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새는 로열티를 막아라”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5.06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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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빠져나가는 기술 무역 적자 8조원 육박…재계 차원에서 악순환 고리 끊으려 대안 마련 나서

훼미리마트(아래)는 반복되는 로열티 문제를 해결하려고 최근 TF팀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재계가 일본으로 새는 로열티 단속에 팔을 걷어붙였다. 국내 기업의 기술 적자 비율은 해마다 두 자릿수 이상 상승하고 있다. 지난 2010년을 기준으로 7조8천5백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로열티는 8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일본 기술이나 브랜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일부 대기업은 최근 일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일본 전자업계 전체의 영업이익을 합한 것보다 많다. 현대차 역시 ‘기술 부문 스승’이라고 불리는 미쓰비시를 누르고 유럽에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은 여전히 일본의 핵심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통주인 막걸리나 김을 만들 때조차 일본에 로열티를 지급할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계가 최근 일본을 상대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로열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밑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편의점업계가 대표적인 예이다. 국내 편의점은 그동안 양적 성장을 거듭해왔다. 지난 2007년 1만호 점을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2만호 점을 넘어섰다. 매출 역시 올해 마의 10조원 벽을 뚫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국내에서 돈을 벌면 벌수록 해외로 로열티가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업체는 순이익의 절반 정도가 로열티로 나가고 있다. 편의점업계의 한 관계자는 “편의점 사업에 뛰어든 대다수 기업이 운영이나 유통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미국이나 일본 브랜드를 그대로 도입하다 보니 해마다 수백억 원의 로열티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훼미리마트(보광그룹)와 세븐일레븐(롯데그룹), 미니스톱(대상그룹), GS25(GS그룹) 등 골목 상권을 점령한 ‘빅4’ 편의점 중 세 곳은 해외 브랜드이다. 이들 세 곳에서 빠져나간 로열티만 지난해 2백억원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배당 수익까지 포함하면 일본으로 나가는 돈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훼미리마트는 최근 극비리에 TF(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로열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편의점업계에 파다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광그룹의 경영지원실 차원에서 이 TF를 관리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주요 거점의 점주를 대상으로 브랜드 전환을 위한 동의서를 받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업종 불문 ‘기술적 스승’으로부터 독립 움직임

훼미리마트측은 브랜드 전환 소문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일본훼미리마트와의 관계 훼손을 우려해서인지 “말도 안 된다”라고 해명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언론의 문의가 있었다. 브랜드 전환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최근 점주들을 상대로 브랜드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이 설문조사가 브랜드 변경설로 와전된 것 같다”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보광그룹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훼미리마트는 그동안 브랜드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최근에는 우리말 캐릭터인 ‘해미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해미리는 순수 우리말인 ‘해’와 ‘미리내’(별)의 합성어이다. 훼미리마트가 이참에 로열티 문제마저 끊어낼지 관련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 다른 편의점업체 관계자는 “훼미리마트는 현재 시장 1위 업체이다. 브랜드 전환에 성공하면 더는 로열티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후발 주자들 입장에서 훼미리마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도 최근 일본 기업을 상대로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자동차 사업 초기만 해도 현대차에는 엔진 관련 핵심 기술이 전무했다. 미쓰비시에 로열티를 내고 기술을 이전받아야 했다. 미쓰비시가 현대차의 ‘스승’이었다. 현대차는 독자 기술 개발에 나섰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미쓰비시는 당시 로열티 50% 인하를 조건으로 마북리 연구소의 폐쇄를 요구했다. 당장 수익은 줄어들 수 있지만 잠재적인 경쟁자를 키우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라고 말했다.

