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가 된 유기견들, 야생성 되찾을까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04.23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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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등에서 무리 짓고 살며 공격성 보이기도…그대로 두면 먼 조상인 늑대의 기질로 변할 수 있어

“야생의 늑대는 사람이 집에 데려오면서 온순한 성질이 보전되어 개로 바뀌어갔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사람의 집은 먹이가 공급되는 곳이었고, 쉴 곳이었다. 한번 온순해진 야생 동물은 그 성격을 후대에 물려주지만 자연으로 돌아가면 언제라도 다시 야생성을 되찾는다.” ⓒ ITAR-TAS

북한산 일대에 들개 수십 마리가 돌아다녀 비상이 걸렸다. 들개들이 무리지어 다니면서 등산객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2~3년 전에는 고작 한두 마리가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을 뿐인데, 지금은 야생에서 번식을 거듭해 텃새처럼 텃개가 되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다.

개, 야생 동물 중 가장 먼저 가축화돼

들개 출현은 비단 북한산만의 일이 아니다. 경기 시화호도 들개로 인해 비상이 걸렸었는가 하면, 제주 한라산에서도 야생 들개들의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가축을 무차별 습격하는 사례가 해마다 발생한다. 들개가 나타날 때마다 포획 작전을 벌이고 있지만 게릴라식으로 출몰하는 야생 들개들을 완전히 소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개는 어떻게 인간과 살게 되었고, 또 들개들이 출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출몰하는 들개는 태어날 때부터 들개가 아니고 대부분 집에서 키우다 버려진 유기견이다. 집에서 기르던 가축이 자연으로 돌아가 다시 야생성을 찾은 것이다. 이 들개들은 개의 조상인 늑대의 기질을 잊지 않아서 늑대처럼 활동이 날렵하고 성질도 거칠다. 습성도 늑대와 비슷해 무리를 짓고 살며 우두머리가 존재한다. 우두머리의 명령에는 철저히 복종한다. 이들은 야생의 늑대와 달리 배가 불러도 끊임없이 사냥을 하는 공격성을 보이기도 한다.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는다는 야생의 법칙에 아직 철저히 길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한라산 고산 지대에서 노루가 내려오면 들개가 달려가 여지없이 물어 죽이는 것이 이들의 공격성을 보여준다.

지구상에는 이러한 야생 개가 많다. 특히 인도에는 많이 존재한다. 많은 전문가는 길들여지지 않은 개가 원시 교화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집개가 다시 늑대로 돌아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그대로 두면 이 들개들이 먼 조상인 늑대와 똑같은 야성을 되찾을 수도 있다.

개는 야생 동물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가축이 되어 전세계에서 널리 사육되고 있는 동물이다. 개의 조상은 중국 장강 이남에서 길들여진 회색늑대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개가 늑대로부터 갈라지기 시작한 것은 1만5천년 전이다.

2002년 스웨덴의 왕립기술연구소의 피터 볼라이넨 박사와 중국과학원 징류 박사는 전세계 6백54종의 개 유전자를 조사했다. 그 결과 개의 조상은 1만5천년 전 동아시아에서 살았는데 그 후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인류가 1만4천년 전 베링해협을 건너 미주 대륙에 정착할 무렵 이 회색늑대를 가축으로 데리고 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개의 선조인 야생 늑대는 지구상에 채 10만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런데 그들의 후손인 개는 현재 수십억 마리가 살아가고 있다.

과학자들은 야생 늑대가 가축 개로 변한 것은 유전자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러시아의 동물학자 스티븐 부디안스키는 2000년 출간한 <개에 대하여>라는 저서에서 ‘늑대 무리 중 인간의 집 근처에 떨어진 음식을 먹던 온순한 늑대끼리 새끼를 낳아 세대를 거치면서 개로 분화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냥을 하는 것보다 음식을 주워 먹는 것이 더 편했고 이렇게 편하게 살다 보니 먹이를 공격할 필요가 없어졌다. 공격성을 결정짓는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성질이 온순해졌고 온순한 새끼를 많이 낳아 사람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생물학자 드미트리 벨라예프가 이끄는 세포학 및 유전학 연구소 팀은 여러 모피 동물 사육장에서 1백30마리의 여우를 선발해 늑대에서 개로 진화한 과정을 재현해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사육을 시작했다. 1972년 온순한 야생 동물끼리 교배를 시키면 가축이 되는지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야생 쥐에서 온순한 쥐와 공격적인 쥐를 골라 두 개의 실험실에 분리한 후 계속 번식시켜 나갔다.

포유류 4천여 종 중 가축이 된 종은 온순한 성질의 유전자 가져

그리고 30년 뒤 두 쥐의 성격을 살펴본 결과 공격적인 쥐는 야생 쥐처럼 그대로 공격적이었고 온순한 쥐는 집쥐처럼 온순한 성격에 사람을 공격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피하지도 않았다. 이는 야생 동물을 집으로 데려온다고 해서 모두 길들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결국 가축 유전자가 따로 있는 셈이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유류 4천여 종 중 10여 종만 가축이 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야생 동물이 가축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은 온순한 성질의 유전자이다. 야생 늑대가 가축 개로 변할 수 있었던 것도 공격성 성질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온순한 유전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밝힌 공격성 유전자는 MAOA(Monoamine oxidase A), TPH2 등 16개이다. 핀란드 헬싱키 대학 로페 티카넨 박사에 따르면 TPH2나 MAOA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호르몬이 뇌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을 파괴하면 폭력적 행동을 유발하기 쉽다고 주장한다. 세로토닌은 행동과 기분에 영향을 주는데, 평상심을 유지하도록 돕고 성격도 온순하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호르몬이 부족할 경우 우울증을 겪을 수 있다. 사람의 경우도 MAOA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남자 청소년은 미래에 폭력 조직에 가입하고 조직원 중에서도 총처럼 더 난폭한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TPH2 유전자에서는 1천4백73번째의 염기가 C일 때 공격성을 띤다. 하지만 1천4백73번째의 염기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G로 변할 경우 온순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G는 세로토닌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전적이든 아니든 공격적 행위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의 조절 이상과 연관된다. 미국의 정신과의사 에밀리 코카로는 동물에게 세로토닌을 감소시키는 약을 투여하면 공격 행동이 늘어나고,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약제를 투여하면 공격 행동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야생의 늑대는 사람이 집에 데려오면서 온순한 성질이 보전되어 개로 바뀌어갔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사람의 집은 먹이가 공급되는 곳이었고, 쉴 곳이었다. 더는 떨지 않아도 되고 이런 안락한 생활에 적응해나가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번 온순해진 야생 동물은 그 성격을 후대에 물려주지만 자연으로 돌아가면 언제라도 다시 야생성을 되찾는다.

어찌 보면 개가 자연으로 돌아가 야생성을 되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자연 방사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산의 유기견처럼 버림의 결과물은 오로지 자연 파괴만을 낳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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