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마’ 아성을 ‘우유’가 흔들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3.27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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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커피믹스 시장 진출 1년 만에 동서식품 점유율 잠식…동서식품은 제품 다양화로 맞불

이창환 동서식품 대표 1953년 서울 출생 1975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79년 동서식품 입사 1988년 동서식품 차장 1998년 동서식품 대표이사 2001년 동서식품 감사 2004년 동서식품 대표이사 ⓒ 동서식품 제공
한 봉지에 겨우 12g인 커피믹스는 할인점에서 취급하는 2천7백여 가지 상품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이다. 지난 2009년과 2010년 연속 주식인 쌀과 라면을 제치고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커피믹스 시장의 규모는 지난해 1조1천억원을 넘어섰고 올해 1조5천억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이 시장의 절대 강자는 1976년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라는 제품을 만들어낸 동서식품이다. 이후 국내 커피믹스 시장은 동서식품의 ‘맥심’과 1987년 출시된 네슬레의 ‘테이스터스 초이스’가 8 대 2로 나눠 갖는 양강 구도를 유지했다. 20여 년 이상 조용하던 이 시장은 지난 2010년 12월 남양유업의 등장으로 발칵 뒤집혔다. 시장 진출 6개월 만에 2위였던 네슬레를 제쳤고, 1년 만에 시장 점유율 17%(대형 마트 기준)를 기록했다. 80%대를 유지하던 동서식품의 시장 점유율을 75%로 끌어내린 것이다.

남양유업, ‘무지방 우유’ 내세워 마케팅 성공

그 핵심에 김웅 남양유업 대표가 있다. 2010년 1월 대표이사직에 오른 김대표는 1년 만에 커피믹스(프렌치카페 카페믹스)를 시장에 내놓았다. 우유 전문 기업이 커피 시장에 첫발을 내딛는 모험이었다. 당시만 해도 김대표는 업계 2위인 네슬레를 따라잡기만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의중에 1위인 동서식품을 겨냥한 무기를 품고 있었다. 그것은 우유를 넣은 커피믹스였다. 1974년 커피크리머(프리마)를 개발한 동서식품은 커피믹스에 크리머를 넣어왔다. 김대표는 당시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는 화학적 합성품인 카세인 대신 무지방 우유를 넣은 커피믹스이다”라고 소개했다. 카세인은 우유에 있는 단백질 성분으로 요구르트, 치즈, 수프 등 각종 식품에 쓰이며 인체에 무해하다. 동서식품의 커피믹스에 쓰이는 크리머에 들어 있는 성분이기도 하다. 마치 몸에 좋지 않은 듯한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줄 수 있다고 판단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남양유업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마케팅 측면에서는 성공해서 남양유업은 단숨에 시장의 제2 강자로 등장했다.

김웅 남양유업 대표 1953년 경기 평택 출생 1975년 단국대 경영학과 졸업 1978년 남양유업 입사 1996년 남양유업 총무부장 2002년 남양유업 총무상무 2005년 남양유업 경영지원본부장 2010년 남양유업 대표이사 취임 ⓒ 남양유업 제공
김대표의 모험은 이창환 동서식품 대표에게 위기로 작용했다. “커피믹스 시장은 단기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장기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경쟁을 통해 시장이 더 커진다면 좋은 일이다”라며 남양유업의 추격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이대표는 지난 2월 우유를 넣은 커피믹스(맥심 화이트골드)를 출시했다.

국내 커피믹스 시장을 열었던 동서식품이 후발 주자인 남양유업을 따라가는 형국이 된 셈이다. 2004년부터 동서식품의 수장을 맡아온 이대표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남양유업의 김대표는 추격의 고삐를 조였다. 동서식품의 신제품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해당 업체 직원의 제보 등을 통해 카세인이 1.39% 포함된 것을 확인했다. 우유를 넣으면서도 카세인을 따로 첨가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카세인 대신 우유를 넣은 제품이라고 광고하는 것은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이다. 동서식품은 의도적으로 제품 성분에 카세인을 표기하지도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서식품 관계자는 “카세인을 따로 넣지 않는다. 우유를 넣기 때문에 그 안의 카세인 성분이 있을 뿐이다. 남양유업 제품에도 카세인이 들어 있다”라고 맞받아쳤다.

