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3D 콘텐츠 산업에 희망 몰고온 ‘점박이’ 공룡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2.07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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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3D 애니메이션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 한 주간 36만 관객 끌어모으며 기록 갱신 기대

지난해 여름 개봉한 3D 영화 <7광구>의 흥행 실패로 깜빡깜빡하던 한국 3D 영화에 회생 신호가 켜졌다.

1년여 개봉이 지연되다 지난 1월26일 개봉한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 3D>(이하 <점박이>)가 개봉 첫 주에 36만6천5백23명을 동원해 한국 만화영화 흥행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전 기록은 지난해 7월 개봉 첫 주에 33만5천8백59명을 기록한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이 영화는 최종 관객 2백20만명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다. 공룡 점박이가 반년여 만에 이 기록을 깬 것이다.

<점박이>는 2월 봄 방학 기간을 앞두고 있어서 총 관객 수에서도 <마당을 나온 암탉>의 기록을 깰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점박이>는 2백25만명 이상을 동원하게 되면 무조건 한 가지 타이틀을 더 갖게 된다. 바로 한국 3D 영화 사상 최고 흥행작이라는 기록이다. <7광구>의 국내 관객 동원 수는 2백24만명이었다. <7광구>의 제작비는 1백30억원이었다. 이에 반해 <점박이>는 80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점박이>의 제작 총책임자인 민병천 올리브스튜디오 대표는 “손익 분기점이 1백50만명이다. 3백만명이 들어오면 순수익이 1백40억원 정도 된다”라고 밝혔다.

출판·전시·완구 등 1천억원대 이상의 부가가치 시장까지

게다가 <점박이>는 출판과 전시, 완구 등 1천억원대 이상의 부가가치 시장을 열 것으로 보여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다. 한국 영화계에 3D 영화의 상업적 가치를 재확인시켜주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2D 영화가 성인 입장료로 9천원 수준인 데 반해 <점박이>는 1만3천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영화관 업자들은 3D 콘텐츠를 적극 환영하고 있지만, <아바타> 이후 쏟아져나온 3D 콘텐츠 중 <드래곤 길들이기>를 제외하고는 관객들에게 ‘3D로 볼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런 마당에 아이들로부터는 열광적인 지지를, 아이를 동반한 부모로부터는 ‘볼만하다’는 평가를 얻는 <점박이>의 등장은 3D 산업계에는 단비 같은 존재이다.

2009년 1월에 제작에 들어간 <점박이>는 2011년에 개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09년 12월 <아바타>가 개봉하고 난 뒤 제작진에 비상이 걸렸다. 총제작자인 민병천 올리브스튜디오 대표(영화 <유령>의 감독)는 “잘못하다가는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겠다, 최소한 <아바타>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불가피하게 1년여 더 작업 시간이 늘어났다”라고 밝혔다. ‘기술적 완성도는 나쁘지 않았다’고 평가받는 <7광구>가 투자사나 배급사 사정으로 개봉일이 확정된 상태에서 개봉 전날까지 CG팀에서 필름을 만지고 또 만졌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3D 영화에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투자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개봉 뒤 기술적 완성도에 대해 나쁜 평가도 나오지 않아

다행히 <점박이>는 개봉 뒤 기술적 완성도 때문에 평자들에게 ‘까이지는’ 않고 있다. 민대표는 “6천억원의 예산을 들인 <아바타>의 기술 수준을 80억원으로는 넘기 힘들다. 거기다 <아바타>보다 실사 비중이 높은 까다로운 작업임에도 근접한 기술력을 보여주었고, 할리우드산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보다 3D 완성도가 뒤지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점박이>의 흥행 호조는 한국산 컴퓨터그래픽(CG) 애니메이션 시대와 한국산 3D 영화의 붐을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에서는 <토이 스토리>의 성공 이후 극장용 CG 애니메이션이 전성기에 들어섰고, <아바타> 성공 이후 3D 영화 제작 붐이 일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두 분야 모두 미지의 땅으로 남아 있었다.

