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일상 깨고 여성 시대 연 ‘모던걸’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2.06.0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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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피워낸 미국·영국의 상상과 실천의 역사 들춰내

아름다운 외출 실라 로보섬 지음 삼천리 펴냄 480쪽│2만3천원
지난 총선에서 화제가 된 인물로 눈에 띄는 여성도 많다. 그들 중 일부는 현재 진행형으로 이슈를 몰고 다니고 있다. 정치 현장 말고도 이런저런 현장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음을 실감하는 것이 현실이다. 당연한 듯이 여기는 남녀 평등이 온전히 실현된 것은 아니지만, 여권 신장으로 보이는 일련의 현상들은 거저 얻은 결실이 결코 아니다. ‘일선’에서 고군분투하는 몇몇 ‘여성 투사’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여성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이런 ‘외출’의 역사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미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젠더·노동사·사회학 등을 가르치고 있는 실라 로보섬 교수는 미국과 영국에서 ‘깃발’을 들었던 ‘선진 여성’들의 역사를 파헤쳐 <아름다운 외출>로 정리했다. 이 책은 100년 전 미국과 영국에서 여성들이 ‘일상’을 어떻게 급진적인 활동의 장으로 만들어갔는지를 당시 사례를 구체적으로 재현해 보여준다.

이 책에 따르면, 국제 무역의 확대, 대량 생산, 이민, 도시 슬럼 등으로 술렁이던 19세기 후반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미국·영국의 여성들 사이에 ‘새로운 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나키스트에서 자유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적 주장이 대서양을 넘나들면서 페미니스트건 아니건 간에 ‘선진 여성’들은 사회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의식을 공유했고, 그 신념에 기초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나갔다. 이 시기 여성들은 자신들이 개인적 주체임을 주장하면서 사회적 규범과 통념들을 뒤흔들었다. 특히 근대 페미니즘을 탄생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모던’ 여성들은 삶의 모든 문제를 다양한 운동으로 조직하고, 여성 개인은 물론 의식 있는 남성들과 정치인들과도 상호 협력하면서 사회적 통념에 맞서 끊임없이 ‘발칙한’ 상상력을 추구했다.

여성들이 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대학 교육을 받고, 카페와 술집에서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필요 없이 삼삼오오 환담을 나누는 것이 지금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대다수 여성에게 그것은 꿈이었으며 자유와 해방을 의미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은 억눌린 환경 속에서도 기꺼이 ‘모험’을 즐겼다. 여성이 파격적인 행동을 했을 때는 남성보다 훨씬 가혹한 비난을 받았음에도 기꺼이 ‘괴짜 여성’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여성답지 않다’라는 비난에 개의치 않아야 한다면서, 여성도 저항하는 개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오히려 용감하게 욕설을 퍼부으라고 호소했다. 그들은 연애·결혼·출산·피임·모성·가사 같은 개인의 문제에서, 인종·임금 노동·여성 참정권·사회복지·공공주택·연금 제도 같은 사회적 정책으로까지 ‘모험’의 영역을 확장해갔다.

저자는 그들을 일컬어 ‘침묵의 일상을 과감히 깨뜨리고 기존 시민사회의 통념과 문화에 도전한 실천 개혁가들’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지금 이 시대가 그들의 상상력과 실천에 빚진 바가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저자는 지금 여성들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이들 선구자가 일구어낸 투쟁의 산물이었음을 페미니즘의 역사를 들춰 하나하나 확인시켰다.

이 책은 여성들의 모든 일상이 민주주의와 어떻게 연계되는지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가 일맥상통하고 있다. 저자는 예나 지금이나 가정과 사회, 국가적 차원에서 여성들 스스로 민주 의식을 지니게 된다는 것도 강조했다.

여성들의 발랄한 상상과 집요한 실천을 가볍게 여길 것이 못 된다는 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 주변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추진력에서나 활력에서나 남자들보다 더 뛰어날 때도 있다는 것을 종종 목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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