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년 역사의 노벨상, 아직도 ‘서구 잔치'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1.12.1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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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수여된 8백53개 중 절반 이상이 EU 회원국 차지

해마다 12월10일은 세계의 이목이 스웨덴의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에 집중된다. 세계에서 최고 권위 있는 상인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2011년 노벨상 시상식장에 참석한 수상자는 총 13명이었다.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수상 증서와 금메달 그리고 상금 1천만 크루나(약 17억원)가 주어졌다. 올해의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 세 명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개 부문의 수상자가 모두 서구 출신이라는 점에서 노벨상은 다분히 서구 중심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노벨상은 스웨덴의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산을 기금으로 하여 1901년에 제정되었다. 해마다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경제학, 문학, 평화 여섯 개 부문에서 인류 문명의 발달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를 선정해 수여한다.

문학상·평화상 등 논란의 소지 많아

지난 12월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미국의 아담 리스 교수(왼쪽)가 노벨물리학상을 받고 있다. ⓒ AP연합
노벨상 수상자들의 면모에서 알 수 있듯이 노벨상은 서구 세계의 잔치처럼 여겨져왔다. 특히, 문학상의 경우 유럽 편중이 심한 것이 사실이다. 노벨의 유언에 따르면 문학상 선정의 기준을 이상주의에 두었다. 따라서 20세기 초반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의 유언을 엄격하게 적용하다 보니 당대에 유명했던 조이스, 톨스토이, 체코프, 입센, 에밀 졸라 그리고 마크 트웨인 같은 작가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노벨 문학상의 심사 기준인 이상주의를 넓은 의미로 인권에까지 확대함으로써 정치색을 띠기도 한다.

1901년 이후 올해까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1백4명을 보면 1913년 인도의 타고르, 1968년 일본의 야스나리, 1988년 이집트의 마후즈, 1994년 일본의 겐자부로, 2006년 터키의 파묵을 제외하고 모두 서양 언어로 된 작품에 주어졌다. 아무리 홈그라운드의 이점이라고 하지만 스칸디나비아어(스웨덴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아이슬랜드어)로 쓴 작가에게 무려 13회나 문학상이 돌아갔다. 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헤르타 뮐러에 대해서 미국의 문학평론가들은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며, 노벨문학상이 유럽 중심적(Euro-centric)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노벨문학상은 시상국인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뤄머에게 돌아갔는데도, 그의 작품은 60개국어로 번역되었고, 2차 대전 이후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이기에 별다른 시비는 없었다.

문학상과 더불어 논란의 소지가 많은 것이 평화상이다. 1973년 베트남 전쟁의 휴전을 이끌어낸 공로로 헨리 키신저에게 평화상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키신저는 베트남 전쟁 당시 월맹에 대한 무자비한 융단 폭격과 고엽제 투하를 결정한 미국 행정부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리고 2009년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오바마에게 평화상을 준 것 또한 대통령 임기 초반으로 공과를 평가하기에 시기상조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 바 있다. 

노벨상 선정 기준에서 중시되는 것은 독창성(originality)이다. 인류에 큰 기여를 한 연구나 발명이 있을 경우 그 아이디어를 처음 만든 사람에게 상을 주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수여한다. 그래서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겼어도 사후에는 수여하지 않는다. 2011년까지 수여된 노벨상은 총 8백53개(단체에 주어진 23개 노벨상포함)인데, 이 가운데 여성은 40명에 불과하다. 최연소 수상자로는 1915년 물리학상을 아버지와 공동 수상한 영국의 로렌스 브래그로 당시 나이 25세였다. 노벨상  최고령 수상자는 2007년 경제학상을 받은 90세의 폴란드인 레오니드 후르비츠였다.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두 사람은 1964년 문학상에 지명된 프랑스의 사르트르와 1973년 키신저와 함께 평화상에 지명된 베트남의 리덕토 총리이다. 노벨상에 지명될 당시 체포 또는 구금 상태여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세 명은 모두 평화상 수상자로서 1935년 독일의 카알 폰 오시예츠키, 1991년 미얀마의 아웅산 수키, 그리고 2010년 중국의 리우샤보가 그들이다.