현대차 입장에서도 로열티 50% 인하는 달콤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독자적으로 엔진을 개발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 결과 현대차는 일본 기술에서 독립할 수 있었다. 현대차는 지난 1991년 액센트를 출시하면서 승용차 부문의 로열티를 털어냈다. 2005년에는 상용차 부문의 독립마저 이루어냈다. 현대차는 지난 2001년 3월 변속기 전문 생산과 국산화를 위해 현대파워텍을 설립했다. 설립 초기만 해도 후륜 자동 변속기 기술이 없었다. 때문에 일본 자트코(JATCO)나 미쓰비시에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변속기 부문 역시 꾸준한 R&D(연구·개발)를 통해 기술 독립을 마쳤다. 최근에는 미국 크라이슬러그룹에 로열티를 받고 변속기를 공급하고 있다. 크라이슬러 자동차가 2012년부터 6년간 자사 신형 중형차에 현대파워텍이 만든 전륜 6단 자동변속기 77만대를 장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조2천억원 규모이다. 지난해 7월 서산 공장에 실사를 왔던 크라이슬러 파워트레인(엔진과 변속기) 담당 부사장은 “자동화 설비와 품질력이 대단하다. 일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라고 극찬했다. 마지막까지 저울질하던 크라이슬러 자동차는 결국 일본 자트코(JATCO) 변속기 대신 파워텍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정선 기술개발팀 이사는 “전륜 4단과 5단 자동변속기도 처음에는 미쓰비시 기술로 생산했다. 하지만 2008년에는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을 완료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엔고(高)로 일본 부품값이 크게 오른 데다 우리 제품 기술력이 일본산에 못지않다고 알려지면서 몸값이 치솟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틸러스효성은 최근 금융 자동화 기기(ATM)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노틸러스효성은 금융 기기를 생산하는 효성그룹의 자회사이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ATM의 50% 정도를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핵심 부품인 ‘지폐 입출금 모듈(BBM)’ 기술이 없어 일본에 의존해야 했다. 해마다 일본에 빠져나가는 로열티가 적지 않았다. 효성은 독자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로열티를 낮추겠다는 일본 기업의 설득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틸러스효성은 부품 국산화를 강행했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주요 고객인 은행의 요구를 반영했다. 그 결과,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된 ATM이 탄생할 수 있었다. 노틸러스효성의 한 관계자는 “무엇보다 부품 자체가 자체 기술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생산 효율이나 장애율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라고 설명했다. 일부 기업은 ‘철옹성’으로 불리는 일본 소비 시장을 장악하기도 했다. 샘표식품과 대상은 최근 식초음료의 본고장인 일본에 역으로 식초음료를 수출했다. 결과는 긍정적이다. 두 회사는 지난 2010년 각각 5백30억원과 5백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샘표식품의 한 관계자는 “일본은 지난 2002년부터 일찌감치 식초음료 시장의 틀을 잡았다. 후발 주자인 국내 업체들이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

샘표식품과 대상이 수출하는 홍초음료가 최근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오른쪽은 현대차가 로열티를 받고 수출하는 변속기 모습.

“투자 효율화 통해 질적 발전 꾀해야”

이 회사들은 일본 제품과의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한다. 일본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식초음료 붐이 일었다. 식초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식초음료 시장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한편으로 지나치게 건강에만 신경 쓰다 보니 맛이 밋밋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내 업체들은 이 틈새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앞서의 관계자는 “지난해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일본 먹거리에 대한 불신이 확산된 것이 일본 시장 안착의 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일본 식품업계의 약점을 효과적으로 공략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기술 강국인 일본을 공략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일부는 일본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상태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양보다는 질에 치우치라고 한결같이 조언하고 있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이나 연구소의 특허 건수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럼에도 기술 무역 적자는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핵심 기술에 대한 투자 효율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타도 일본’ 외치던 두산과 중부발전이 신경전 벌이는 내막은?

한국중부발전은 최근 100만kw급 초대형 석탄화력발전소인 신보령 1·2호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 규모만 2조7천억원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최종적으로 두산중공업이 핵심 기기인 보일러와 터빈을 납품하는 업체로 선정되었다. 두산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현재 발주사인 한국중부발전과 막바지 협상을 진행 중이다. 순수 우리 기술로 일본 업체를 따라잡았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5백kw급 중·소형 발전 설비 시장은 두산중공업이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1천kw급 이상의 대형 발전 설비 시장은 일본 기업들이 선점한 상태이다. 당진화력 9·10호기, 태안화력 9·10호기 등 대형 발전소 건설 입찰에서 일본 업체들이 잇달아 승리했다. 이 때문에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자존심이 많이 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회장은 임원들을 불러놓고 “인건비가 세 배나 비싼 일본과의 경쟁에서 뒤진 것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이 그만큼 뒤처져 있다는 증거이다”라고 질타했다. 

이후 두산은 기술 개발을 통해 1천kw급 발전 장비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 2002~08년 지경부 산하 전력연구원과 함께 100만kw급 기술 개발도 마쳤다. 그 결과, 일본의 내로라하는 업체들을 제치고 신보령 1·2호기의 사업 주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업 주체인 중부발전과 두산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중부발전측은 “두산이 제공하는 기기가 100% 성능을 내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항목을 계약서에 삽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2002년부터 국책 과제로 연구해온 분야라서 성능을 자신한다”라고 맞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양측의 신경전을 일종의 ‘학습 효과’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그동안 여러 차례 발전 설비를 납품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80만kw급 발전소에도 핵심 기기를 납품했다. 이 과정에서 사고가 적지 않았다. 영흥화전 1·2호기의 경우, 54일간 발전이 중지되면서 국회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당진화전 9·10호기는 지식경제부가 부적절하게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선 협상자가 두산중공업에서 히타치로 바뀌기도 했다. 업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발주사인 한국동서발전은 당시 두산의 기술력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번에 발주한 100만kw급 발전 기기 역시 두산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이에 따른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중부발전이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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