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58만t 쌓이는 ‘e-쓰레기’를 어찌할까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3.05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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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전기·전자 제품 해마다 2천만대가량 버려져 처리 곤란한 데다 제품 속 유해 물질이 건강까지 위협

ⓒ 일러스트 임성구

애니메이션 영화 <월-E>에서, 청소 로봇 월-E는 인간이 떠난 지구에 홀로 남아 수백 년 동안 쓰레기를 치운다. 그 쓰레기의 대부분이 폐기된 전기·전자제품, 즉 전자쓰레기(e-waste)이다. 전자쓰레기에 있는 중금속과 유해 물질은 플라스틱처럼 오랜 기간 썩지도 않으면서 땅, 공기, 물을 오염시킨다. 휴대전화의 스팸 문자 등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쓰레기의 일종이다. 국제 사회는 전자쓰레기를 자동차 매연보다 심각한 환경 재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세계 전자쓰레기 배출량을 연간 4천만~5천만t으로 보고 있다. 이 중에서 한국은 58만t(환경부 2010년 추산)의 전자쓰레기를 배출한다. 이 양은 해마다 5.5%씩 늘어나고 있다. 해마다 TV·세탁기·냉장고와 같은 전자제품이 2천만대가량 버려지는 셈이다. 올해 말에는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면서 1천만대에 육박하는 아날로그 TV가 전자쓰레기로 배출될 전망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납 성분만 8만~14만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늘어나는 전자쓰레기 자체도 처리가 곤란한 문제이지만 전자제품에 있는 유해 물질은 건강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납은 신경 조직을 파괴하거나 간을 손상시키고, 카드뮴은 폐, 신장, 단백뇨, 후각 상실 등을 유발한다. 휴대전화의 회로기판은 소각될 때 환경 호르몬과 발암 물질을 발생한다. 또 액정을 소각하면 인체에 치명적인 유독 물질인 다이옥신이 나온다. 땅에 매립하는 것도 문제이다. 한 해에 버려지는 휴대전화 8백54만대에 포함된 납은 2천2백20kg인데, 이는 4천만t의 물을 마실 수 없는 물로 오염시키는 양이라고 한다. 물 1ℓ당 납 성분이 0.05mg을 넘지 않아야 식수 기준에 부합한다.

유해 물질 사용 제한 품목 확대할 계획

이런 이유로 정부는 주요 10개 전자제품(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PC, 오디오, 휴대전화, 프린터, 복사기, 팩스)의 유해 물질(납, 수은, 카드뮴 등)의 사용 제한을 정해두었다. 환경부는 최근 많이 보급된 노트북과 김치냉장고 등 93개 가전제품으로 대상 품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기업은 해마다 생산한 전자제품의 일정 비율(15~35%)에 해당하는 폐전자제품을 회수해서 적절하게 처리해야 한다. 김철웅 소니코리아 환경팀장은 “생산자 재활용 책임 제도(ERP)에 따라 정부가 해마다 각 기업에 전자쓰레기 수거 및 폐기 비율을 정한다. 예컨대 소니 TV의 재활용 의무 비율은 2003년 11%였던 것이 지난해 21%로 두 배 증가했다. TV 100대를 출하하면 21대의 폐기된 TV를 수집해 재활용센터로 보내야 한다. 소비자가 신제품으로 교체하면서 기존 제품을 내놓거나, AS센터에서도 고칠 수 없는 제품을 폐기해달라고 맡긴다”라고 설명했다.

기업과 함께 시민단체와 학교도 전자쓰레기 수거에 나섰다. 녹색소비자연대는 지난해 소니코리아와 함께 ‘전자쓰레기 제로’ 운동을 폈다. 이효숙 녹색소비자연대 사무처장은 “수도권 3백여 개 중학교 등에서 9천여 명의 학생이 참가해서 휴대전화 4t, CD 4.7t, 건전지 12t, 소형 가전제품 2t 등 총 22.7t의 전자쓰레기를 수거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수거되어 재활용하거나 폐기하는 양은 12만t 정도이다. 또 일부는 중고 시장, 지자체 등을 통해 거래되거나 재사용된다. 한국은 일본, 유럽 국가들과 함께 전자쓰레기 재활용을 잘하는 편에 속한다. 미국과 호주는 매년 각각 3억~4억대의 폐전자제품을 배출하지만 재활용 비율은 20~30%로 저조하다.

