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팅’을 전공 삼은 대학생들 도박의 늪에서 ‘허우적’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5.1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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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돈’ 걸고 하다가 점차 중독되면서 ‘폐인’으로 전락 등록금 날리고 사채 쓰다 신용불량자 되기도

지난해 9월18일 도박 중독 예방 주간을 맞아 서울 보신각 광장에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주최로 열린 현장 이벤트에서 대학생 예방 활동단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학생들의 도박 중독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재미와 호기심으로 시작한 도박이 꽃다운 젊음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도박 중독자들은 대인 관계와 가족 관계가 파괴되고 자신은 ‘도박 폐인’으로 전락한다. 여기에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되는가 하면, 급기야 범죄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대학생들의 ‘도박 중독’ 실상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다니던 이학수씨(가명·28)는 지금까지 5년째 복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07년 군에서 제대했고, 2008년에 복학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휴학생’ 신분으로 남아 있다. 이씨와 함께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은 모두 졸업을 했다. 이씨는 왜 학교 주변을 떠돌면서 복학을 하지 못하고 ‘낙오자’가 된 것일까. 거기에는 말 못할 사연이 있었다.

군에서 제대한 뒤 재미 삼아 불법 스포츠도박에 손을 댄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1만원을 베팅했는데, 금세 수십만 원을 벌었다. 이씨는 생각지도 못했던 돈을 따게 되자 더욱 재미를 붙였다. 그는 “소액으로 하다가 돈을 따니까 욕심이 생겼다. 1만원을 베팅하면 20만~30만원을 벌었다. ‘이렇게 하면 학비도 벌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만원으로 시작한 베팅 금액은 점차 5만원, 10만원, 30만원대로 늘어갔다. 돈이 있을 때는 하루 베팅액이 100만원도 넘었다. 가장 많이 딸 때는 하루에 2백만원도 땄다”라고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이씨는 점차 ‘도박 중독’이 되어갔다. 돈이 떨어지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판돈을 벌었다.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도 돈을 빌려서 베팅을 했다. 금융권에서도 대출을 받았고, 대출이 막히자 사채를 끌어다 썼다. 카드 돌려 막기를 하다가 결국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빚쟁이가 된 이씨는 복학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금까지 사설 스포츠도박에 베팅한 금액은 1천5백만원 정도라고 한다. 지금도 8백만원 정도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있다. 이씨는 “사채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것을 갚기 위해 노동판을 전전하면서 지내고 있다.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살면서 술로 위안을 삼고 있을 뿐이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도박 중독’으로 인해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자 관련 학과에 진학했으나 이제는 복학하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설사 복학한다고 해도 졸업하면 서른두 살이 된다. 취업할 시기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과도 돈 때문에 갈등을 빚어 사이가 좋지 않다. 대인 관계도 엉망이 되었다. 친구들과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무엇보다 뭘 해보겠다는 ‘도전 의식’과 ‘자신감’을 잃었다.

그렇다고 도박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도 아니다. 이씨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가끔씩 한다. 웬만하면 끊어버리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학교 복학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 같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는 도박에 재미를 붙인 대학생들에게 충고 한마디를 했다. “나도 그냥 재미로 했는데, 어느새 중독이 되었다. 허황된 꿈을 꾸지 말고, 재미로라도 도박에 손대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인터넷·스포츠 도박, 대학생 일상 파고들어

도박 중독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은 이씨뿐만이 아니다. 부산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윤석대씨(가명·29)도 일명 ‘스포츠도박 중독자’이다. 윤씨는 대학 4학년 때 사설 스포츠도박을 처음 접했다. 아는 동생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며 소개해준 것이 ‘’였다. 윤씨는 인터넷으로 사설도박 사이트에 가입한 후 무료 사이버머니 5천원을 받았다. 이 돈으로 베팅을 했는데 하루 만에 50만원을 벌었다. 배당금을 찾은 후 나머지 돈으로 다시 베팅을 했다. 일주일 만에 다시 50만원을 벌었고, 또 일주일 만에 100만원을 벌었다. 윤씨는 밑천 한 푼 안 들이고 한 달 사이에 2백만원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쉽게 돈 버는 방법도 있었구나’라며 눈이 번쩍 떠졌다. 한번 돈 맛을 본 윤씨는 이때부터 스포츠도박에 푹 빠져들었다. 그는 “풀베팅을 하면 한 번에 100만원까지 걸 수 있고, 딸 수 있는 돈은 최대 3백만원까지이다. 한창 할 때는 한 번에 100만원씩 내질렀다. 그때는 돈을 따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윤씨는 하루에 많게는 30~50번까지 베팅을 한 적도 있다. 국내 스포츠 경기뿐만 아니라 해외 스포츠 경기에까지 베팅 영역을 넓혔다. 적중률이 좋을 때는 3일에 1천5백만원을 딸 때도 있었다. 그는 유명세도 탔다. 적중률이 높아지면서 사이트 안에서도 입소문이 났다. 윤씨는 “내 아이디만 대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인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박 꿈’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잃었다’ ‘땄다’를 반복하면서 윤씨의 주머니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중독 상태에 접어들면서 자제력도 상실했다.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고, 돈이 생기면 다시 베팅을 했다. 은행에서 1천5백만원 정도를 대출받고, 더는 대출이 어렵게 되자 사채도 썼다.

윤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도박 때문에 취업도 하지 못했다. 금융권과 사채, 여기에 지인들에게 빌린 돈까지 합치면 5천만원 정도 된다. 모두 윤씨가 갚아야 할 빚이다. 그는 “대학에 다닐 때는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 처음에는 돈을 딸 욕심이 생겼고, 돈을 잃으니까 본전 생각이 났다. 그렇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라며 후회했다. 윤씨는 두 달 전부터 도박 중독 치료를 받고 있다.

