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종연횡’ 금융권, 새판 짜기 한창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
  • 승인 2012.03.1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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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농협금융지주 출범 등 ‘지각 변동’…민영화 등으로 더 큰 변화 전망

(앞줄 왼쪽부터)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 어윤대 KB금융 회장.(뒷줄 왼쪽부터)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외환은행과 결합했기 때문에 하나금융이 이제 신한금융을 뛰어넘게 되었다.”(하나금융) “더 이상 4강 금융지주는 없다. 농협을 포함해 5강 금융지주 체제로 불러달라.”(농협금융)

금융권에 새판이 짜이고 있다. 은행을 중심으로 합종연횡이 본격화하고 있다. 하나금융이 지난 2월 말 외환은행을 자회사로 편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단숨에 1, 2위를 내다보는 3위 그룹이 되었다. 농협은 3월2일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1961년 옛 농협과 농협은행을 통합한 후 51년 만의 개편이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금융권의 공통된 얘기이다. 우리금융·산은금융의 민영화 이슈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영업 경쟁만으로 승부를 낼 수 없다는 의미이다.

금융권 서열 놓고 ‘물밑 신경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금융지주회사는 2001년 출범한 우리금융이다. 신탁 자산을 포함한 총자산이 지난해 말 기준 3백94억원에 달한다. 해마다 영국의 금융 전문지 <더 뱅커>가 선정하는 세계 1000대 은행에서 기본 자본과 총자산 기준으로 국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주회사 내에서는 우리·경남·광주은행 등 은행의 비중이 78%로 압도적이다. 뒤를 잇는 것은 KB금융이다. 시중 은행 중 덩치가 가장 큰 국민은행을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말 총자산이 3백61조원이다.

이번에 자산 순위에 변동이 생긴 것은 3위 그룹이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가 발단이다. 두 금융회사의 통합 자산은 3백43조원 규모이다. 하나금융의 기존 자산(2백19조원)에다 외환은행 자산(1백25조원)을 합한 결과이다. 신한금융(3백32조원)을 10조원 이상 따돌리는 것이다. 오는 3월23일 물러나는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하나금융이 외환은행과의 통합 시너지를 발휘한다면 신한금융을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다”라고 자신했다. 자산뿐만 아니라 수익성·생산성 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졸지에 4위로 밀린 신한금융은 자산 외에 당기순이익이나 생산성 등 다른 지표를 함께 따져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지난해에 금융권 처음으로 순익 3조원을 돌파했을 정도로 수익성 면에서는 여전히 최고이다. 4위 그룹으로 불리는 것은 맞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순익만 따져보아도 하나금융의 추격세가 만만치 않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1조2천2백80억원의 순익을 냈다. 총 8천7백56억원의 현대건설 매각 차익을 낸 외환은행 순익(1조7천2백45억원)과 단순 합산할 경우 2조9천5백25억원에 달한다. 신한금융 순익(3조1천억원)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신한·하나금융의 뒤를 이어 KB금융이 2조3천7백30억원, 우리금융이 2조1천5백61억원의 순익을 각각 달성했다.

지난 3월2일 충정로 농협 본사에서 신충식 농협금융지주 회장 겸 은행장 취임식이 열렸다. ⓒ 뉴시스

농협금융지주 출범도 금융계를 뒤흔든 ‘사건’이다. 종전에 굳건했던 금융지주 4강 체제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협이 가장 폭넓은 지방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단기간 내 자산 규모를 키울 수 있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손해보험을 거느리고 있는 점은 매우 유리한 부분이다. 향후 자동차보험 분야에 진출할 경우 몸집 불리기가 한층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농협금융의 지난해 말 총자산은 2백40조원 정도이다. 3백조원을 넘는 4대 금융지주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농협은 2020년까지 자산을 4백20조원으로 지금보다 두 배가량 더 키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농협 관계자는 “전국 곳곳에 1천1백72개의 지점이 거미줄처럼 깔려 있어 국민은행보다 폭넓은 영업망을 갖추고 있다. 2020년까지 연간 순익 3조8천억원을 내는 국내 최대 금융그룹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산은금융은 이들 5개 금융지주와 비교할 때 몸집이 작은 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이 1백72조원이다. 다만 수년 내에 민영화를 완료하면 본격적인 시장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산은금융은 별도로 소매 금융을 강화하기 위해 홍콩상하이은행(HSBC) 국내 지점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우리·신한 간 2위 싸움 치열

지난 1월27일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금융지주의 중심축인 은행들 간 경쟁은 어떠할까. 현재 국내 최대 은행은 국민은행이다. 자산 규모(2백76조7천억원) 및 점포 수(1천1백65개) 면에서 그렇다. 자산을 놓고 보면 국민은행 다음으로는 우리은행(2백58조4천억원), 신한은행(2백53조5천억원), 하나은행(1백67조3천억원) 순이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노조의 반발을 감안해 향후 5년간 하나·외환은행 간 합병을 추진하지 않을 방침이어서, 이같은 순위에 큰 변동이 생기기 어려운 구조이다.

하지만 해마다 알게 모르게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는 곳이 있다. 바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다. 두 금융회사의 점포 수는 우리은행 9백49개, 신한은행 9백65개이다. 옛 조흥은행과 합병한 신한은행 점포가 조금 더 많다. 하지만 차이가 10여 곳에 불과하다.

