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의 사랑 싣고 질주하는 현대·기아차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2.28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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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시장에서는 독일 차까지 ‘추월’하는 등 점유율 ‘쑥쑥’

독일 거리를 달리는 현대차 i30. ⓒ 현대기아차
미국 금융 정보업체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월 ‘현대자동차그룹이 유럽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폭스바겐을 흔들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그만큼 현대·기아차가 유럽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이다. 실제로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지난해 수요가 1천3백57만3천5백50만대로 전년 대비 1.4% 감소한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기아차는 전년 대비 11.6% 증가한 69만2천여 대를 팔아 유럽 자동차시장 판매 순위 8위에 올랐다.

1위 폭스바겐은 3백16만7천여 대를 팔았고, PSA그룹(1백68만2천여 대)과 르노(1백29만6천여 대)는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현대·기아차는 유럽 시장을 5% 점유하면서 다임러(4.9%)와 토요타(4.1%)를 제쳤다. 지난해 4월 5%대를 넘긴 시장 점유율을 올해 1월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지난 1월 시장 점유율은 5.5%를 기록했다.

정의선 부회장 ‘등장’하면서 유럽 집중 공략

현대·기아차가 최근 몇 년 동안 유럽 시장에 전력을 쏟아부은 결과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부회장직을 맡으면서 경영 일선에 등장한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경영 일선에 나선 정부회장의 ‘연착륙’을 돕는 결과로 이어졌다. 부회장직을 맡은 2009년을 전후로 현대·기아차는 유럽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현대차의 유럽 진출은 1997년 유럽 시장 진입을 노리고 터키에 공장을 설립하면서 본격화되었다. 기존 6만대 연간 생산 규모를 10만대로 늘리는 증설 작업을 2007년에 마쳤다. 이에 힘입어 터키 공장에서 생산된 차의 판매량은 2009년 전년에 비해 1백12%나 상승했다. 현대차는 터키 시장에서 일본, 미국, 독일 자동차를 제치고 시장 점유율(16.4%) 1위를 차지했다. 엑센트(국내명 베르나)는 2009년 터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승용차가 되었다.

현대차가 체코에 두 번째 유럽 공장을 준공한 시점도 2009년이다. 이 공장은 단순 조립 공장이 아니라 연구·개발부터 생산, 판매,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종합 현지화 체계를 갖추었다. 해치백 준중형 모델 i30를 포함해 3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한다. 기아차도 2007년 슬로바키아에 공장을 준공했다. 씨드(seed)를 비롯해 3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한다. 이 공장도 프레스, 차체, 도장 등 자동차 전체 생산 과정을 담당하는 종합 생산 시설이다.

준공식에 참석했던 정몽구 회장은 “이 공장 설립을 계기로 유럽에서 연구·개발, 마케팅, 생산, 판매, 사후 관리까지 일관된 현지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슬로바키아 공장이 유럽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독일에 있는 유럽법인도 증설했다. 2006년에는 현대차가 독일 오펜바흐 시에서 유럽법인 신사옥 준공식을 가졌고, 기아차는 200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럽총괄법인 신사옥 준공식을 마쳤다. 특히 프랑크푸르트 유럽총괄법인 신사옥에는 기아차 디자인만 담당하는 유럽디자인센터까지 입주시켰다. 이로써 디자인, 생산, 판매 등 전반적인 자동차 사업을 유럽 내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체계를 갖춘 셈이다. 이런 정지 작업을 한 후인 2009년 8월 정의선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등장했다.

소비자 신뢰받는 데 소홀했던 점 지적받아

유럽 시장에서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현대·기아차는 모든 역량을 준중형차 모델에 집중했다. 연간 1천5백만대 규모의 유럽 승용차 시장에서 30%가 넘는 5백만대가 준중형차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 살아남으면 유럽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셈이다.

현대·기아차는 i30와 씨드를 주력 모델로 삼았다. 2007년 처음 유럽에 공개한 i30가 유럽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독일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는 i30가 준중형차 부문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폭스바겐 골프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차는 2008년 유럽 5대 자동차 시장인 스페인에서 아시아 자동차로는 처음으로 ‘올해 최고의 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결과로 i30 모델은 유럽 각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유럽 시장에서만 60만대가 판매된 씨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2007년 ‘한국차가 몰려온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씨드를 호평했다. 준중형차 격전지로 꼽히는 프랑스의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빌>도 2009년 준중형차 부문에서 씨드를 최고 차로 꼽았다. 현대·기아차의 판매가 꾸준히 증가하자 독일 자동차 전문가들은 유럽 시장에서 확고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폭스바겐을 위협할 적수 중 하나로 현대·기아차를 꼽고 있다.

올해 현대·기아차는 새로운 목표를 정했다. 현대차는 유럽 시장에서 46만5천대를, 기아차는 35만6천대를 판매할 계획이다. 모두 82만여 대로 유럽 시장 판매 순위 5위권 진입도 노릴 만한 규모이다. 이를 위해 현대·기아차는 새로운 모델로 유럽 시장을 공략할 방침이다. 이원희 현대차 재경본부장은 “올해 유럽 시장 수요는 지난해보다 4.5% 감소한 1천4백40만대로 예상한다. 그럼에도 현대·기아차는 기존의 i30와 씨드 외에도 디젤 엔진을 장착한 i40와 K5를 유럽 시장에서 선보여 지난해보다 판매를  15~22% 늘릴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독일에 있는 현대차 딜러점. ⓒ 현대기아차

이런 계획을 내놓은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중형 왜건 i40는 지난해 벤츠, 아우디, BMW를 누르고 ‘2011 유럽 올해의 차체 기술상’(ACI 주관)을 받았다. 아시아 자동차 기업 중에 유럽 차체 기술상 1위에 오른 것은 현대차가 처음이다. 차체가 가벼워 연료 효율이 높으면서도 안전하게 설계되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또 1977년 유럽에 진출한 현대차가 34년 만인 2011년 유럽자동차공업협회 회원사가 된 점도 전망을 밝게 하는 요인이다. 보수적인 유럽자동차공업협회에는 16개 회원사가 있는데, 유럽 이외의 지역에 근거를 둔 업체는 GM, 포드, 토요타, 현대차뿐이다. 1991년 유럽 자동차업계를 대표해서 설립된 이 협회는 유럽 자동차 정책과 법안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기아차의 앞날이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현대차를 높게 평가하지만, 정작 차를 사는 유럽 소비자로부터는 폭넓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자동차 전문 사이트(drivethedeal.com)에 따르면, 소비자의 82%는 현대차 대신 폭스바겐을 선택했다. 경영 실적을 위해 외형 키우기에는 성공했지만 유럽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받는 면에는 소홀했던 점이 현대·기아차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 셈이다. 유럽 소비자들에게 자사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현대·기아차는 최근 미국 슈퍼볼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광고를 하는 등 브랜드 노출 빈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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