정치 체제 붕괴 우려해

무슬림형제단은 정치 세력화한 이슬람을 추구한 반면, 군부는 속세주의를 보호하려 했다. 이집트가 미국의 동맹으로 남을 수 있게 된 것은 1979년 이스라엘과 체결한 평화조약 덕분이다. 이것이 군부의 인식이다. 따라서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하면 이 구도가 무너질 것이라고 군부는 우려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의 평화와 이를 전제로 한 세속주의 정치 체제가 무너지면 기존의 모든 규범이 붕괴되는 것으로 군부는 보고 있었다. 여성의 일할 권리에서부터 팔레스타인 문제에까지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다.

지난 1년여의 혁명 과정에서 등장한 가장 중대한 의문은 무바라크 퇴진 이후 사회 각 계층에서 분출되는 욕구에 대해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이 어느 선까지 ‘합의’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최근 현저히 ‘노’ 쪽으로 기울었고, 이것이 군부 쿠데타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자들은 욕구를 조정할 능력이 없었으며 이 상황에서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잡았다는 얘기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무바라크 이후의 권력 투쟁에서 군부가 승리했다는 말이다. 이집트의 역사, 문화적 배경을 고려할 때 두 세력 간 투쟁은 앞으로 등장할 정부 형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

아랍의 봄 혁명에서 민주 국가로 이행한 튀니지는 모범이 되었다. 그러나 내전 양상으로 가는 리비아, 예멘, 시리아는 어떻게 될지 예단하기 어렵다. 외신들은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병세가 위독해 ‘임상적으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그의 변호인은 이 보도를 부인했으나 그의 임종은 어차피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종신 징역을 선고받고 군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군부가 무바라크 시대의 복원을 꿈꾸는 순간에 그의 생물학적 종말이 임박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타흐리르 광장의 한 시민은 “천벌을 받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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