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를 합창하니 국악 무대 신명나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4.23 00: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첫 국악합창단 이야기 다룬 영화 <두레소리> 화제…창작 국악에 대한 여러 실험 소개하는 계기도 돼

ⓒ 명필름 제공

‘국악 합창’은 ‘콜롬부스의 달걀’에 비길 만하다. 국악의 현대화를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현재의 우리 대중과 가장 친밀한 형식인 합창과 국악을 결합하는 작업은 어찌된 일인지 계속 공란으로 비어 있었다. 국악기로 서양 고전음악 연주하기, 현대적 편곡의 창작 민요 만들기, 서양식 악단 형식을 본떠 합주를 하는 국악관현악단의 등장, 다시 이야기의 힘에 기댄 창작 판소리와 국악 뮤지컬의 등장 등 죽어가는 국악을 되살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음에도 합창과 국악을 결합한 시도는 없었다.

영화 <두레소리>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국악합창단 이야기이다. 국악예술고에 아마추어 국악합창단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큐멘터리풍으로 담은 이 영화는 오는 5월 전국에 개봉된다. 독립영화로 제작된 이 영화에 투자해 일반 상업영화처럼 와이드 릴리즈 전략을 택한 명필름의 선택도 화제가 되고 있다. 명필름은 최근 <마당을 나온 암탉>과 <부러진 화살>, <건축학개론>의 연이은 성공으로 절정의 마케팅 ‘촉’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은 명필름 대표는 “시나리오를 건네받았을 때는 읽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완성된 것을 보니까 100억원을 들인 상업영화보다 완성도나 감동이 더 컸다”라고 밝혔다. 이 영화는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제에 소개되었다. 명필름과 손을 잡으면서 1년여의 숙성 과정을 거치고 올 초부터 대규모 시사회를 개최하면서 바람몰이에 나서고 있다. 독립영화로 <워낭소리> 이후 최대 규모 흥행작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국악계의 상황과 젊은 국악인의 새로운 시도 담아내

국악인 김용우 ⓒ 김용우 제공
이 영화는 성장 영화라는 외피에 합창이라는 소재를 버무린 음악영화이기도 하지만, 지금 현재 국악계의 상황과 젊은 국악인의 창작 국악에 대한 여러 시도를 보여주는 흔치 않은 국악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영화의 조정래 감독은 ‘바닥소리’라는 국악뮤지컬 단체에서 북을 치기도 하고 제작에 관여하기도 했던 반(半)국악인이다. ‘두레소리’라는 국악합창단을 만들고 영화 <두레소리>에 배우 겸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함현상씨는 바닥소리의 창작 국악뮤지컬 <닭들의 꿈>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국악을 알고 오늘의 국악을 광장으로 불러내기 위해 다양한 실천을 하는 이들이 만든 영화인 것이다. 실제로 유명 국악인과 국악계 관련 인물이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면서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합창이라는 친근한 소재를 판소리와 결합시켰다는 점이다. 합창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사용되는 소재이다. 그만큼 합창은 보는 이나 참여자의 감정 이입이 쉬운 장르이다. <남자의 자격>이라는 TV 예능 쇼를 인기 프로그램으로 끌어올린 것은 합창을 다룬 에피소드 덕이었다.   

이 영화는 창작 국악의 영역이 어디인가라는 논란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에 서양식 화음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양식 화음을 넣은 국악합창곡은 국악곡일까, 아니면 퓨전곡일까. 이 질문에 대해 함현상씨는 “지금 국악이라고 부르는 것에도 2백~3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것이 아닌 것이 있었을 것이다. 전통의 연장선에 있는 음악이 국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슬기가 전통 판소리를 하는데, 2012년의 슬기가 부르는 판소리는 100년 전의 판소리가 아니다.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것도 일반인에게는 가야금 음색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잘못된 시도이든, 잘된 시도이든 시도 자체를 무서워해서도 비난해서도 안 된다. 그런 작업을 통해 대중이 국악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알아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악 합창에서 화음을 제외하면 서양 음악에서 빌려온 것 없어”

ⓒ 바닥소리 제공
그는 “합창은 화음을 내는 개념인데 우리 음악에는 한 선율을 여럿이 부르는 경우는 있지만 화음이라는 개념은 없다. 처음에 두레소리도 기존 대중가요로 시작했다. 하지만 국악 전공자들이 부르니까 그 느낌이 아주 달랐다. 그래서 국악 합창을 위한 <이사 가는 날>이나 <두레소리> 같은 국악 합창곡을 만들게 되었다. 국악 합창에서 화음을 제외하면 서양 음악에서 빌려온 것이 없다. 나머지 장단이나 멜로디는 모두 국악의 방식대로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화음을 추가하면서 판소리에 합창이라는 카테고리가 새로 생긴 셈이다. 물론 우리 민요를 서양식으로 부른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반대로 화음을 넣은 창작 국악을 판소리 창법으로 불러서 결과물을 내놓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국악관현악단을 위한 창작곡에서 이미 서양식 화음이 도입되어 있다. 전통 5음계로 화음을 만들어내려는 시도까지 나아가고 있다. 두레소리는 화음을 집어넣고 반주를 넣은 국악 합창이라는 것을 시도했다. 함씨는 “사람은 사람 목소리에 더 쉽게 반응한다”라고 말했다. 시사회에서는 국악 합창에 대한 반응이 좋다.