신탁을 포함한 자산 차이는 더 적다. 우리은행의 총자산은 2백58조4천억원이다. 신한은행(2백53조5천억원)보다 4조9천억원 많은 수준이다. 두 은행 간 자산 차이는 △2007년 10조2천억원 △2008년 4조5천억원 △2009년 4조3천억원 △2010년 2조8천억원 등으로 좁혀져왔다. 다만 지난해에 다소 벌어진 것은 이순우 우리은행장과 서진원 신한은행장 간 경영 전략 차이 때문이다. 지난해 취임한 이행장이 공격적으로 영업 확대를 추진한 반면, 서행장은 다소 보수적인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두 은행 간 자산 격차는 올해 다시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은행이 영업을 강조하지만 재무 건전성 부담이 작지 않아서다. 대출을 늘리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이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올해 역시 건전성을 키우는 작업을 계속하기로 했다”라며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신한은행에 밀려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라고 강조했다. 우리은행은 선두권을 유지하기 위해 상반기 중 서울 신촌 및 강남역에 ‘스마트 브랜치’를 시범 설치하는 한편, 다양한 고객 마케팅을 전개한다는 전략이다.

신한은행은 오히려 느긋한 편이다. 신한은행측은 “해마다 최고의 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에 2위냐, 3위냐에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자산 규모 면에서도 빠른 시간 안에 경쟁 은행을 충분히 앞설 수 있다”라고 자신했다.

금융계에서는 하나은행과 농협은행의 움직임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우선 소매 금융의 강자로 꼽혀온 하나은행은 외환은행과 시너지를 낼 여지가 있다. 하나금융이 각 사업 부문을 통합 관리하는 매트릭스 체제를 맨 먼저 도입한 만큼, 적어도 프라이빗뱅킹(PB) 분야에서는 하나·외환은행 간 통합 효과를 볼 것이라는 예측이다. 농협은행 역시 금융지주 체제의 장점을 십분 활용할 경우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변화보다 안정”…내부 출신 임원 선임 바람

금융지주와 은행권은 내부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속속 선임하거나 연임시키고 있다. 외부 환경 변화가 큰 만큼 내부 결속을 다지고 안정을 찾자는 취지에서다.

하나금융은 김승유 회장의 후임으로 김정태 하나은행장을 확정해놓은 상태이다. ‘백전노장 영업통’인 김회장 내정자는 오는 3월23일부터 하나금융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특히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흐트러졌던 조직을 재정비하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하나금융은 해외 점포가 많은 외환은행을 자회사로 편입한 만큼 전략적으로 해외 금융 비즈니스를 강화한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지난 2월 미국의 한국계 교포 은행인 새한은행을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한은행은 로스앤젤레스 지역 10개 교포 은행 중 4위권이다. 총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5억8천만 달러이고, 임직원은 1백30여 명이다. 농협금융의 초대 회장 겸 농협은행장으로는 신충식 전 전무가 선임되었다. 당초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정이었다. 관료 출신이 임명되거나, 적어도 회장과 행장이 따로 선임될 것으로 관측되었기 때문이다.

신한금융은 최근 서진원 신한은행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신한생명 사장 출신인 서행장은 2015년까지 은행을 3년 더 이끌게 되었다. 앞서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은 “금융회사 CEO를 자주 교체하는 것은 업무의 연속성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신한금융은 허창기 제주은행장 역시 연임시켰다. 다만 제주은행의 실적이 경쟁 은행보다 낫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연임 기간을 1년으로 제한했다.

부산은행은 성세환 경영관리그룹 부행장을 이장호 전 행장 후임으로 낙점했다. 오는 3월22일 취임하는 성부행장은 BS금융 부사장을 겸직해왔다. 하춘수 대구은행장은 연임에 성공했다. 하행장의 임기는 2015년 3월까지이다.

금융지주 및 은행권에서 내부 출신 CEO가 각광받게 된 것은 안정적인 조직 운영이 필요한 시기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서다. 금융계 관계자는 “새로 짜인 경영진 면면을 뜯어보면 올해의 경영 전략 방향을 읽을 수 있다. 금융 위기 여파가 가라앉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경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내년에는 금융권 변화가 더 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 중심에 우리금융이 있다. 국내 최대 금융지주회사인 우리금융이 매물로 나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새 대통령이 선출된 직후여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민영화 작업이 힘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업계에서는 KB금융 또는 신한금융을 우리금융의 유력한 인수 후보로 보고 있다.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 등 세부 작업이 필요하지만, 이들 금융지주 외에는 대안을 찾기 어려워서다. 산업 자본이나 외국 자본, 사모 펀드 등은 자본력을 갖고 있지만 법 또는 정서상 그들에게 우리금융을 넘기기는 쉽지 않다. 만약 KB금융이나 신한금융이 우리금융 인수에 성공한다면, 자산 7백조원이 넘는 초대형 금융그룹이 탄생하게 된다. 국내 1, 2위 그룹 간 격차가 두 배 정도로 벌어지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주 공모 또는 블록세일(장 마감 후 대량 매매) 방식으로 예금보험공사가 가지고 있는 우리금융 지분을 전량 처분할 수 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이 경우 우리금융발 빅뱅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공산이 크다. 외형적 변화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은금융의 민영화 작업도 본격화된다. 산은금융은 오는 10월 말 약 2조원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한다. 산은금융측은 “IPO가 대형 투자은행이 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런저런 인연이 있는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과 어윤대 KB금융 회장,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 등은 대선 결과에 따라 거취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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