윤씨를 상담했던 유승훈 부산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 팀장은 “대학생들이 하는 도박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설 스포츠도박이다. 인터넷 불법 도박 사이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도박에 중독된 대학생들도 덩달아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대학생들의 도박 중독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씨와 윤씨의 경우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구가톨릭대 정신과학연구소가 2010년에 전국 4년제 대학 남녀 학생 2천26명을 상대로 ‘도박 실태 조사’를 한 결과 도박 중독 위험자는 2백24명(11%)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대학생 10명 중 한 명은 도박 중독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일반인과 비교하면 두 배가 많은 수치이다.

김영호 대구가톨릭대 연구교수는 “대학생은 일상생활 속에서 도박을 접하고 실제로도 많이 한다. 일반인들은 특별한 날에나 내기 도박을 하지만 대학생들은 평상시에 한다. 또 최근 인터넷 불법 도박이나 사설 스포츠 도박이 대중화되고 있는데, 주요 타깃이 대학생이다. 대학생들은 스포츠 게임에 돈을 걸고 스코어를 맞추는 데 희열을 느낀다. 돈을 따면 인기가 높아지고, 그것을 능력의 척도로 여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박에 중독된 대학생 대다수가 불행한 전철을 밟고 있다. 재미와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중독 상태에 이르고, 등록금을 날린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판돈을 모으고, 나중에는 은행권과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다가 결국 사채까지 쓰는 지경에 이른다. 그 후 신용불량자가 되어 쪽박을 차고 나면 빚에 쪼들리며 ‘폐인’이 된다. 마지막 종착역은 범죄에 나서는 것이다.

한 대학생이 인터넷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실제로 얼마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지난 3월12일 오전 2시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편의점에 강도가 들었다. 한 손에는 과도를 들었고, 얼굴은 마스크로 가렸다. 손님으로 가장해 들어간 그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을 위협해 현금 16만원을 빼앗았다. 다른 두 곳의 편의점에서도 90만원 상당의 금품을 갈취했다. 용의자는 대학 4학년생인 정 아무개씨(25)였다. 경기도 소재 4년제 대학에 다니던 정씨는 지난해 가을 학기에 휴학한 뒤 한 연구소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다. 한 달에 약 1백20만원 정도의 월급도 받았다.

정씨를 편의점 강도로 돌변시킨 것은 ‘도박 중독’이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호기심으로 한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접속했다. 여기에 빠져들면서 순식간에 1천만원을 잃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도박 자금이 바닥난 정씨는 생활비에 쪼들리고 빚 독촉을 견디다 못해 강도 행위까지 하게 되었다. 범행을 저지른 직후에도 정씨는 집에 돌아와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접속했다고 한다.

전영민 경기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장은 “최근 센터를 찾아오는 대학생들이 부쩍 늘어났다. 지난해 전반기까지 한 달에 한 명쯤 찾아왔다면 후반기부터는 한 달에 두세 명으로 늘어났다. 센터에 올 정도면 거의 ‘병적 도박 수준’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 추세로 미루어 보면 앞으로도 도박에 중독된 대학생은 계속 늘어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도박에 중독된 대학생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대학 당국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도박이 대학 밖에서 일어난다는 이유로 대학과 관련 짓지 않으려고 한다. 실제 어느 대학은 학교 축제 때에 학교 안에서 카지노를 공개적으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또 대학이 연구기관 등을 운영하면서 경마·경륜·카지노·토토 등 레저 업체로부터 펀딩을 받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한 대학 교수는 “혈안이 되어 있다”라고 표현했다. 도박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연구는 별로 없는 반면, 도박을 활성화하는 연구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돈에 눈먼 대학들이 학생들의 도박 중독을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스스로 조절할 수 없을 때는 주변에 도움 요청해야”

도박에 중독된 대학생들은 대개 공통된 징후를 보인다. 우선 돈과 관련된 거짓말이 늘어난다. 도박 자금이 필요한데도 다른 용도로 써야 한다며 돈을 달라거나 빌리는 횟수가 많아진다. 학교 공부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가령 지각이나 결석을 자주하거나 학점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대인 관계가 좁혀진다. PC방이나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거나, 학교생활에 소홀해지고 친구와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은행 대출이나 사채를 쓰고 개인 빚이 늘어간다. 불안, 분노 등을 자주 표출하고 때로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 도박을 조금이라도 안 하면 금단 증세를 보이는데, 이를 막아서면 분노가 폭발하면서 폭력적으로 변한다. 인터넷 중독과 비슷한 증상이다. 이 정도가 되면 정신 상태는 비정상적이고 판단력을 상실한다. 결국은 범죄에 이용되거나 스스로 범죄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전영민 경기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장은 “도박에 중독된 당사자가 혼자 치료하려고 하면 대부분 실패한다. 스스로 조절할 수 없을 때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치유센터에 찾아오면 개인상담도 하고, 여러 가지 치유 프로그램도 이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도박 중독자가 있는 가족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보통의 경우 도박 중독자의 부모들은 자녀가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박 빚을 갚아준다. 문제는 돈을 갚아주면 도박하고 싶은 동기가 유발되고, 이전보다 더 많은 빚을 진다는 점이다. 단위도 커지고 중독성이 더 강해지면서 병적인 도박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부모로서는 답답한 일이다.

전영민 센터장은 “무조건 도박 빚을 갚아주면 안 된다. 도박 빚은 자신이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해결하는 과정에서 도박 중독자와 가족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데, 그 과정을 치유 상담사와 함께하는 것이 가장 좋다. 돈을 갚아주더라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청소년들의 도박 중독에는 탄력성 요인이 있다. 주변에서 도와주면 얼마든지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만약 시기를 놓친다면 만성적인 도박 중독으로 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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