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들 체면 구기고 ‘복병’들 약진했다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1.12.25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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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한국 영화계 결산 / <써니>의 성공 돋보여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변의 연속이었다. 덩치를 앞세워 충무로 대표 선수로 나섰던 대작은 죽을 쑤었고, 기대하지 않은 영화가 효자 노릇을 했다. 1천만명이 찾은 대박 영화는 없었지만 7백만명을 불러낸 영화 두 편이 나와 장사는 제법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화의 사회적 기능을 새삼 돌아보게 한 문제작도 있었다. 눈에 띄는 수작이 없다는 푸념도 나오나 될 성 부른 떡잎도 발견한 것이 충무로의 올 한 해이다. 영화 5편으로 충무로의 2011년을 돌아보았다.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여름 시장에서 잇달아 체면을 구겼다. 제작비 100억원대의 <7광구>가 대표적이다. 본격적인 한국형 3D 영화의 출발을 자처했으나 2백24만4천여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7광구>의 흥행 실패로 투자 심리가 위축되었고, 3D 제작 프로젝트가 줄줄이 연기되는 등 된서리를 맞았다.

한국전쟁 중 벌어진 치열한 고지 쟁탈전을 100억원을 들여 그려낸 <고지전>도 <7광구>와 운명을 같이했다. 2백94만명이 보아 3백만 고지도 넘지 못했다. <고지전>은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등 뒤늦게 터진 상복에 만족해야 했다. 100억원대 블록버스터 중 그나마 선전한 영화가 <퀵>으로 3백12만9천명이 찾았다.

제작비는 100억원에 못 미쳤지만 대작이라 할 <최종병기 활>이 체면을 살렸다. 7백46만여 명을 동원해 2011년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대형 작품들이 부진의 늪에 빠진 반면 예상치 못했던 작품들이 흥행 잭팟을 터뜨린 경우가 잇달았다. 투자배급사가 3백만명 정도이면 만족한다고 예상했던 <써니>는 기대치의 두 배를 넘는 7백37만5천명을 모으며 흥행 반란을 일으켰다. 이렇다 할 대형 스타 배우도 없이 깔끔한 대중성으로 ‘슬리퍼 히트(Sleeper Hit; 기대 밖 흥행작)’ 신화를 제조했다.

‘슬리퍼 히트’는 연초부터 터져나왔다.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 4백79만5천여 명의 관객을 모으며 이변의 시작을 알렸다. <완득이>(5백31만5천여 명)와 <그대를 사랑합니다>(1백64만8천명) 등이 예상 밖의 흥행 성적을 올렸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잇따른 참패와 슬리퍼 히트의 연이은 등장은 충무로 제작 투자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함을 알렸다.

<도가니>, 영화의 사회적 파급력 확인…<마당을 나온 암탉>도 화제

ⓒ 명필름 제공
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들이 의외로 흥행에 성공하며 사회적 파급력을 낳기도 했다. 한 복지 시설에서 청각장애인 학생들에 대해 벌어진 성추행과 폭력을 고발한 이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끌어모았다. 4백67만3천4백명이 관람하며 가해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 요구가 이어졌고, 해당 복지 시설의 폐쇄를 이끌어냈다.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을 그려낸 <아이들>도 좋은 흥행 성과(1백87만1천5백명)를 내며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 사건에 대한 사회적 재조명을 불러냈다. 두 영화의 흥행 성공과 사회적 파급력은 영화의 영향력을 새삼 확인케 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상업적 성공(2백20만1천8백명)은 국내 애니메이션계에 일대 사건으로 여겨진다. 국내 애니메이션은 탁월한 기술력으로 해외에서 많은 인정을 받아왔으나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1년에 1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나오기 힘들 정도로 척박한 산업적 환경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은 국내 애니메이션의 잠재력을 재확인시켜주었다.

독립영화 형식으로 만들어진 <돼지의 왕>의 출현도 올해 충무로가 기억해야 할 사건 중 하나이다. 적은 제작비로도 높은 완성도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질 수 있고, 여러 영화제 수상도 가능함을 <돼지의 왕>은 보여주었다.

<파수꾼>, 독립영화가 쏘아 올린 희망의 신호탄

수작 흉년이라 할 올해, 독립영화가 한국 영화의 체면을 세웠다. <파수꾼>은 윤성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높은 완성도로 영화 관계자와 시네필을 사로잡았다. 관객도 2만1천9백여 명을 모으며 독립영화로는 보기 드문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국제영화제에서 17개의 상을 수상한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도 한국 영화의 풀뿌리가 튼튼함을 증명했다. <무산일기>는 1만1천2백명이 관람하며 흥행에서도 선전했다. 민용근 감독의 <혜화, 동>도 올해 한국 영화계가 건진 큰 성과 중 하나이다. 역시 1만1천100여 명의 관객을 모으며 독립영화 열풍에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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