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생활 동반자’ 콘돔은 왜, 어떻게 진화했을까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11.2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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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에 출산 조절 운동 시작되면서 널리 보급 / 최근에는 단순한 피임 수준 아닌 개인 취향 만족시키는 데 초점

ⓒ일러스트 임성구

콘돔이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거듭 진화하고 있다. 피임은 동물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하는 행위이다.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는 것은 줄곧 인류의 관심사였다. 결혼을 했건 안 했건 간에 임신은 둘 사이의 즐거웠던 순간에 대한 책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와 같은 방법이 없던 과거에는 피임이 어떻게 가능했고, 콘돔은 지금 어디까지 진화했을까.

양의 창자에서 라텍스로 재질 진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피임법 관련 문헌은 기원전 1850년 고대 이집트의 페트리 파피루스(Petri Papyrus)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파피루스에는 악어 똥, 꿀, 탄산나트륨 등으로 만든 고약을 질 위에 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악어 똥에 아교질을 섞어 질 안에 넣으면 정자가 죽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임신을 막기 위해 악어 똥과 아교 같은 물질을 배합하거나, 질을 자극하는 모종의 물질에 벌꿀과 탄산나트륨을 배합하거나, 기름진 껌 같은 물질을 배합해 성교 전에 질 안으로 삽입했다. 즉, 정자를 죽이는 ‘화약’을 만들어 넣었다는 얘기이다. 성공률은 50% 이내. 과학적으로는 타당한 방법이 아니지만 당시에도 임신을 피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악어 똥이 약알칼리성이어서 오히려 정충의 운동성을 증진시키는 효과를 내 정자의 힘을 더욱 북돋워준 셈이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끈끈한 벌꿀은 정충의 운동성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고, 배합된 아교성 물질이나 기름진 물질은 아마도 기계적 차단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피임약은 시간이 지나면서 코끼리의 똥으로 바뀌었고, 그 후 3천년에 걸쳐(13세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었다.

또 고대 이집트 벽화에는 음경에 골무처럼 아마포 재질의 헝겊 주머니를 씌운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콘돔의 기원이다. 그러나 주머니의 용도는 피임보다는 음경이 벌레에 쏘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보호막이었다.

본연의 역할인 피임이나 성병 방지용 콘돔이 등장한 것은 17세기 중반이다. 최초의 콘돔은 영국 왕 찰스 2세의 방탕함을 보다 못한 주치의가 혈통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어린 양의 맹장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양의 창자나 동물의 가죽으로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 현대의 콘돔처럼 사용했다. 특히 창자 재질의 콘돔은 주로 고위층이 사용했는데, 미지근한 물에 닦아 반복 사용이 가능하도록 특별 관리해주는 별도의 전문 제조업체까지 등장했을 정도이다.

피임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19세기 이후이다. 유럽 인구가 급속히 팽창하면서 출산 조절 운동이 시작된 것이 원인이다. 오늘날과 같은 피임 기구 콘돔은 1504년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팔로피우스가 매독 감염을 막기 위해 리넨(linen)으로 만들었는데, 1839년 미국의 발명가 찰스 굿이어에 의해 고무 재질로 바뀌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찰스 굿이어는 천연고무에다 유황을 가해 반응시키는 가황법을 발견해 탄력이 더욱 강한 고무를 만들어냈다. 본래 천연고무는 열을 가하면 탄성이 사라진다. 하지만 여기에 황 성분을 첨가해 1백50℃ 안팎으로 가열하면 분자의 결합이 달라진다. 유황 분자가 고무 분자와 고무 분자 사이에 다리를 걸치는 모양으로 결합된다. 이러한 가교 결합 때문에 잡아당겨도 고무 분자가 잘 미끄러지지 않을 뿐더러 탄성이 배가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라텍스 고무이다.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콘돔 소재로 신축성이 매우 뛰어나다. 라텍스가 콘돔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흔히 사용하는 라텍스 소재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고무나무 수액에서 추출한 천연고무 액에는 불순물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폴리이소프렌 콘돔과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콘돔이다. 이들 콘돔은 천연 라텍스 고무를 모방한 합성 고무로, 석유화학적 정제가 가능해 불순물이 쉽게 제거된다. 단, 비닐의 일종이라 얇고 질기지만 다른 콘돔에 비해 신축성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이다.

다양한 기능성 갖춘 이색 콘돔이 대세

양의 창자에서 시작해 리넨, 라텍스로 진화한 콘돔이 이제는 다양한 색깔과 기능 그리고 맛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콘돔이 피임과 질병 예방에 ‘올인’한 것이라면, 디자인이나 소재를 달리해 착용하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면서 사용자의 만족도를 최대한 높이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이다. ‘얇게’ ‘안전하게’ ‘다양하게’ 이 세 가지가 콘돔 진화의 방향이다. 마취 콘돔, 링 콘돔, 야광 콘돔, 여성용 콘돔 등 다양한 기능성을 갖춘 이색 콘돔들이 바로 그것.

마취 콘돔(일명 비아그라 콘돔)은 마취 물질인 리도카인 크림을 콘돔 제일 안쪽에 첨가해 요도 입구와 귀두 등을 무디게 함으로써 사정 시간을 연장시켜주는 기능성 콘돔이다. 조루증의 남성에게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링형 콘돔은 콘돔 표면에 돌기가 링처럼 둘러쳐져 있어 콘돔 사용 시 밋밋하기 쉬운 밀착력을 배가한 아이디어 제품이다. 또 깜깜한 방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야광 콘돔, 여성 스스로 능동적인 사용이 가능한 여성 콘돔은 질 내부에 콘돔을 쉽게 장착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이러한 기능성 콘돔들은 ‘쾌감이 줄어들기 때문’에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한 콘돔 제조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사용되는 콘돔의 개수는 30~40만개. 물론 지금도 임신을 예방하고 성 접촉을 통한 전염병 전달을 막기 위해 콘돔의 재질과 품질 개선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콘돔은 에이즈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콘돔 조직 사이로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콘돔만으로는 에이즈를 예방하지는 못한다던데….” 인터넷에 나도는 허무맹랑한 말이다. 만일 배우자가 에이즈 감염인일지라도 콘돔만 사용하면 예방할 수 있다. 찢어지지만 않으면 전혀 문제가 없다.

미국 암허스트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폴 에발트 교수에 따르면, 콘돔은 생식기의 접촉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것을 막는 역할뿐 아니라 바이러스를 온순하게 진화시킨다고 한다. 즉, 숙주인 인간을 죽일만큼 폭발적으로 증식하는 강력한 바이러스는 전염이 쉬운 환경이 유리하다. 그러나 콘돔으로 막혀 전염이 어려워지면 불리해진다. 전파하지 못한 상태에서 숙주가 죽어버리면 바이러스의 운명도 끝나기 때문이다.

이제 콘돔 기술의 진화는 단순한 피임 수준이 아닌 개인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쪽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비록 얇은 고무튜브에 지나지 않지만, 콘돔은 분명히 밝고 경쾌한 성생활을 이끄는 최신 과학기술의 선물이자 재간둥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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