창작 국악의 스펙트럼으로 보자면 국악합창단 두레소리는 코러스에 서양식 아카펠라를 도입한 소리꾼 김용우의 신민요와 국악 전공자 4명과 베이스 가수 1명으로 이루어진 아카펠라 그룹 ‘토리스’가 시도한 영역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인적 구성원으로 보면 창작 뮤지컬 그룹 ‘바닥소리’의 작업에 참여했던 그룹과 교류가 깊다. 함현상씨는 바닥소리의 레퍼토리 <닭들의 꿈>을 작곡했고, 선배인 황호준씨의 <간밤 이야기>나 <왕세자 실종 사건>의 성취를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 바닥소리 제공
이런 시도에도 국악의 미래는 아직까지는 불투명하다. 국악을 자발적으로 누리는 계층이 극히 제한적이다 보니 국악인들은 학교에서 선생으로 남거나 부업이어야 할 레슨이 본업이 된다. 네이버에서 국악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전통문화평론가 한덕택씨는 “이맘때쯤이면 국악 카페에 중고 국악기를 판다는 글이 쏟아져 나온다.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마땅히 진로가 없으니까 국악기가 매물로 나온다”라고 사정을 전했다.

단역으로 이 영화에 ‘1초 출연’을 하기도 한 한덕택씨는 “이 영화를 시사회에서 본 국악계 인사들은 많이 공감한다. 이것이 국악계가 당면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예술하는 이들이 소리만 알고 연습만 잘하면 되는 화려한 직업으로 아는데 그들도 미래의 불확실성과 진로 때문에 고민하고 산다”라고 말했다.

함현상씨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음악이 이슈가 된다면, 사람들이 국악도 들을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위축되어 있는 국악계가 더 큰 용기를 얻고 더 많은 시도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두레소리> 영화음악보다 더 친근하고 들을 만한 창작 국악이 많다. 소개될 기회가 적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이 시도를 하고 있는데 주목받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이 음반이 관객들로 하여금 우리 음악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레소리 합창단원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는 5년 뒤쯤 우리 소리에 대한 인식이나 대접이 얼마나 바뀌었을지 궁금하다.

  

ⓒ 명필름 제공
<두레소리>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함현상씨는 국악예술고와 중앙대 한국음악과(97학번)에서 작곡을 전공한 국악계의 신진 작곡가이다. ROTC로 군에 입대한 그는 군악대장으로 군 생활을 마친 뒤 2006년 10월 한국국악예술고에 강사로 출강하면서 2008년 겨울 ‘두레소리’를 만들어 지금까지 두레소리 합창단을 이끌고 있다.

그는 이 영화의 조정래 감독을 바닥소리 등 국악 단체에서 북 치는 고수로 처음 만났다. 바닥소리 등 국악 공연을 하면 조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기록하는 것을 보고 ‘그런 재주도 있나 보다’ 하는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조감독에게 국악예술고에 창작 국악합창곡을 하는 두레소리라는 동아리가 있는데 이런저런 사연이 있다고 얘기하면서 ‘영화 같지 않느냐’라고 하자 조감독이 ‘영화로 만들자’고 역제안을 하는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알고 보니 고수 조정래는 함씨의 학교 동문이었고, 독립영화 감독이었다.

그는 국악 창작곡을 하는 이유에 대해 “지금 우리나라 대다수 사람이 우리 음악이 좋다 나쁘다고 판단할 능력조차 없다. 들을 기회도 없고, 그렇다 보니 숫제 모르니까. 그럼에도 우리 국악인이 대중을 향해 두려움 없이 접근하지 않으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다. 내가 학생일 때에는 사람들이 왜 국악을 듣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사람들이 재미가 없으면 듣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음악을 재미있고 좋게 만드는 데 대해서 조심스럽지만 두려움 없이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주변에서 대학원 마치고 정식 교사가 되라고 하지만 교사가 되고 싶은 꿈은 없다. 시켜줄 일도 없을 것이고.(웃음) 내가 학생을 가르치는 데는 지금도 문제 없다. 곡 쓰는 데도 문제 없고. 레슨만으로도 차 끌고 다닐 수 있겠지만 내 음악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벌써 그 길로 빠졌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