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석, "우리 팀의 매력? 인간극장 같다."
  • 김진령 기자·이하늬 인턴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6.12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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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석 서울히어로즈야구단 대표 인터뷰 / “목동구장도 입지 좋아”

ⓒ 시사저널 전영기
요즘 성공한 남자들의 최고 로망 중 하나로 구단 운영이 꼽히고 있다. 이 로망을 벌써 한국에서 실현한 이가 있다. 서울히어로즈야구단(넥센 히어로즈)의 이장석 대표이다. 이대표는 소년 시절 리틀야구단에서 투수로 활동했었고 연세대를 거쳐 프랑스의 유명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외국계 컨설팅회사에서 전략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2008년 그는 폐단 일보 직전의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했다. 몇 년간 고전하던 넥센 히어로즈는 지난해부터 완연히 달라졌다. 고정 팬이 늘어나고 성적도 좋아졌다. 지난 스토브리그에서는 이택근과 김병현을 거액을 주고 영입해 야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직 중반을 지나지 않은 이번 시즌이지만, 지난 5월에는 리그 1위라는 기록도 세웠고 지금도 상위권이다. 성적은 관중 폭발을 불렀고 ‘시한부’로 여겨졌던 넥센 히어로즈의 재무 상태는 상승 기류를 타고 있다. 넥센의 내년도 메인스폰서 계약이 끝나면 서울히어로즈야구단의 새로운 메인 스폰서십이 어느 정도 금액에 이를지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어릴 때부터 야구에 관심이 있었나?

개인구단주는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처음이지만 나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일본은 대부분 기업 구단주이고 미국은 100% 개인 구단주이다. 우리나라는 그 중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야구를 좋아해서 구단주 꿈은 있었지만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아니었다. 스포츠 사업이 장래성이 있고 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도전한 것이다.

재작년만 해도 이대표가 결국 손을 털고 나갈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웬만큼 자금의 흐름과 사업에 대한 센스가 있다면, 이걸 중간에 누구한테 팔지는 않을 것 같다. 돈 1백50억원이 있다고 하면 어디 가서 땅 사는 것이 낫다. 욕까지 먹어가며 이 일을 시작했겠나. 내 명예가 있는데, 중간에 빠져나가는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구단을 운영하는 것은 로망이 실현된 것인가?

나에게 히어로즈는 꿈이기도 하지만, 잘 운영해야 할 벤처기업이다. 꿈이 내 손안에 있지만 꼭 쥐면 사라질 수도 있다. 이를 잘 키우고, 안정화시키고 여러 가지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단 인수 초기에 많이 고전했는데.

2백50억원을 가지고 들어왔는데 1년 지나니까 다 없어졌다. 당시에 나에게 약속했던 투자자들이 있었다. 사실 내가 주인이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파트너가 되려고 했다. 그런데 약속했던 사람들이 다 달아났다. 지금은 잘되니까 다시 사람들이 온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런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이제는 내 돈으로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견뎌왔나 싶다.

무슨 돈으로 인수를 했나?

물려받은 돈은 없다. 사회생활하면서 번 돈이다. 세무조사를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 깨끗한 돈이다.

2011년이 터닝포인트가 되었는데.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넥센 마스코트와 포즈를 취한 이장석 대표. ⓒ 시사저널 전영기
지난해부터 재정의 안정화가 이루어졌다. 올해로 창단 뒤 시즌은 다섯 시즌이지만 재무적 관점에서는 4년차이다. 좋은 경기력이 좋은 매출로 나타난다. 매출이 좋아지니까 예산도 과감하게 는다. 올해 예산은 2백30억원이다. 매출이 오르면 오를수록 예산을 늘릴 것이다. 단기적인 목표는 매출과 예산이 3백억원-3백억원으로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올해도 15억원 적자로 보고 있다. 지금은 예산을 늘리면 늘릴수록 매출도 거기에 따라 늘어나고 있다. 공격적인 투자를 할 것이다.

고척동 돔구장이 완공되어도 목동 구장을 고수할 생각인가? 

전에는 시설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은 입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국에서 잠실을 제외하고는 목동구장이 제일 입지가 좋은 것 같다. 여기서 시설을 확충할 생각이다. 목동 전체 좌석이 1만2천5백석인데 지난해에는 50%가 찼고, 올해에는 주말 경기에는 좌석 점유율이 80% 이상이다. 창단 첫해에 티켓 판매액이 연간 12억원이었다. 지난해에는 42억원, 올해는 60억원이 예상된다. 다섯 배 증가했다.

