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사색이 함께 걷는 유럽의 길들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2.04.23 22: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걷기 예찬론자’들에게서 듣는 산책의 미학 /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등이 ‘명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 있던 1천만 인구의 유대인 중 절반이 넘는 6백만명이 나치에 의해 희생되었다. 유대인의 생존력을 대학살(Holocaust)의 결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떠나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잘 훈련된 민족이다. BC 1440년경 모세의 지도 아래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4백년간의 식민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 ‘가나안(지금의 이스라엘)’으로 대이동을 했다. 이동하는 데 무려 40년이 걸렸다. 인류 역사상 한 민족이 40년을 이동한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실제 카이로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3백83㎞인데, 이들은 시나이 반도를 돌고 돌며 40년의 세월 끝에 약속의 땅에 도달했다. 한 세대가 넘는 기간을 민족 전체가 걷고 또 걸은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강해졌고,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40년간 매일 야영 생활과 이동을 반복해야 했던 유대인들이 여리고(Jericho) 성(城) 안에서 생활했던 정착민을 이겼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유래

ⓒ AP 연합
세계의 유명 산책로 중에 ‘산티아고 순례길(El Camino de Santiago)’만큼 유서 깊고 각국의 많은 사람이 찾고 싶어 하는 곳은 없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에 야고보(James)가 순례한 길로서 영어로는 ‘The Way of St. James’ 또는 ‘St. James Way’라고 불린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남쪽 도시 생 장 피에 드 포르트(Saint-Jean-Pied-de-Port) 또는 스페인 동북부에 있는 도시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로부터 산티아고 데 꼼포스테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의 구간으로 총 거리는 8백km이며, 하루에 평균 20km를 걸어서 약 40일이 소요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유래는 이렇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가 부활해 승천한 후 복음을 전파하러 떠난 제자들 중에 야고보는 전도를 위해 이베리아 반도로 갔다. 전도 여행 후 야고보는 행방이 묘연했었는데 그의 무덤이 발견된 곳이 캄푸스 스테야에(별이 떠 있는 들판)라고 불렸다가 지금은 콤포스테야(Compostella)로 불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스투리아(Asturia) 왕국의 알폰소 2세 왕은 이곳에 성당을 건설하도록 했다.

야고보 성인 숭배는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콤포스테야의 명성은 기독교 세계 전역에 멀리 퍼져나갔다가 11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황금시대를 맞았다. 성년(聖年)(야고보 성인의 축일인 7월25일이 주일인 해)이 되면 무려 40만명이나 되는 순례자들이 성인의 무덤을 향해 걸었다. 십자군 운동 중에도 예루살렘의 성문이 13세기 중반에 터키인들에게 점령당해 완전히 닫혀버리는 바람에 산티아고 순례길은 더욱더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게다가 이 순례는 시작되자마자 중세 유럽 전역에 놀라운 영적 활기와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고 알게 됨으로써 그들이 가진 과학과 의학, 철학 분야의 지식을 교환하며 지적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일은 단순히 운동을 겸한 긴 산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시작해야 한다. 순례길에 도전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고, 가는 여정에서 만나는 모르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자세로 떠나는 것이다. ‘산티아고를 향해 가는 사람들은 도보 여행자로 떠났다가 순례자로 돌아온다’라는 말이 있다. 기독교 신앙이 있건 없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걷게 될 미래를 다시 그려보는 기회를 갖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

산책 중 ‘떠오르는 영감’ 잡기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이작 뉴턴은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인 1664년, 페스트가 영국 전역에 퍼져 2년 동안 고향인 링컨셔(Lincolnshire)의 울즈소프에 있었다. 2년간의 한적한 시골 생활에서 산책을 통해 과학과 철학에 대한 사색과 실험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사과 일화로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도 이때 발견했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는 헤겔, 야스퍼스, 막스 베버, 괴테가 걸었던 ‘철학자의 길’이 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에게 산책은 생활의 기준이었기에 정확히 정해진 시간에 산책에 나섰고, 이웃들은 칸트를 보고 시간을 맞추었다.

일정한 속도와 보폭을 반복하다 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걷게 된다. 마치 자동차의 크루즈(cruise) 기능이나 비행기의 자동 항법 장치(auto-pilot)가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인류가 오랜 세월 반복해온 동작이기에 새가 둥지를 만드는 것처럼 본능에 의해서 걷고 있는 것이다. 새가 학습하지 않고도 둥지를 짓는 것처럼, 유전인자(DNA) 속에 이미 프로그램화되어 있어 의식하지 않고도 걷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들, 피부에 느껴지는 습도, 바람의 세기, 들렸다 안 들렸다 하는 자신의 발소리, 숨소리, 풀잎이나 나뭇잎에 바람이 스치는 불규칙한 소리, 새소리, 지나가는 행인 소리. 이 모든 것은 동시에 벌어지지만, 의식하고 느끼는 것은 한두 가지뿐이다. 하지만 무의식 중에 느끼는 것들 또한 자신이 경험하게 되는 베리에이션이다. 집중해서 의식적으로 들었든(인지), 무심코 느꼈든(감지) 모두 자신의 뇌리 속에 자리 잡는 것이다. 산책 중에 걷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떠오르는 영감’을 잡는 순간이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대학의 사회학자 브르통은 <걷기 예찬(Eloge de la Marche)>이라는 책에서 ‘걷기는 인간이 비로소 시간을 지배하는 방법이며, 시간 속에 거처를 정하고 왕국을 세우는 경험이 된다’라고 말한다. <걷기 예찬>에서 가장 와 닿는 말은 ‘걷기를 통해 인간은 누구나 비로소 시간의 주인이 된다’라는 것이다.

브르통이 <걷기 예찬>을 한 배경은 스트라스부르를 걸어보면 짐작할 수 있다. 스트라스부르는 알사스 로렌 지방의 수도로서, 라인 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바로 독일 도시 켈(Kehl)이 나온다. 도심 한가운데 섬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올드 시티(vieille ville)와 주변 운하를 잇는 다리를 건너서 도심 골목골목을 걷고 있으면, 스트라스부르가 주는 정겨움과 다채로운 거리 모습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된다.

여유 없이 바쁘게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시간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브르통의 말대로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은 시간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 브르통의 <걷기 예찬>은 산책이 사색을 위한 덕목임을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정신적 빈곤함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