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중고차 수출, ‘덩치’는 크는데…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6.17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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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1위 수출국으로 급부상하는 등 수요 ‘폭발’…1조7천억원 시장에 맞는 수출 물류단지 조성 시급

인천광역시에 있는 한국 중고 자동차 수출 야적장. ⓒ 시사저널 임준선

올해로 20년째를 맞은 국산 중고차 수출 규모가 1조원을 넘었다. 러시아가 최근 주요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외국 바이어들이 생산된 지 5년 미만의 중고차를 선호하는 것도 최신 추세이다. 그러나 수출 물류단지(야적장)가 열악해 바이어들의 발길을 붙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월12일 인천 옥련동(송도 인근)에 있는 중고차 수출 물류단지에서 오바이다 모함마드 씨(35·요르단 바이어)가 국산 자동차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는 1년에 10개월 정도 국내에 상주하면서 5백여 대의 국산 자동차를 수입해 자국으로 보내는 일을 한다. 그는 “요르단은 무사고 차량만 수입한다. 한국에는 무사고 차량이 많다. 또 과거 한국 중고차는 독일산보다 품질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품질도 좋고, 옵션이 다양하고, 가격이 저렴해서 인기가 높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람이 외국을 찾아 수출 판로를 개척하기도 하지만, 한국을 찾아오는 외국 바이어도 많이 늘어났다. 모함마드 씨처럼 아예 국내에 체류하면서 중고차를 수입하는 세계 각국의 바이어가, 많을 때는 1천명에 이른다. 사업 규모가 큰 바이어는 국내에 무역업체를 차리고 몇 년씩 거주하면서 국산 중고차를 수입한다.

외국의 물류단지로 바이어 뺏길 수 있어

국산 중고차가 가장 많이 팔리는 국가는 요르단이다. 2010년 7만4천여 대, 3억2천만 달러(약 3천7백억원)로 국산차 수입 대수와 금액 면에서 모두 부동의 1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지난해에 변화가 생겼다. 자동차 수입 대수로는 9만여 대로 1위를 지켰지만, 금액 면에서는 3억7천만 달러(한화 약 4천3백억원)로 2위를 차지했다. 4억 달러(한화 약 4천6백억원)어치의 국산 중고차를 수입한 러시아가 1위에 올랐다. 2010년 1억5천만 달러(한화 약 1천7백억원)에 불과했던 러시아의 국산 중고차 수입 규모가 두 배 이상 늘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이기영 한국중고자동차수출조합 사무국장은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일본의 수출 무대였다. 2007년까지만 해도 연간 50만대의 일본 중고차가 팔리는 나라였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사이에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지난해에는 10만대로 감소했다. 2008년부터 러시아에 본격적으로 수출되던 국산 중고차는 2010년 1만2천여 대, 2011년 2만9천여 대로 급증했다. 여전히 자동차 대수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일본 중고차 수출은 점차 줄어들고, 한국 중고차 수출이 늘어나는 현상은 뚜렷하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자동차 운전대 위치가 그중 한 가지로 꼽힌다. 러시아 시장에서는 오른쪽에 운전대가 있는 일본 자동차보다 왼쪽에 운전대가 달린 한국산 자동차를 선호한다. 게다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까지 나서서 오른쪽 운전대 자동차 수입에 제동을 걸었다”라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수입하는 국산 중고차 수입 대수는 요르단의 3분의 1 수준이면서 수입 금액이 늘어난 이유는 또 있다. 요르단이 선호하는 중고차는 무사고 차량이면서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 같은 연식이라도 승용차·승합차·버스 등 차종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자동차 한 대당 중고차 수출 가격은 6백50만원이다. 그러나 러시아에 팔리는 국산 중고차는 1천5백만~3천만원 선으로 비싼 편이다. 현지에서 한국 중고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비교적 경제적 능력이 있어서 가격보다 품질을 따진다고 한다. 스타렉스 리무진과 같은 국산 승합차가 인기가 많은데, 최근 들어 특히 신차에 준하는 중고차(1~2년 미만 연식)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러시아와 요르단 등 1백77개국에 국산 중고차 수출이 늘어나면서 한국은 세계 중고차 시장에서 유럽연합(EU), 일본, 미국에 이어 4위 수출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중고자동차수출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로 수출된 국산 중고차는 약 29만대이다. 금액으로는 1조7천억원이다. 국산 중고차 수출 초기였던 1992년 3천여 대가 팔린 것에 비하면 20년 만에 거의 100배가 늘어난 규모이다. 등록된 중고차 수출업체는 3백60여 곳이지만 비등록 업체까지 합하면 1천5백여 개에, 종사자만 1만여 명을 넘는다.

그러나 중고차를 모아둔 물류단지의 환경이 열악한 점은 국산 중고차 수출의 아킬레스건이다. 기자가 찾은 인천 옥련동의 중고차 수출 물류단지에서는 폐차장 분위기가 풍겼다. 바닥은 비포장이어서 흙바람이 불었고, 그 먼지에 중고차들은 얼룩져 있었다. 바이어들은 땡볕에 중고차들 사이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런 물류단지가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전국 10여 곳에 흩어져 있어 바이어들에게는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나마 물류단지 부지가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의 소유여서 용도가 변경될 때마다 물류단지를 이전해야 한다. 실제로 기자가 찾은 물류단지도 2018년 공원화 계획이 잡혀 있다. 수출업체, 야적장, 전시장, 정비장, 부품 공장 등이 모여 있는 외국의 물류단지로 바이어를 빼앗기고 있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운전대가 오른쪽에 붙어 있어 러시아·중동·동남아·중남미·아프리카 등 왼쪽 운전대 차량을 선호하는 해외 시장에서 불리한 위치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은 요코하마 등 거점 항구에 대규모 물류단지를 조성했다. 주차장식 건물이어서 눈비가 와도 불편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곳에 차, 부품, 업체 등이 모여 있어 바이어들이 일본으로 몰리는 분위기이다”라며 종합 물류단지 조성의 시급함을 알렸다.


물류단지의 열악함 외에 다른 걸림돌은 무엇인가?

중고차 불법 수출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면 조합이 마치 사기집단으로 비친다. 일부 불법 업체와 조합은 무관하다.

무관하다는 입장을 국민에게 알리는 노력은 했나?

조합원이 잘 조화되지 않아 한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앞으로 그런 노력을 할 것이다.

자동차 수출 판로를 어떻게 개척하는가?

수출업체가 개별적으로 길을 뚫는다. 외국 현지에 있는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같은 공기관이 수출 판로를 함께 개척해주면 좋겠다. 일본은 정부 지원을 받아 중고차를 수출한다. 오른쪽에 운전대가 있어 수출이 어려운데도 연간 90만대를 파는 힘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 지원은 없는가?

중고차 수출은 외화 획득 외에도 내수 산업 활성화, 환경 문제 해소, 폐자원 활용, 고용 창출 등의 부가적인 이득도 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은 전혀 없다.

향후 중고차 수출 산업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10년 정도는 꾸준히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녹록한 것만은 아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가 5년 미만 연식의 차량만 선호하는 등 수입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있다. 

한국이 개척할 시장은 어디인가?

아프리카이다. 현재는 전체 물량의 10%에 해당하는 3만대가 수출되는 지역이다. 리비아, 이집트, 가나, 수단 등이 국산 중고차를 수입한다. 아프리카 시장은 일본과 유럽이 장악하고 있으며, 운송 기간이 1~2개월이나 걸리는 먼 지역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가 발전하고 있는 만큼 중고차 수요는 늘어날 것이다. 한 국가에 10만대를 수출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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