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1번지’ 테헤란밸리가 썰렁하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1.12.2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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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권 입주 기업들, 경기 한파로 사무실 옮기는 일 다반사…게임업계 이어 건설업계까지 ‘들썩’


지난 12월20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좌우로 늘어선 고층 빌딩 입구 곳곳에는 임차인을 구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강남역 사거리에서 삼성역까지 직선 도로로 이어지는 테헤란로는 금융·무역·정보기술 등 굵직굵직한 업체들이 몰려 있는 강남권 최고의 요지로 이름을 날렸던 곳이다. 특히 벤처 붐이 한창일 때는 비싼 임대료에도 빈 사무실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경기 한파는 ‘대한민국 오피스 1번지’라는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한 강남권의 오피스 시장도 비켜가지 않았다. 지난 2010년 게임업체들이 강남권을 벗어났고, 올해는 건설업체들이 탈강남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따라 내년 이후 강남권 오피스 시장이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08년부터 탈강남을 주도했던 NHN, 그라비티, 엔트리브소프트 등 게임업체들에 이어 지난해에는 삼성동 아셈타워에 있던 네오위즈게임즈가 성남시 분당구에 신사옥을 마련해 이전했다. 엔씨소프트, 넥슨 등은 2012년에 판교로 이전할 계획이어서 그 이후에는 강남권에 자리 잡은 게임업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최근에는 건설업계까지 들썩이고 있다. 34년 전 가장 먼저 강남에 둥지를 틀었던 현대산업개발이 용산으로 본사를 옮긴다. 삼성엔지니어링도 내년 4월 강동구 상일동에 마련한 신사옥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게임 산업 특성상 도심에 사무실을 두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은 점이 탈강남화의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건설업체들의 강남 엑소더스에는 장기 불황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경비 절감, 사업 효율성 제고 등 갖가지 이유를 내세우지만 부동산 시장의 장기적인 불황을 이겨내려는 몸부림이다. 

서울 강남에 있는 센스부동산의 강희구 대표는 “강남권 일부 지역의 빌딩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임대료가 내려가고 있다. 경기가 좋지 않아 작은 업체들이 사무실을 이전하거나 파산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선릉역 주변에 있는 20층짜리 빌딩 관계자는 “지난 10월부터 100여 평짜리 사무실이 비어 있다. 임차 문의는 꾸준한 편이지만, 경기 탓인지 계약은 좀처럼 성사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2007년까지 안정세를 보여온 서울 강남권 오피스 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임차인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공실률이 급상승했다.

그러나 정부의 재정 확장 정책 등으로 경기가 회복되면서 이 지역 오피스 공실률은 2010년 3/4분기 5.8%를 정점으로 내림세를 그리고 있다. 2011년 3/4분기 기준 공실률은 서울 전체 공실률 3.9%보다 낮은 3.3%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용산·판교 변수’가 공실률 증가 폭 좌우할 듯

대기업들은 빠져나가지만 중소기업들이 그 자리를 메우는 형국이다. 역삼동에 있는 한 부동산 관계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구로디지털단지 쪽으로 이동했던 벤처기업들이 최근 다시 강남권으로 들어오고 있다. 아무래도 교통편이 좋지 않아 직원 출퇴근 문제, 인력 수급 문제 등이 있다고 들었다. 아무튼 강남권 오피스 시장은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앞으로 용산과 판교 변수에 따라 강남권 오피스 시장의 운명이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또 강남권 오피스 시장의 공급 물량이 줄어들 전망이어서 사무실 임대 시장은 당분간 큰 변동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부동산 자산관리업체인 메이트플러스에 따르면, 강남권은 내년 오피스 공급량이 6만3천㎡로 올해 공급량 26만8천㎡보다 큰 폭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게다가 보험·증권 등 금융업 확대와 정보기술 업종 호황으로 수요는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임채우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그러나 강남권 오피스 시장이 계속 안정세를 유지할지는 의문이다. 내년에 가장 많은 물량이 입주하는 서울 상암동에 대단위 업무 지역이 형성되면서 기업체들이 속속 이전하고, 경기도 송도국제도시와 판교신도시로 대기업 사옥이 입주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는 2016년 말에 개발이 완료된다. 또 판교 테크노밸리도 IT 허브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따라서 그 이후 IT 관련 기업들이 게임업체와 건설사들의 뒤를 이어 탈강남화를 시도할지가 강남권 오피스 시장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와 판교 테크노밸리는 ‘떠오르는 오피스 황금지대’  

서울 강남권 오피스 시장의 향배는 서울 용산의 국제업무지구와 판교 신도시 테크노밸리에 달려 있다. 지난 10월 단군 이래 최대의 공공·민간 개발 사업인 용산 국제업무지구 기공식이 열렸다. 사업비만 31조원에 달한다. 서울 용산 역세권과 서부 이촌동 일대 총 56만5천100㎡ 부지에 100층 규모의 랜드마크 건물을 포함해 67개의 건물과 상업·주거 시설이 들어서는 복합 도시로 조성될 예정이다. 용산은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자랑한다. KTX, 지하철 1·4호선, 중앙선이 환승되고 향후 파주와 일산을 용산까지 연결하는 경의선과 수원-분당-판교-강남을 연결하는 신분당선 환승역이 될 예정이다. 게다가 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고, 한남뉴타운 등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어 업무와 주거 중심지로도 부상할 전망이다. 개발이 완료되는 2016년 말이면 국내 부동산 1번지로 기대되는 곳이다.

최근 성남시 정자역에서 서울 강남역을 16분에 연결하는 신분당선이 개통되면서 떠오르는 지역이 있다. 바로 판교 신도시의 판교 테크노밸리이다. 판교역까지 도보로 갈 수 있고, 지하철로 강남역까지 13분밖에 걸리지 않아, 테헤란로에 자리 잡은 IT 기업의 대체 지역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임대료는 강남권의 절반 수준인 데다, 이미 분당에 자리 잡고 있는 IT 기업들과 판교 테크노밸리에 입주하는 기업들과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 심리로 강남을 떠나 판교로 입주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 최대의 MP3플레이어 제조업체인 레인콤을 비롯해 삼성테크윈, SK케미칼, 넥슨 등이 강남권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가 판교에 입주했다. 안철수연구소, 엔씨소프트 등 1백30여 개 기업이 판교에 둥지를 틀었다. 앞으로 2015년까지 3백여 개 기업이 입주를 마치면 판교 테크노밸리는 상주 인구 8만명, 유동 인구 16만명에 달하는 거대 업무 지구로 변모하게 된다. 6백62천㎡ 부지의 판교 테크노밸리에는 IT, BT(생명기술), NT(나노기술)를 앞세운 첨단 융합 기술 연구 시설, 연구 지원 시설도 들어선다. 판교 테크노밸리에 입주하는 기업은 연구·개발을 핵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IT 제조업 중심의 구로디지털산업단지와 차별화된다.

글 Ⅰ 임채우 국민은행 부동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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