문제는 전자쓰레기를 외국으로 불법 수출한다는 점이다. 한국폐기물학회 등에 따르면, 2010년 소비자가 신제품으로 바꾸면서 버린 1천8백44만대의 휴대전화 가운데 외국으로 불법 수출된 분량은 2백39만대로 추정된다. 판매점 등을 통해 합법적으로 수출된 1백78만대보다 많다. 실제로 인도에 유입되는 전자쓰레기의 절반 이상이 한국산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인도 빈민촌 사람들은 kg당 몇백 원에 불과한 구리를 얻기 위해 염산에 담긴 회로기판을 맨손으로 긁어낸다. 한국을 비롯한 IT 기기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전자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것이 국제 사회에 문제로 대두하자 세계 1백72개국이 협약을 맺었다. 전자쓰레기 등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을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카타리나 쿰머 페이리 바젤협약 사무국장은 “1989년만 해도 전자 기기 쓰레기는 쓰레기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유해 폐기물 중 하나이다”라며 전자쓰레기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1992년 발효된 이 협약에 한국은 1994년 사인했다. 그러나 편법으로 전자쓰레기를 해외에 방출하는 것은 여전하다. 바젤협약에 따르면,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량은 2005년 9백35만t에서 2006년 1천1백25만t으로 1년 새 약 20% 급증했다. 여기에 한국도 한몫하고 있다. 외국에 중고품을 수출하는 컨테이너에 전자쓰레기를 섞어넣는 편법을 동원한다. 수출 컨테이너 바깥쪽에는 중고품을 쌓고 그 안쪽에 전자쓰레기를 넣는 식이다. 실제로 전자쓰레기 마을로 알려진 가나의 아그보그블로쉬에는 매달 컨테이너 6백대 분량의 중고 전자제품이 수입된다. 배에 실려 있는 컨테어너에는 ‘기부’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지만 내용물의 80%는 작동 불량 등으로 사용할 수 없는 전자쓰레기라고 한다. 10대 아이들이 전자쓰레기를 소각하고 남은 구리로 돈을 번다. 이 과정에서 유독 가스가 공기 중으로 퍼져 건강을 위협한다.

이원영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 과장은 “중고 전자제품 수출은 서류상으로 이루어지고 실제 내용물을 확인하지 않는 허점이 있다. 단속이 허술한 틈을 이용해 전자쓰레기가 외국으로 방출된다”라고 말했다. 

전자쓰레기 불법 수출 막을 대안 ‘도시 광산’

유해성뿐만 아니라 자원 관리 면에서도 전자쓰레기를 재활용할 필요가 있다. 폐기된 전자제품에는 금·은·구리와 같은 값비싼 금속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 1t에는 금 2백80g, 은 3kg, 구리 100kg이 들어 있다. 1t의 광석에서 약 5g의 금을 생산하는 것과 비교하면 전자쓰레기는 ‘고급 원석’인 셈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ERI 사는 전자쓰레기에서 귀금속을 분리하는 업체이다. 하루에 처리하는 전자쓰레기는 약 73t으로 세계 최대 규모이다. TV 1t에서 금 13g, 은 2백62g, 휴대전화와 노트북에서 금 1백7g, 은 4백17g을 캐낸다. 이처럼 전자쓰레기에서 금, 철과 같은 쓸모 있는 자원을 뽑아내는 산업을 ‘도시 광산’이라고 부른다. 수은·납·크롬 등 중금속이 자동차 매연 못지않은 환경적 재앙이 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도시 광산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는 소규모 전자쓰레기 재활용 업체 49개소가 있을 뿐, 도시 광산은 발달하지 않은 편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대 정책팀장은 “전자쓰레기에는 세계 몇 개국에서만 생산하는 희귀 금속이 들어 있다. 따라서 도시 광산은 원자재 수입 부담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쓰레기들 

직장인 박진섭씨(38)는 최근 휴대전화를 바꾼 후부터 이상한 전화에 시달렸다. 아파트를 전세 놓을 생각이 없느냐는 부동산업자의 전화부터 신용카드 연체 대금을 갚으라는 독촉 메시지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전화번호도 바뀌었는데, 이전 전화번호 주인이 남긴 흔적이 일종의 전자쓰레기가 되어 되돌아온 셈이다. 옛 전화번호는 일정 기간 신규 가입자에게 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른바 전화번호 재활용인데, 28일이라는 기간이 짧아 유명무실하다. 박씨는 “일반 스팸 전화나 문자 외에 이전 전화번호 주인에게 가야 할 전화나 메시지가 많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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