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되살아나는 ‘야구의 전설’들
  • 이지강│영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10.25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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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선동렬 투수 대결 그린 <퍼펙트 게임>과 메이저리그의 탁월한 단장 이야기 <머니볼> 주목

프로야구 시즌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승리를 위해 그라운드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선수와 감독, 이들을 뒤에서 지원하는 프런트,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는 야구팬들이 살아 숨 쉬는 한 편의 드라마를 써내려가고 있다. 올 시즌 프로야구는 6백만 관중을 돌파하며 국민 스포츠로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다졌다.

야구의 인기는 이제 스크린으로 이어지고 있다. 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관객들과 만나거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김주혁과 김선아가 주연을 맡은 <투혼>이 스타트를 끊었다. <투혼>은 코미디 영화의 대가 김상진 감독의 작품치고는 흥행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야구팬들이 기대할 만한 작품 두 편이 더 개봉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퍼펙트 게임>과 <머니볼>, 두 작품은 각각 한국 야구와 미국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야구인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야구의 전설들에 향수를 가지고 있는 야구팬, 스포츠 영화가 선사하는 스펙타클과 감동 코드를 좋아하는 영화팬들이라면 기대할 만하다. <퍼펙트 게임>은 한국 프로야구 전설의 두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의 대결을 그린다. 설명할 필요가 없는 한국 야구 최고의 투수들이다. 최동원의 커브, 선동열의 슬라이더로 대표되는 이들의 승부는 롯데와 해태, 경상도와 전라도, 연세대와 고려대 등 다양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야구팬을 매료시켰다. 지금까지도 누가 더 훌륭한 투수인지는 야구팬의 단골 이야기 소재로 등장한다.

최동원과 선동열은 현역 기간 동안 세 번 맞대결했다. 1986년 4월 첫 번째 대결에서는 선동열이 먼저 웃었다. 선동열은 완봉 호투로 해태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그해 8월에 열린 두 번째 대결에서는 최동원이 롯데의 2-0 승리를 이끌며 패배를 설욕했다. 1승1패로 맞선 가운데 1987년 5월 마지막 대결이 펼쳐졌다. 이 경기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로 기억된다. 연장 15회까지 팽팽한 투수전으로 진행된 경기는 결국 2-2 무승부로 끝났다. 최동원과 선동열 두 투수가 경기 끝까지 완투하며 던진 공의 개수는 각각 2백9개와 2백32개이다. 선발투수 한계 투구 수가 100~1백30개 정도로 여겨지는 현대 야구에서는 다시 나올 수 없는 기록이다. 류현진, 윤석민, 김광현 등이 이런 투구 수를 기록한다면 팬들의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 ⓒ한국SPBV영화 제공
최동원·선동렬 역에 조승우·양동근 맡아 감동 재현

이제 이들의 맞대결은 볼 수 없다. 지난 9월14일 한 명의 전설 최동원이 세상을 떠나면서 지도자 대결도 불가능해졌다. 팬들의 아쉬움을 영화가 달랜다. 주연은 젊은 연기파 배우 조승우와 양동근이 맡았다. 조승우가 최동원을, 양동근이 선동열을 연기한다. 최동원과 선동열은 어린 시절 야구를 좋아했던 소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따라해보았을 정도로 개성 있는 투구폼을 가지고 있다. 두 배우가 이들의 경기 장면을 얼마나 생동감 있게 재현해낼지 관심이 집중된다. 일반인이 잘 모르고 있던 최동원과 선동열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키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12월 개봉 예정인 <퍼펙트 게임>에 앞서 할리우드 작품 <머니볼>이 먼저 관객을 만난다. 11월17일로 개봉일이 잡힌 <머니볼>은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운영자 빌리 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빌리 빈의 팀 운영 철학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빌리 빈은 ‘머니볼’ 이론을 근간으로 2000년대 초반 포스트시즌 단골손님으로 나서며 저예산 구단 오클랜드의 황금기를 이루어냈다. 기록 스포츠인 야구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통계에 바탕을 둔 선수 영입 전략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는 ‘많이 출루하는 타자’ ‘볼넷을 적게 주는 투수’에 중점을 두고 유망주를 선발했으며 FA(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획득한 고액 연봉 선수는 과감히 보내주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이라지만 빌리 빈이라는 이름은 생소하다. 반면 영화에 참여한 제작진은 화려한 면면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주연을 맡은 브래드 피트이다. 그는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트리 오브 라이프>에 이어 <머니볼>로 아카데미를 노리고 있다. 연출을 맡은 베넷 밀러는 장편 데뷔작 <카포티>로 아카데미 감독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공동 각본을 맡은 스티븐 자일리언과 아론 소킨은 각각 <쉰들러리스트>와 <소셜 네트워크>로 각본상을 받은 바 있다. 아카데미를 위한 드림팀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이들이 참여한 작품들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인물의 삶을 훌륭하게 그려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머니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결과를 알고 보는 스포츠 경기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국가대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불의 전차> <루키> 등은 우리에게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전해주었다. <퍼펙트 게임>과 <머니볼>이 <글러브> <투혼>이 거둔 흥행 부진을 씻고 프로야구의 인기를 극장가로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 ⓒSBS콘텐츠허브 제공
‘내가 땅에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성서>의 한 구절이 화면 위를 지나가면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한때가 보인다. 뛰노는 아이들과 즐거워 보이는 아빠 그리고 엄마. 1950년대 미국 남부 마을의 목가적 풍경이 평화롭게 이어지면 다음 순간 화면을 채우는 것은 세 아들 중 하나가 죽었다는 것을 알리는 부고이다. 영화는 평화롭게 신의 섭리를 따를 것이라던 가족에게 절망이 닥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흔한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다음의 이야기는 그녀와 가족들이 슬픔을 극복하고 행복해지는 과정을 보여주거나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의 감독은 테렌스 맬릭이다. 전쟁 영화 <씬 레드라인>을 통해 전장의 참혹함을 사지 절단과 피칠갑 영상이 아닌 사유를 통해 보여준 감독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가 보여줄 가족의 이야기가 일반적 작품들과 다를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영화는 우주와 자연의 탄생에 가족의 형성을, 부모와 자식 세대의 관계에 신과 인간의 관계를 비유하는 과감한 발상으로 시선을 끈다. 영화는 명확한 드라마적 기승전결, 줄거리 대신 관객의 성찰을 부르는 탐미적 영상과 사변적·종교적 대사들을 선택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표면적인 줄거리는 있다. 50대에 접어든 건축가 잭(숀 펜)은 어린 시절 죽은 동생의 일로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며 과거를 추억한다. 영화는 잭의 상상 혹은 회상을 따라 흘러간다. 그렇게 잭의, 정확히는 감독의 의식을 그대로 펼쳐놓은 듯한 영상들은 이야기에 대한 관객의 집착을 무력화시킨다.

자연과 우주의 풍경들이 소박한 가족의 이야기 안으로 난입(?)하는 순간은 놀랍고도 아름답다. 지구 탄생에 관한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들을 통해 평범한 가족의 역사가 우주와 자연의 역사에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의 과감함은 절묘한 촬영과 편집, 적절한 음악의 사용으로 설득력을 얻는다. 영화가 시가 될 수 있다면, 아마도 그 대표작 중 하나는 테렌스 맬릭의 작품들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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