노벨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사람은 네 명이다. 미국의 존 바덴은 물리학상을 1952년과 1972년에 받았고, 프랑스의 퀴리 부인은 1903년에 물리학상을 남편과 공동 수상했으며, 이어 1911년에는 화학상을 받았다. 미국의 리누스 폴링은 1954년은 화학상을, 1962년에는 평화상을 수상했다. 영국의 프레드릭 생어는 화학상을 1958년과 1980년 두 번에 걸쳐 받았다. 퀴리 부인의 딸 이리네는 1935년 자신의 남편과 함께 물리학상을 수상해 ‘노벨상 가족’으로 불린다. 부부가 노벨상을 수상한 또 다른 경우는 스웨덴의 군나르 뮤르달이 1974년 경제학상을, 그리고 그의 부인 알바 뮤르달이 1980년 평화상을 받은 것이다.

미국, 3백33개로 최다…동아시아는 32개

지금까지 수여된 8백53개 노벨상의 절반 이상인  4백55개가 유럽연합(EU) 회원 국가에게 주어졌다. EU 국가별 노벨상 수상자 수는 다음과 같다. 오스트리아 19, 벨기에 10, 불가리아 1, 체코 5, 사이프러스 1, 덴마크 14, 핀란드 4, 프랑스 58, 독일 1백2, 그리스 2, 헝가리 11, 아이슬랜드 1, 아일랜드 6, 이탈리아 20, 라트비아 1, 리투아니아 2, 룩셈부르크 2, 네덜란드 19, 폴란드 12, 포르투갈 4, 루마니아 3, 슬로바키아 1, 스페인 8, 스웨덴 29, 영국 1백20.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노르웨이와 스위스가 각각 12개와 26개의 노벨상을 수상했다. 노벨상 최다 수상 국가는 미국으로 3백33개를 받았다. 하지만 EU와 미국을 비교했을 때 4백55 대 3백33으로 EU가 월등하게 우세하다. 한편, 지금까지 동아시아에서 받은 노벨상 개수는 총 32개로 프랑스 한 나라가 받은 58개에도 훨씬 못 미친다. 이처럼 격차가 나는 이유를 따질 때 서양 교육이 창의성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기도 하지만, 노벨상이 서양인의 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특히, 문학상 부문은 심사 언어가 서양 언어이기 때문에 동아시아 작가들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노벨상 덕분에 스웨덴의 과학 수준은 인구 1천만명 이하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노벨상을 심사하는 수준이 곧 스웨덴의 과학기술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한 예가 노벨의학상을 심사하는 곳으로, 세계 최고의 의술을 자랑하는 스톡홀름의 카롤린스카 병원이다. 그동안 스웨덴의 노벨상 수상자 수는 29명으로서 러시아의 27명보다 많다. 이러한 탄탄한 기초과학의 토대 위에서 스웨덴 산업은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스웨덴은 잠수함부터 전투기까지 직접 제작하는 선진 방산 기술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북유럽 최대 방산업체 사브(SAAB), 세계적인 제약회사 아스트라 제니카(AstraZeneca), 엔지니어링 선두 주자 ABB, 유럽 가전제품의 대명사 일렉트로룩스(Electrolux) 등 다국적 기업들도 성공적이고 창의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이런 바탕에는 노벨상의 힘이 근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노벨상이 서구 중심적이라는 사실은 ‘기득권’을 인정해야 되기 때문에 왈가왈부한다는 자체가 질시의 발로이다. 그저 부러운 것은 알프레드 노벨처럼 선견지명 있는 발명가를 둔 스웨덴이다. 나눔의 미덕을 일찌감치 실천한 한 과학자 덕분에 기초과학을 중시하는 나라가 되어 국내 산업 발달에 기여함은 물론 이웃 나라 노르웨이와 함께 국제적 위상까지 높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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