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잘 버는 외국 기업들, 기부는 ‘찔끔’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1.10.10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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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 평균 2백59만원으로 국내 기업의 1/3 수준…접대비는 기부금의 17배 쓴 것으로 드러나

국내에서 활동하며 지난해 국세청에 세금 신고를 한 외국 기업은 1천4백20개이다. 지난 2006년 1천3백40여 개를 기록한 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 올리는 수익도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기부한 내역을 보면 초라하다 못해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국세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 기업들이 낸 기부금 총액은 36억7천100만원으로 업체당 평균 2백59만원이다. 2009년과 비교했을 때 60만원가량 늘어났다. 지난해 국내 기업이 기부한 액수는 총 3조5천45억원으로 업체당 평균 7백96만원이었다.

물론 기업에게 기부를 강요할 수는 없다. 기업의 일차적인 목적은 이익 창출이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수익을 내는 것이 우선이다. 조명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돈을 벌려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오로지 선의를 가지고 하는 것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기업주 개인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기업은 그럴 수 없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일종의 마케팅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외국 기업이라고 해서 낯설게 느낄 필요는 없다. 혹시 어깨에 루이비통 가방을 메고 있거나 손목에 스와치 시계를 차고 있다면, 혹은 출근길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 엘리베이터에 오티스(OTIS)라는 글자가 써 있었다면, 그것들이 모두 외국 기업의 제품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1년에 내는 기부금이 평균 3백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특히 외국 명품업체들이 기부에 두드러지게 인색하다. 해마다 수백억 원씩 이익을 내면서 한국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시장이라고 치켜세우지만 이들이 내는 기부금은 전체 순이익의 0.5%도 되지 않는다.

루이비통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4천2백73억원에 순이익 4백억원을 올렸다. 이 중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프랑스 루이비통말레티에 본사에 순이익보다 많은 4백40억원을 배당으로 지급했다. 그러나 루이비통코리아가 지난해 기부한 금액은 국내에서 거둔 매출의 0.01%인 5천8백55만원이었다.

매출의 0.01%…‘명품’ 업체의 초라한 기부

루이비통에게 한국은 4위에 해당하는 시장이다. 한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관세 철폐로 에르메스 등 유럽 명품 브랜드들이 제품 가격을 다소 인하했을 때에도 루이비통코리아는 거꾸로 가격을 올렸다. ‘한국 소비자는 봉’이라는 비난 여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조현욱 루이비통코리아 회장은 “다른 명품 브랜드에 비해 한국에서 판매 가격을 유달리 높게 책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판매 가격은 프랑스 파리의 가격보다 30%가량 높다. 게다가 잘 팔린다.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고서는 매장에 들어가기가 힘들다. 루이비통코리아의 지난 10년간 기부 기록을 살펴보았다. 10년간 한국에서 벌어들인 순이익은 1천3백46억원이다. 이 가운데 기부금으로 내놓은 금액은 1억1천9만원(0.08%)이다. 지난 2008년에는 3백만원이라는 초라한 기부 실적을 보이기도 했다. 벌어가는 돈에 비해 한국 사회에 환원하는 금액이 턱없이 적다.

다른 업체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버버리코리아는 지난 2009년(2009년 4월~2010년 3월) 매출 1천8백49억원에 순이익 2백52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대부분을 영국 본사로 송금했고, 8천3백12만원을 국내에 기부했다. 매출의 0.05%에 해당한다. 구찌코리아와 페라가모코리아 역시 지난해 매출의 0.01%, 0.03% 수준인 3천7백29만원, 2천7백47만원을 각각 기부했다.

그런데 이들 외국 기업의 접대비 현황은 기부금과 판이하게 다르다. 접대 비용이 기부금의 17배에 달한다. 지난해 법인세를 신고하고 납부한 외국 기업 1천4백20개 업체가 쓴 접대비는 총 6백22억4천100만원이다. 한 개 업체당 4천3백83만원을 접대비로 지출한 셈이다. 지난 2009년 접대비가 5천51만원으로 최고점을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낮아진 셈이지만 여전히 기부금과는 간극이 크다.

이에 비해 지난해 국내 기업 44만23개 업체가 지출한 접대비는 7조6천6백58억원으로 업체당 평균 1천7백42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 명품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지점 법인에 불과하다. 모회사가 외국 기업이기 때문에 한국 시장을 개척할 때 국내 기업보다 환경이 척박한 점도 있다. 이럴 때 직접적이고 빠른 효과를 기대하려면 솔직히 기부보다는 접대를 택하게 된다. 법인세 부담도 만만치 않다. 세금을 내고 이익도 계속해서 올려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부담이 크다”라고 말했다.


외국계 은행을 보는 시선도 따갑다. 해마다 적게는 3천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거두면서도 사회 공헌 투자 금액은 은행권 밑바닥 수준을 맴돌고 있다. 외환은행이 지난해 거둔 당기순이익은 1조2백14억원이었다. 이 은행이 지난해 사회 공헌에 투자한 금액은 2백13억원이다. 국내 은행 중 비슷한 순이익 규모를 보인 우리은행이 6백99억원을 출연한 것과 비교된다. SC제일은행이나 씨티은행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은행은 지난해 각각 3천2백24억원, 3천1백5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지만 사회 공헌 투자 금액은 1백3억3천억원, 78억9천억원에 그쳤다. 국내 은행 중 가장 낮은 당기순이익을 올렸던 하나은행(9천8백51억원)이 9백10억3천만원을 내놓은 것과 대조된다. 외국계 은행은 당기순이익 대비 평균 2.4%에 해당하는 금액을 사회 공헌 비용으로 내놓았다.