우유에 있는 카세인은 해로운 성분이 아니라고 식약청이 이미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양사는 이 성분을 두고 법정 다툼까지 갈 기세여서 소비자는 혼란스럽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 성분의 유해성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어 자사 제품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전형적인 노이즈 마케팅이다. 남양유업은 커피믹스 시장 후발 주자임에도 성장이 매우 빠른 편이다. 동서식품이 위기감을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양사가 우유를 넣은 커피믹스로 맞붙은 만큼 앞으로 동일 조건에서 진검 승부를 벌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동서식품의 이대표와 남양유업의 김대표 모두 시장 점유율을 두고 신경이 곤두선 상태이다. 동서식품은 AC닐슨 자료를 인용하면서 양사의 시장 점유율에 큰 의미가 없음을 설명했다. 2010년 83.5%에서 지난해 79.8%로 감소했고, 남양유업은 같은 기간 0.2%에서 7.2%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남양유업은 소매점 매출의 45%를 차지하는 할인점에서의 시장 점유율을 내놓았다. 지난해 초 1.7%이던 시장 점유율이 올해 초 22.7%로 증가했고, 동서식품은 같은 기간 84.8%에서 72.6%로 하락했다는 설명이다. 양사가 시장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지만, 동서식품은 하락세이고 남양유업이 상승세인 것만은 사실이다.

양사 대표 모두 1953년생이고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또 1970년대 말 지금의 직장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대표 자리에 오른 점도 같다. 그러나 경영 목표는 다르다. 이대표는 동서식품을 커피 전문 기업으로 키울 심산이고, 김대표는 남양유업을 종합 식품회사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동서식품, 캡슐 커피 이어 원두커피 도전

ⓒ 시사저널 전영기
동서식품의 이대표는 커피 제품을 다양화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캡슐 커피(타시모)를 내놓고 해마다 30% 성장해 1천억원대 규모를 형성 중인 캡슐 커피 시장에 진출했다. 또 인스턴트 커피와 원두 커피를 섞은 형태의 제품(카누)도 출시해 원두커피 시장에도 한 발을 들여놓았다. 원두에 익숙해지는 소비자의 입맛을 잡기 위한 이대표의 전략이다. 이 제품은 출시 6개월 만에 100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커피 전문 기업이라면 커피전문점 시장에도 진출할 만하다. 그러나 이대표는 평소 “동서식품은 커피 제조와 유통에 강점이 있다. 서비스가 중요한 영역인 커피전문점은 핵심 역량과 거리가 있다. 기존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라며 커피전문점 시장 진출 전망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사실 이대표가 사업을 다각화하지 못하는 배경은 따로 있다. 동서식품 지분의 절반은 미국 크래프트푸즈가 가지고 있다. 맥심·맥스웰하우스의 상표도 크래프트푸즈의 소유이다. 따라서 동서식품 단독으로 사업을 전개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남양유업의 김대표는 경쟁사의 약점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커피 외에 다양한 제품을 취급하면서 세계적인 종합 식품회사로 발돋움할 전략을 세웠다. 유산균 등 바이오 기술을 결합한 고기능 식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2백억원을 투자해 충남 공주에 알레르기 분석기 등 첨단 장비를 갖춘 중앙연구소를 짓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김대표는 “지난해 1조2천억원이었던 매출을 올해 1조5천억원으로 잡았다. 이를 통해 세계적인 종합 식품회사로 도약하겠다. 건강 기능 식품, 제빵, 제과, 아이스크림 등의 분야로 진출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시장을 살피고 있다”라고 밝혔다.

커피 시장에 뛰어든 만큼 커피 제품 판매도 늘릴 방침이다. 커피믹스 시장 점유율을 올해 30%까지 끌어올려 2천억~3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짰다. 김대표는 “커피믹스 판매량이 증가함에 따라 생산 라인을 4개에서 14개로 증설했다. 하루에 6백만개를 생산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김대표는 특히 수출에 박차를 가해 2014년 매출의 10%를 외국에서 벌어들일 생각이다. 이미 중국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 커피믹스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중국 시장에서는 인구 100만명 이상의 2백50개 도시 중에서 1인당 GDP 3천 달러가 넘는 34개 도시가 핵심 타깃이다. 현지에 직원을 파견해 올해 판로 개척을 마칠 예정이다.

분유 제품은 이미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중남미 지역에 수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출 확대를 발판으로 서유럽까지 파고들 장기 계획도 마련했다. 분유업계 거대 기업인 네슬레나 씨밀락과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1989년 다국적 기업 네슬레가 ‘테이스터스 초이스’로 국내 커피믹스 시장을 40% 가까이 차지했지만 동서식품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사업 다각화로 무장한 남양유업 김대표의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동서식품 이대표의 숙제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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