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피곤한’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 김영선│서울과학종합대학원 연구교수 ()
  • 승인 2012.04.2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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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사회, 기업에게는 이윤 창출 기회 제공…심야 노동자의 건강 문제 등 부작용도

아침 출근길에 빵과 커피를 사가고 있는 직장인들. ⓒ 시사저널 박은숙

역사적으로 밤 시간은 통제의 대상이었다. 해가 진 후 밤 시간은 그야말로 자야 하는 시간이었다. 서구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원칙적으로’ 야간 노동은 금지되었고, 소등 시각 이후에는 술집도 손님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밤 시간은 닫혀 있었다. 국가가, 부르지 말아야 할 노래와 읽지 말아야 할 책뿐만 아니라 머리 길이나 치마 길이까지 통제했던 것처럼, 자야 하는 시간까지 철저하게 관리했던 시기가 있었다.

밤거리를 불 밝혀주는 거리의 등대인 편의점은 1989년 처음 들어선 이후 이제는 동네 어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확장되어 우편 업무를 비롯해 공과금 납부 업무까지도 빨아들이고 있다. 밤의 경제를 상징하는 것은 편의점만이 아니다. 김밥천국과 찜질방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만의 독특한 풍경으로 가히 24시간 사회의 한국형 쌍두마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싼값에 출출한 배를 채울 수 있고 지친 몸을 달랠 수 있는 24시간 쉼터와 같은 김밥천국과 찜질방은 24시간 사회가 대도시의 일상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밤이 없는(不夜)’ 24시간 사회는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신세계이다. 단지 밤과 낮, 활동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는 것이 아니다.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라고 되뇌고 시간을 분 단위로 관리하려는 현대인들에게 24시간 사회는 그야말로 ‘멋진 신세계’로 여겨진다. 실로 24시간 사회는 가처분 시간이 무제한 확대된 것으로 묘사되거나 편의, 효율, 자유, 기회 나아가 경쟁력, 자기 계발의 언어로 채색되고는 한다.

‘밤의 경제’ 좇는 노동자들 삶의 질 고민해야

24시간 사회의 더욱 본질적인 특징은 밤 시간이 소비의 시간이자 이윤 창출을 위한 자원의 대상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소비 자본주의의 외연이 시간적으로 확대된 것이자 더욱 불 밝힌 욕망의 집어등이 어둠을 뿌리째 삼켜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24시간 사회로의 변화는 기실 노동 세계의 변화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후 이전과는 다른 비표준 형태의 노동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유연화된 노동력이 스물 네 시간 회전 가능한 생산 영역으로 대거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달리 말해, 노동자들은 ‘아무래도 야간조가 좀 더 높은’ 임금을 쫓아 ‘밤의 경제’로 내달렸다고 볼 수 있다. 한 명은 낮에 일하고 나머지 한 명은 저녁에 일하는 맞벌이의 경우 노동 시간표가 서로 다르기에 일상이 서로 엇갈리게 되는 딜레마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것이 24시간 사회에서 우리가 노동 시간의 배치와 그에 따른 삶의 질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24시간 ‘늘 회전하는’ 사회는 24시간 ‘늘 피곤한’ 사회이기도 하다. 교대 근무자의 건강에 대한 연구들을 보면 교대 근무자 가운데 절대다수가 수면 장애를 호소한다. 심야 노동은 ‘또 다른 이름의 발암물질’이라는 세계보건기구의 경고를 되새겨 보아야 할 부분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현재 노동 정책이나 제도는 24시간 사회의 변동을 따라가지 못하고 지체되어 있다. 심야 노동자는 건강검진을 의무화하는 일본 노동안정위생법 같은 제도적 조치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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