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CJ, ‘충무로 곳간’도 틀어쥐다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2.01.1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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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력 앞세워 영화 제작부터 배급까지 장악해…‘영화 유통 고속도로’ CGV의 성공도 한몫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CJ E&M 본사. ⓒ 시사저널 김미류
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한 중견 감독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오래도록 메가폰을 잡지 못했던 그는 새 영화를 촬영하게 되었다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미심쩍게 물어보는 이들에게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하기로 결정했어.” 그제야 사람들은 그 감독의 차기작이 현실화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 CJ엔터테인먼트의 투자는 충무로에서 일종의 보증수표로 통하기 때문이다. 이 감독의 사례는 국내 영화가에서 CJ의 든든한 입지를 증명하는, 극히 별스럽지 않은 경우 가운데 하나이다.

국내 영화계에서 CJ는 일종의 알파에서 오메가이다. 충무로에 롯데쇼핑㈜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 등 대기업 계열의 다른 큰손이 있지만 영향력에서 CJ엔터테인먼트에 견주기는 힘들다. 되레 CJ의 영향력은 갈수록 강화되는 형국이다. 요컨대 CJ는 충무로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CJ가 충무로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큰 지렛대는 CJ엔터테인먼트이다. 투자와 배급을 주 업무로 하는 CJ엔터테인먼트는 제작과 영화 수입 일까지 겸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의 위상은 배급 시장 점유율에서 드러난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CJ엔터테인먼트의 지난해 1~11월 전국 관객 점유율은 34%였다. 2위인 롯데의 점유율(15.9%)의 두 배가 넘는다. 매출로 따지면 CJ엔터테인먼트의 점유율은 35.5%로 롯데(15%)를 압도했다. 최근 6백만 관객을 돌파한 <미션임파서블4>와 <마이웨이>의 12월 흥행 성과를 감안하면 CJ엔터테인먼트의 지난해 시장 점유율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CJ엔터테인먼트의 전국 관객 점유율은 27.8%였다.

CJ엔터테인먼트는 외화와 한국 영화 모두에서 높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외화 부문 관객 점유율은 28.5%로 미국 직배사 SPBV코리아(19.4%)를 따돌렸다. CJ엔터테인먼트는 지분 참여를 했던 드림웍스가 파라마운트에 인수된 뒤 파라마운트 작품의 국내 배급도 맡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의 지난해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은 39.2%였다. CJ엔터테인먼트의 독립영화 배급 브랜드인 필라멘트픽쳐스의 관객 점유율 1%를 보태면 CJ엔터테인먼트의 점유율은 40%를 넘어서게 된다. CJ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한국 영화 흥행 10위권에 <써니>와 <완득이> 등 네 편을 올려놓았다.

영화판을 쥐락펴락하는 CJ의 힘은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 CGV에서 비롯된 측면도 크다. 1990년대 후반 CJ의 영화 사업 진출에 첨병 역할을 했던 CGV는 국내 멀티플렉스의 대명사로 통한다. 영화진흥위원회(약칭 영진위)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CGV의 전국 스크린 수는 8백6개(자회사 프리머스 스크린 포함)이다. 현재 한국의 전체 스크린 수는 2천3개이다. 8백6개는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씨너스(메가박스와 씨너스는 지난해 합병)가 보유한 스크린 수를 모두 합한 수(8백51개)와 별 차이가 없다. CGV의 전국 총 좌석 수는 13만7천1백42개로 전국 총 좌석 수 34만9천2백20개의 3분의 1이 넘는다.

멀티플렉스는 영화 유통에서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 영화끼리 치열한 흥행 다툼을 벌일 때 멀티플렉스 관계사는 배급사에 든든한 힘이 되곤 한다. 2000년대 중반 CJ엔터테인먼트를 위협했던 쇼박스와 시네마서비스를 각각 잃은 뒤 최근 침체에 빠진 점은 시사하는 것이 많다. 지난 연말 <퍼펙트 게임>(투자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은 CGV의 부당한 조치로 상영관 수가 줄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 논란을 일으켰다. 이 논란은 저예산 영화뿐 아니라 공룡끼리의 전쟁에서도 극장 잡기 다툼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방증한다.

서울 CGV용산 로비에 걸려있는 영화 포스터. ⓒ 시사저널 김미류

영화판 휘어잡은 수직적 통합과 수평적 결합   

CJ가 영화계에서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결국 CJ엔터테인먼트와 CGV의 결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CJ엔터테인먼트는 자본력을 앞세워 충무로 주요 감독의 차기작을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일단 눈길을 끌 만한 영화를 CJ엔터테인먼트가 확보하면 배급망(CGV)과 부가 판권의 판로(CJ E&M 케이블 채널)가 동시에 과실을 누리는 구조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충무로의 신규 시나리오는 일단 CJ엔터테인먼트에 먼저 보내지고 그 다음 쇼박스나 롯데엔터테인먼트로 간다는 불문율이 세워진 지 오래다. 그렇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여름 시장에서 제작비 100억원대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퀵>과 <7광구>를 함께 개봉시킨 것도 결국 작품 ‘적체 현상’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것은 겨울 대목에서도 반복되었다. 겨울 시장의 최대 기대작이었던 <마이웨이>는 CJ의 투자 배급작이었고, <미션임파서블4>는 배급작이었다. 일주일 상관으로 개봉된 두 작품은 결국 <마이웨이>의 참패로 끝났고, 이것은 지난여름 <7광구>의 실패와 맞물려 CJ의 대작 징크스를 재현했다.

충무로에서는 투자 배급사가 제작까지 하면 중소 제작사들은 뭘 먹고 사느냐는 볼멘소리가 오래전부터 나오지만, CJ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이다. 일종의 수직적 통합 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계 인사 중에는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영화의 투자 배급과 유통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재벌 위주의 회사로 수직 계열화된 산업 구조가 창의력을 바탕으로 하는 영화 산업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영화계 막강 파워인 CJ는 영화인에게 밉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애증의 존재이다. CJ는 영화계에 발을 들인 이래 적지 않은 잡음을 불러왔고, 반발도 생겼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영화계에 안정적인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오랫동안 산업적 토대를 형성하지 못했던 충무로는 CJ엔터테인먼트의 등장으로 그나마 영화 산업의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한국 영화의 국제적 경쟁력 강화에 CJ엔터테인먼트가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점에도 영화인들은 대체로 의견을 같이한다. 하지만 최근 CJ를 향한 충무로 토종 영화인들의 시선은 ‘애’보다 ‘증’에 더 가깝다. 투자 결정 과정에서 대기업의 획일적인 잣대를 적용하면서 영화인의 창의력 개발을 막는다는 비판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 배급을 하고 관계사인 CGV가 대형 극장 체인을 가지고 있는 점도 종종 도마에 오른다. 공정 경쟁을 방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것일까. CGV는 영화와 음악, 방송 등 CJ그룹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하는 CJ E&M과 별도의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의 깃발 아래 영화 사업과 극장 사업, 방송 사업 등이 집결했던 2000년대 중반까지의 모습과 크게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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