<점박이>의 흥행 성공은 캐릭터 산업에서도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내 캐릭터 시장은 뽀로로나 뿌까 등 만화 캐릭터 위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점박이는 새로운 캐릭터 시장을 만들어냈다. 포토리얼리즘으로 환생한 8천만년 전의 공룡이 고유의 캐릭터권을 갖는 특이한 사례가 등장한 것이다. 사실 화석 연구에 기반한 공룡의 모습은 어느 완구회사가 만들어내도 거기서 거기이다. 하지만 <점박이> 제작진은 타르보사우르스의 얼굴에 ‘점 하나를 찍어서’ 다른 공룡과 구별되는 ‘점박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민병천 대표는 “점박이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캐릭터 권리를 갖는 공룡이다. 얼굴의 점 때문에 그렇다. <점박이2>에서는 이런 외모의 개성을 더욱 강화해 캐릭터 상품의 가치를 더 높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올리브스튜디오에서 개발한 캐릭터 코코몽 시리즈로 캐릭터 라이선스 사업의 맛을 본 민대표는 점박이의 캐릭터 사업과 공연 전시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민대표는 “현재 뽀로로의 연 부가 판권 시장이 1천억원대이고 코코몽은 2백억원대 수준이다. 점박이는 사전 라이선스 계약 금액만 7억원 정도이다. 하지만 공룡이 글로벌 아이템이라는 점에서 뽀로로보다 더 클 수 있는 시장이라고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캐릭터를 이용한 테마파크나 대형 전시는 새롭게 떠오르는 시장이다. 코코몽의 경우 올리브스튜디오와 팜트리라는 회사가 합자해 ‘코코몽 에코파크’라는 3천평 정도의 테마파크를 경기도 분당에 세워 지난 1월 초 개장했다. 에코파크측은 연 35억원 정도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올리브스튜디오의 모회사인 이랜드는 계열사인 NC백화점 두 곳에 7백평 규모의 ‘코코몽 키즈랜드’를 입점시켰고 올해 안에 스무 곳으로 확장시킬 예정이다. 코코몽 키즈랜드에서도 연 30억원 정도의 매출이 기대되고 있다. 

점박이는 특별한 ‘라이브’ 테마파크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민대표는 “점박이를 주인공으로 해 1년여간의 준비를 통해 제대로 된 라이브쇼를 만들 것이다”라고 밝혔다. 5억~6억원 정도를 들여서 방학을 겨냥해 뚝딱 만들어내는 공룡 쇼가 아닌 메카트로닉스와 결합한 실물대 공룡이 배경 영상과 결합해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진짜 공룡 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영화 제작비 이상의 예산이 투입될 <점박이> 라이브 쇼는 내년 초 일산 킨텍스에서 3천평 정도의 공간을 빌려 열 예정이다.

해외에서는 영국 BBC에서 방영한 공룡 다큐멘터리를 원작으로 한 <워킹 위드 다이노소어>라는 공룡 쇼가 유명하다. 3백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이 쇼는 2m가 넘는 공룡이 등장해 천천히 걷고 숨을 쉬고 눈동자를 깜빡여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다만 쇼의 규모 때문에 6천~7천석이 넘는 아레나 같은 대규모 공간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마스트엔터테인먼트가 지난 2010년 국내에 들여오려다 공연장과 일정 조정에 문제가 생겨서 지연되고 있다. 마스트측은 “내년 이후에는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일본이나 싱가포르 등 아시아 투어를 하고 있는 이 쇼의 유료 관객 점유율은 100%에 가까울 정도로 성공적이다.

그동안 ‘한국 3D 산업은 TV 수신기 세트 제작 판매가 전부’라는 자조를 들어왔다. 하드웨어 제조에서는 세계 시장을 리드하고 있지만 콘텐츠 제작 분야에서는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점박이>의 흥행 호조가 <미스터 고> 등 충무로 3D 영화 프로젝트에 경험과 활기를 불어넣어줄지 주목된다.

