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단체급식 사업, 중소기업 몫 되려나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2.03.27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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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동반 성장 정책을 유통·서비스까지로 범위 확대 추진

지난 3월21일 서울시청 구내식당에서 직원들이 급식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정부가 소규모 단체급식 사업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일반 제조업 분야에서 중소기업 적합 업종과 품목을 선정한 데 이어 유통·서비스 분야까지 범위를 확대하려는 것이다. 국무총리실은 지난해 10월 청와대에 올린 ‘서비스업 및 자영업 등 소상공인 최근 분위기’ 보고서에서 ‘제조 분야 중심으로 추진된 동반 성장 정책이 유통·서비스 분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며 기업형 슈퍼마켓(SSM)과 산업용 자재 통합 유통 사업(MRO)과 함께 단체급식업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중소 상공인 단체는 청와대, 국무총리실, 동반성장위원회에 공공 기관, 공기업, 산업체, 오피스 시장에서 1일 1천식 이하 단체급식 사업은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탄원하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중소 상공인의 요구를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첫 테이프는 박재완 기획재정부장관이 끊었다. 박재완 장관은 3월21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위기관리대책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공공 기관 구내식당 위탁 운영 사업은 중소기업에만 참여 기회를 주겠다”라고 발표했다. 공공기관 86개는 지금 구내식당 1백81개소를 단체급식업체에게 위탁해 경영하고 있다. 지금 공공 기관 구내식당 40.9%인 74개를 대기업집단 계열사 상위 여섯 개 업체가 운영하고 있다. 공공 기관 구내식당의 위탁 계약은 1년 단위로 갱신된다. 올해 상반기에 69개, 하반기에 63개가 계약이 만료된다. 정부는 계약 만료되는 구내식당은 중소기업에게 맡긴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74개 공공기관 단체급식업은 순차적으로 중소 급식업체에게 넘어간다. 중소 상공인 단체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정부 주요 기관에 단체급식업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호소하고 다닌 것이 결실을 보게 된 듯하다”라고 말했다.   

 

“공공 기관·산업체·오피스 시장 넘겨줘야”

하지만 중소 상공인들은 ‘미흡한 조처’라고 일갈한다. 중소 상공인 단체 관계자는 “공공 기관 구내식당이 단체급식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에 불과하다. 산업체와 오피스 시장 일부에도 대기업의 참여 제한이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공공 기관이 단체급식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가량으로 시장 규모는 5천억원 안팎이다. 공공 기관 구내식당은 위탁과 직영으로 나뉜다. 공공기관 위탁 시장의 규모는 1천억원대로 이 시장이 전체 급식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에 불과하다. 비중이 가장 큰 부문은 산업체와 오피스 시장이다. 산업체와 오피스 시장이 전체 급식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8%와 18%이다. 대기업집단 소속 상위 다섯 개 업체가 56%나 되는 산업체와 오피스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중소 상공인 단체는 ‘산업체와 오피스 부문에서도 1일 1천식 미만과 매출액 연 10억원 미만 시장은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단체급식업은 산업체, 병원, 학교, 기숙사, 관공서에서 일하는 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식사를 계속적으로 제공하는 산업이다. 국내 시장 규모는 7조3천억원이다. 대기업집단 소속 단체급식업체가 그룹 내 계열사를 상대로 식사를 단체로 제공하는 시장(내부 판매 시장)은 1조원 안팎이다. 그룹 내 계열사가 아니라 외부 급식업체에게 구내식당 운영을 위탁하는 시장은 1조5천억원가량이다. 대기업은 그룹 계열사부터 급식을 제공하면서 순조롭게 시장에 진입한다. 계열사 시장에서 얻은 수익을 재투자하면서 외부 급식 시장으로 발을 뻗치며 중소기업 시장을 빨아들인다. 현대그린푸드는 단체급식 시장에서 후발 주자였으나 범현대가 계열사들의 단체급식 시장을 수주받으면서 순식간에 단체급식 시장 3위로 치고 올라갔다. 현대백화점그룹 내 백화점이나 계열사 단체급식을 수의 계약으로 수주한다.

그룹 내 시장이 아니라 외부 시장에서도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경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기업은 유통망, 브랜드 인지도, 자체 가공 상품 유통을 통해 중소기업을 압도한다. 기업 내 식자재 유통 사업 부문의 지원까지 받는다. 그렇다 보니 단체급식 업체가 4천여 개나 되지만 아워홈, 삼성에버랜드, 현대그린푸드, 신세계푸드, CJ프레시웨이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풀무원 계열사 ECMD, 동원홈푸드, 아라코가 그 뒤를 쫓고 있다. 중소 상공인 단체는 ‘위탁 시장 67.5%를 대기업이 독식하다 보니 종소 업체는 33%의 시장을 나눠 먹어야 한다’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중소 단체급식업체 수는 4천5백66개나 된다. 업종 종사자는 3만6천명을 웃돈다. 

“식자재-대기업, 급식-중소기업 분담도”

공공 기관까지 중소기업 참여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경쟁 입찰 자격 조건에서 매출액이나 대규모 단체급식 경험을 집어넣는다.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는 지난 3월5일 연수원 식당 위탁 운영 업체를 선정하면서 ‘단체급식 매출액 연 5백억원 이상 업체로서 1개 단위 사업장 1일 식수 인원이 5백인 이상 단체급식 사업장을 최근 2년(2010~11년) 이내 2개 이상 운영하는 업체’로 참가 자격을 제한했다. 매출 2백억원 규모 소규모 단체급식업체를 운영하는 신 아무개 사장은 “대기업 계열사야 자기 식구 챙기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으나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상당수가 중소기업 참여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 상생 경영이나 동반 성장이라는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정기옥 서울상공회의소 노원구상공회의소장은 “중소 급식업체가 참여 자격을 제한하지 않는 사업장에서 대기업과 경쟁해 경쟁 입찰에서 이기는 사례가 상당하다. 사업장 설문조사에서도 수요자인 임직원 만족도는 아주 높게 나온다. 상당수 공공 기관이나 공기업이 중소기업 참여를 막는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행정력을 발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소 상공인들은 ‘단체급식업은 중소업체에게 맡기고, 대기업은 식자재 유통 시장에 주력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음식 재료나 부자재를 유통업체나 식당에게 공급하는 식재 유통 업종은 대기업에 적합하다. 중소 상공인들도 ‘식자재 유통 사업은 대기업이 맡아야 한다’라고 수긍한다. 식자재 운영 사업은 대형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규모 냉동·냉장 설비뿐만 아니라 첨단 검수 시스템, 차량 위치 추적 시스템, 대형 물류센터까지 갖추어야 한다. 자산 규모가 2백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선행 투자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인 현대그린푸드는 지난 2010년 12월 물류센터를 설립하는 데 2백69억원을 투자해야 했다.

중소 상공인 단체는 대기업 급식업체는 CJ프레시웨이처럼 사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CJ프레시웨이 총매출에서 단체급식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식자재 유통 사업 부문이 90%나 된다. 아워홈이나 현대그린푸드는 이와 다르다. 시장 1위 아워홈은 단체급식 비중이 60%가 넘는다. 시장 3위 현대그린푸드는 단체급식 사업 부문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9%(지난해 3분기 기준)이다. 정기옥 회장은 “식자재 유통은 대기업, 단체급식업은 중소기업으로 역할이 구분되어야 국내 중소 급식업체도 프랑스 소덱소와 같이 세계 경쟁력을 갖춘 업체로 성장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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