지난 5월 8연승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아름다웠던 10일이었다. 그 생각뿐이었다. 나에게 내 선수들이 뛰는 것을 보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나에게는 이것밖에 없으니까. 다른 분은 웃으면서 즐기며 보는데, 나에게는 이것이 삶이자 꿈이자 직업이다. 

구단 살림에서 마케팅이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우리가 네이밍 마케팅을 하는 것은 딱 하나이다. 넥센 이름을 쓰는 것이다. 나머지는 스폰서이다. 100개가 넘는 후원 기업이 있는데 그중에 70여 개 기업이 우리만 후원한다. 메인스폰서 계약은 내년까지다. 메인스폰서를 포함한 전체 스폰서 수익은 100억원이 조금 안 되고, 티켓 매출이 60억원, 방송 중계로 45억원, 기타 수익이 10억원 정도이다. 예상 매출액 2백15억원에 예산은 2백30억원이다.

최근 팬들이 크게 늘어났다.

야구를 몰랐던 팬, 특히 여성팬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히어로즈 주부특공대’를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다. 목동 1단지부터 14단지까지 여성 마케팅을 한다. 야구광 남편을 둔 아내는 야구가 궁금하다. 우리가 야구에 대해 알려주고 선수들 연습 과정을 보는 기회도 준다. 인기가 좋다.

서울 팀이 3개나 되는데 넥센 히어로즈만의 경쟁력이 있다면?

서울 서북부, 서남부를 커버하는 유일한 팀이다. 양천구·영등포구·마포구·금천구·강서구 주민이 우리를 굉장히 좋아한다. 우리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인간극장> 같다는 점이다. 좌절을 이겨내고 빛을 본 선수가 많다. 입단 8년차에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해 빛을 본 선수도 있고, 방출 선수가 우리한테 와서 회생한 경우도 많다. 김병현과 이택근은 이미 너무 많이 알려진 사례이고.

절묘한 트레이드 솜씨로 명성이 높다.

우승 전략은 퍼즐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8개 구단이 모두 우승을 위한 퍼즐을 몇 가지 가지고 있다. 우리 구단은 여섯 개를 가지고 있고, 아직 진행형이다. 우승한다면 갑자기 모르던 퍼즐이 튀어나와서 될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강팀은 우승 퍼즐을 10개 이상 가지고 있다. 그러나 퍼즐이 많다고 해서 우승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뉴욕 양키즈는 우승 퍼즐이 20개 넘게 있다. 그래도 우승하지 못하고 훨씬 적은 퍼즐을 가진 템파베이가 우승을 했다.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퍼즐을 어떻게 잘 짜맞추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지, 그것 자체만 갖고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더 갖고 싶은 퍼즐이 있다. 그 퍼즐을 갖추기 위해서는 트레이드나 용병 확보, 드래프트 등을 생각하고 있다.

프로야구를 비즈니스 측면에서 어떻게 보나?

프로야구에서 아직 진정한 산업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산업화가 되려면 자체 수익으로 생존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은 대기업이라는 우산을 쓰고 있다. 나는 히어로즈의 생존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을 위해 뛰고 있다.

창단 초기에 욕을 많이 먹었는데.

야구판에 들어오면서 각오하고 들어왔다. 인터넷 야구 커뮤니티에 들어가 뭐라고 비판하는지, 어떻게 욕하는지 다 보고 있다. 우리 구단 주치의나 심리학자도 피하지 말고 그냥 보라고 하더라. 처음에는 스트레스도 받고 속상했지만 지금은 괜찮다. 나름으로 논리 있게 의견을 펴는 분도 있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는 의견도 있더라. 그 과정에서 연예인의 고충도 이해하게 되었고, 언론에 나온 것만 같고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웃음)  문제는 이제 아홉 살인 딸애가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아빠 이름 뒤에 ‘사기꾼’, ‘개**’ 같은 말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운다는 점이다. 난감하다. 그것 말고는 괜찮다.

그는 야구단 운영 외에는 별다른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다. 아침마다 명상하는 것으로 큰 도움을 받는다. 전략 게임을 하거나 중국 전국 시대나 일본 막부 시대의 실력자에 대한 서적을 즐겨 읽는 등 전략적 사고에 강하다. 낯을 가린다고 하기에 ‘트리플 A형이냐’고 물었더니 B형이란다. 외동아들인 그는 지난겨울 늦둥이 아들을 보았다. 구순의 부친이 크게 기뻐했다. “아버지께 해드렸던 마지막 효도 같다.” 그 부친은 지난 4월 별세했다. 올봄 그에게 큰 기쁨과 큰 슬픔이 함께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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