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라”
  • 번역│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10.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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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2005년 6월12일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학위 수여식 연설 전문

세계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대학교의 학위 수여식에서 당신들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이처럼 대학교 졸업식을 가까이 본 적도 없습니다. 오늘 제 인생에서 나온 세 가지 이야기를 꺼내고자 합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대단한 일이 아니죠. 딱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것입니다.

▲ 스티브 잡스는 갔지만 그가 남긴 답설(踏雪)은 남은 이들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잡스는 지난 2005년 6월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에 연사로 참석해 사회에 첫 발걸음을 떼는 젊은이들에게 이정표가 될 명연설을 남겼다. 이에 은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잡스 연설문을 원문과 함께 싣는다. ⓒ연합뉴스

저는 6개월 만에 리드 대학을 자퇴했습니다. 하지만 자퇴한 뒤에 18개월가량 청강하면서 대학 주변을 배회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만두었을까요?

그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젊은 대학원생 미혼모였습니다. 그녀는 저를 입양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대학 졸업자가 저를 입양하기를 강하게 바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부부가 입양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자아이를 입양하기를 원했습니다. 입양 대기자 명단에 있던 제 양부모는 한밤중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기대하지 않던 사내아이를 데리고 있습니다. 이 아이를 입양하시겠습니까?” 양부모는 “물론이죠”라고 답했습니다. 제 생모는 양어머니가 대졸자가 아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생모는 입양 서류에 수결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수개월 후 양부모가 저를 대학에 보내겠다고 약속하자 생모는 입양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17년 후 저는 대학에 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리석게도 스탠포드만큼 비싼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노동자였던 제 양부모의 저축액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6개월 후 저는 대학에서 그만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대학이 그것을 파악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제 부모가 평생 저축한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퇴하기를 결심하고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당시에는 상당히 두려웠지만, 돌이켜보건대 제 인생에서 최고의 결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자퇴하자 저는 재미없는 전공 과목을 듣지 않고 오로지 재미있어 보이는 과목들만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숙사 방이 없다 보니 친구 집 바닥에서 자고 한 병당 5센트 하는 콜라병을 팔아 음식을 샀습니다. 저는 매주 일요일 하레 크리슈나 사원에서 주는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을 걸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 음식을 좋아했습니다. 제 호기심과 직감을 따라 저지른 일들이 나중에 값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당시 리드 대학은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서체 교육을 제공했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은 포스터나 서랍에 있는 상표는 아름다운 필기 서체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자퇴한 탓에 정규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다 보니 서체에 대해 배우고자 서체 수업을 수강했습니다. 저는 세리프체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 간에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활판술을 위대하게 만드는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미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유서 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어서 저는 매료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제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0년 후 우리가 첫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그것은 고스란히 되살았습니다. 우리는 매킨토시에 그것을 고스란히 집어넣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활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그 강의를 듣지 않았다면 맥은 결코 복수 서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맥을 베낀 윈도까지 개인용 컴퓨터는 이 기능을 갖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자퇴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 서체 수업을 수강하지 않았을 것이고,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과 같은 훌륭한 글씨체를 갖고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 그 인생의 순간들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분명해집니다.

다시 말하건대, 여러분은 지금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 한순간 한순간이 언젠가 연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배짱, 운명, 인생, 인연 무엇이든지 간에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 방식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 다른 것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저는 제가 스무 살 때 부모님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차고에서 두 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 종업원 4천명을 고용한 2백억 달러 기업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최상의 창조물인 매킨토시를 출시하고 1년이 지나자 저는 서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해고되었습니다. 당신이 세운 회사에서 당신이 어떻게 해고당할 수 있냐고요? 애플이 성장하면서 우리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누군가(존 스컬리)를 고용했습니다. 첫 1년가량은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비전은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사이도 틀어졌습니다. 우리 사이가 틀어졌을 때 이사회는 그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른에 저는 쫓겨났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개적으로. 제가 어른이 되어 집중하던 일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배 기업인들을 실망시켰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게 넘겨진 바톤을 놓친 것이니까요.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처참한 실패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밸리에서 도망갈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 뭔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습니다.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 그 심정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저는 거부당했지만, 애정은 여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음이 판명되었습니다. 성공이라는 중압감이 다시 모든 것에 신중한 초심자의 경쾌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사건은 저로 하여금 제 인생에서 최고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시기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다음 5년 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지금 아내가 된 놀랍도록 준수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로 제작한 만화영화 <토이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만화영화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상황이 놀랍게 바뀌면서, 애플은 넥스트를 인수했고 저는 애플로 돌았습니다. 우리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현재 애플의 부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정말 독하고 쓰디쓴 약이었지만, 이 환자(스티브 잡스)는 그 약이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 인생이 벽돌로 당신의 뒤통수를 때립니다. 하지만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제가 계속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그러하듯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일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생각건대 위대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세요. 주저앉지 마십시오. 진심을 다하면 여러분은 언제가 찾을 것입니다. 좋은 인연이 그렇듯이 시간이 갈수록 그것은 지속적으로 나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앨러 앨토에 있는 스티브 잡스의 자택 앞에 그를 추모하는 꽃다발과 사과들이 가득하다. ⓒAP연합

열일곱 살에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이 경구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33년 동안 나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묻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오늘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오”라는 답이 많은 날 지속적으로 나올 때면 나는 무엇인가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곧 죽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은 제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것, 외부의 기대, 자만심, 망신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사라지고 오로지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여러분이 뭔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근심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벗은 상태입니다. 여러분의 진심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1년 전쯤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것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 병은 치료할 수 없는 암이라고 거의 확신한다며 제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 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 동안 해줄 수 있는 것을 단 몇 달 안에 다 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임종 때 제 가족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작별 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날 저녁 목구멍을 통해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고 췌장을 바늘로 찔러 암세포를 채취하고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마취 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기를,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해보고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이라고 밝혀지자 의사들이 울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이번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수십 년간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겪고 나니 죽음이 쓸모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만 아는 것보다 더 분명하게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운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죽음은 삶에 변화를 주는 요소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게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새로움이지만 머지않아 새로움에서 멀어져 오래된 것이 되고 이내 사라질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숙고해 빚어낸 도그마(도식)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입니다. 이미 마음과 영감은 여러분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제가 어릴 때, 제 세대에서 성경과 같은 도서인 <지구 백과>라는 훌륭한 책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시적 표현으로 책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PC나 전자 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구글이 나오기 35년 전에 나온 활자판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그 책은 이상주의적이었고 깔끔한 도구와 위대한 개념으로 넘쳐났습니다. 스튜어트 팀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자연스럽게 팔려나감에 따라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그때가 1970년대 중반이니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습니다.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늘 갈망하라. 늘 우직하라.”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습니다. 저는 언제나 제 자신을 위해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이 이런 방법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늘 갈망해라. 늘 우직해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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