한상호 EBS PD는 지난 2008년부터 공룡과 함께 살았다. TV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이 시청률과 프로그램 수출에 대박이 나면서 국내에서 다큐멘터리로 받을 수 있는 상은 모두 수상했다. 이어 2009년부터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 3D> 작업에 매달렸다. 그 와중에 지난해 7월 <공룡전사 빈>(비룡소 출간)이라는 판타지 소설을 내기도 했다.  

공룡에 대해 상상하고 공룡을 주제로 글을 쓰고 공룡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그에게 ‘왜 아이들은 공룡에 열광하는가’라고 묻자 “공룡은 지구를 1억5천만년 동안 지배한 동물이고 인류는 고작 2백만년밖에 안 된다. 우리의 원형 기억질 안에 공룡에 대한 기억이 있지 않고서야 전세계 모든 아이가 4~5세가 되면 공룡앓이를 시작하는지에 대해 설명이 안 된다. 이것은 문화와 인종, 국적을 불문하고 보편적인 현상이다”라고 답했다.

그가 공룡에 매달리게 된 이유는 지난 2005년 영국에서 다큐멘터리로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부터다. “그 당시 나는 다큐가 100년 이상 된 장르라 세계의 탐구를 다루는, 즉 ‘채굴’을 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보았다. 대신 디지털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사라진 시대나 사라진 문명, 사라진 동물 같은 것을 영상으로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BBC나 ZDF 같은 유명 방송사에서 팩트에 기반한 허구를 다룬 팩션 다큐가 등장했다. 그런 작품 중 우리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한국에서는 한반도의 공룡을 다루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 >에서 다룬 내용은 과학적 탐구의 결과물이다. 점박이 공룡 가족은 캐나다 앨버타의 한 장소에서 발견된 9개의 공룡 화석 뼈를 연구한 논문 <사냥꾼 가족>의 성과에 바탕을 두었다. 학자들은 몸집이 크고 작은 같은 종의 공룡 뼈가 한 장소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결국 그 공룡 떼가 가족이라는 추론을 내렸다. 그는 그 논문을 보고 ‘타르보사우르스의 가족 이야기’를 떠올렸고, 점박이의 성장기라는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이야기는 팩트에 기반했다. 교활한 사냥꾼으로 등장하는 벨로시랩터는 <점박이>에서는 머리에 화관처럼 털이 달렸고, 앞다리에도 털이 달렸다. 과거 공룡 관련 서적에 등장한 벨로시랩터는 털이 없는 매끈한 모습이었지만 이는 2000년대 초반 발굴된 벨로시랩터의 앞다리 화석에 새의 깃털 같은 흔적이 확인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수정되었다. 점박이(타르보사우르스)를 한반도의 공룡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발굴 고고학과 고생물학의 성과이다. 

그는 지난 4년여간 공룡과 함께 살면서 캐릭터 산업의 잠재력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미래의 영화가 디지털 배우가 중심이라면 100% 디지털 크리쳐인 점박이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우리도 좀 더 하면 <아바타>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방송국이라는 울타리가 있었기에 다큐멘터리 작업을 연속적으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민간이라면 기획안 단계에서 폐기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사람과 공룡이 함께 등장하는 판타지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 했다. 그가 <공룡전사 빈>이라는 미래 판타지 소설을 낸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현 문명이 멸망한 뒤 공룡이 다시 등장하는 내용이라 사람 캐릭터의 등장도 가능해지고 이야기가 한층 더 풍부해진다. 그는 “지금은 스토리텔링의 시대이다. 지금 할리우드가 만들고 있는 영화는 신화나 ‘~맨’ 시리즈 만화의 영화판이다. 과거에는 기술 때문에 만들 수 없었던 이야기이다. 때문에 지금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모든 것이 스토리텔링 위주인 시대가 오고 있다. 나는 스토리텔러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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