아예 생색내기에 그치거나 기부 실적이 전혀 없는 외국 기업도 있다. 프라다코리아는 지난 5년간 순이익 6백17억원 중 24.3%인 1백50억원을 지난해에 배당했다. 프라다코리아는 지난 2005년 이후 명품 바람을 타면서 매출이 2백71억원에서 1천7백57억원으로 6.5배, 순이익이 5천만원에서 3백24억원으로 6백50배나 껑충 뛰었다. 설립 후 10년 동안 적자를 겪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프라다코리아가 국내에 기부한 실적은 지난 2005년 76만원이 전부였다. 고가 화장품 수입업체인 불가리코리아와 고가 시계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스와치그룹코리아는 기부금 실적이 전혀 없었다.




▲ 수백억 원의 순이익을 거두고도 기부에는 인색한 외국 기업들이 눈총을 받고 있다.


접대에 ‘펑펑’ 쓴 이유 “빠른 효과 기대”

영리법인의 경우 2억원을 초과했을 때 22%의 법인세 세율이 적용된다. 게다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국내 법인세율이 다소 높은 편이다. 외국 기업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핑계거리가 될 수 있다. 외국 기업들은 지난해 업체당 평균 5억3천21만원의 법인세를 납부했다. 국내 기업이 평균 8천4백70만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여섯 배 이상 많은 세금을 낸 것이 된다.

하지만 법인세는 법인 자체의 소득을 과세 대상으로 해 부과하는 세금이다. 순이익과 비례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외국 기업들의 평균 당기 순이익은 23억6천1백69만원이었다. 같은 항목에서 2억4천3백39만원을 기록한 국내 기업에 비하면 10배 가까이 많은 돈을 벌어간 셈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외국 법인은 한국에 들어와서 영업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사회적인 책임을 이행하는 것도 옳지만, 일단 이익을 내야 하는 목적이 우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해외 명품업체들은 고액 배당으로 5년 동안 출자금의 평균 5.2배를 회수했다. 일부 업체는 설립된 지 10년 만에 수천 배에 달하는 투자 이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배당을 통해 본국으로 송금하기에 바쁜 외국 기업들에게 고운 시선을 보내는 국내 소비자는 거의 없다. 물론 이익금을 보내는 데 절차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익금을 배당한 후 나머지 일정 금액을 한국 사회에 재투자하거나 나누지 않는 것이 공분을 사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최고의 실적을 올렸다. 벤츠에서 판매하는 차량의 한 대당 평균 가격은 7천만원가량이다. 이 차를 지난해에 1만6천여 대를 팔아 무려 1조1천2백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판매 대수는 전년보다 80%가량 급신장했다. 하지만 벤츠가 한국에 기부한 금액은 3천56만원에 그쳤다. 차 한 대 값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매출액과 비교했을 때는 0.0027% 수준으로 업계 최저치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국내 외제차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BMW코리아는 어떨까. 지난 5년간 올린 순이익 1천1백70억원의 60%인 7백2억원을 대주주인 BMW홀딩스에 배당했다. 지난해에는 매출 1조9백45억원, 순이익 4백80억원을 올리며 승승장구했고, 기부금으로 출연한 금액은 8억8천6백14만원(매출 대비 0.08%)이었다. 한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매출 대비 0.005%인 4천2백만원을 기부했다.

선의나 자발적 기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여론이 거세다. 재벌 기업들이 주요 대상이다. 과거 국내 대기업들의 사회 공헌 활동은 연말을 이용한 단발성 기부에 그쳤다. 그러나 나눔, 상생이 화두로 떠오르며 기업에게도 일종의 책임이 지워졌다. 소비자들은 ‘착한’ 기업이 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무언의 압박이다. 기업에게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보면 기부도 투자이다. 과거에는 단순히 비용 지출로만 여겼다면 이제는 기업 내에서 기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기부도 하나의 투자이자 마케팅이 되고 있다. 불편하지만 진실이다”라고 말했다. 조명현 교수 역시 “기부를 제도적으로 의무화한다거나 하는 것은 이상하다. 오히려 준조세라는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은 세계적인 트렌드이다. 외국 기업들도 국내의 여론을 본사에 전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국 내에서의 기부와 관련된 지시 사항들이 자연스럽게 내려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전영기
외국 기업의 기부 활동이 눈에 띄게 저조한데.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투자를 하고 확대 재생산을 하면서 이곳 한국에서 사랑받는 기업으로 크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가능한 한 투자금을 빨리 빼서 본국으로 송금하기에 바쁘다.

기업의 기부는 의무가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회적 강제’와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 나라에서 계속 발전할 수 있다거나 기부를 하는 것이 기업의 이익을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때 기부를 포함한 사회 공헌 활동이 이루어진다. 의무감보다는 장기적으로 보고 기부를 하는 것이 기업에게도 ‘윈’이고 한국 사회에도 ‘윈’이다.

그래도 외국 기업은 이런 분위기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국내 재벌 기업들은 이른바 ‘태생적 원죄’라는 것이 있어서 강제가 통한다. 하지만 외국 기업에는 강제라는 개념도 별로 없고, 원죄 의식 역시 없다. 외국 기업들은 한국에서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하기보다는 이익을 어떻게 빼 나가고, 언제 한국 기업에 팔고 나갈 것인가에 대한 마인드가 강한 것 같다.

접대비 지출은 유난히 많다. 한국에서 기부보다 접대가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세금 문제와 경영진의 인센티브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접대비는 100% 세금 공제가 된다. 또 접대비는 좀 더 직접적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근시안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짧은 경영 마인드에서는 접대가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특히 외국 기업 지사장의 경우에는 길게 보아야 효과가 나오는 기부보다는 효과가 빨리 날 수 있는 접대가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경영진의 인센티브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외국 기업이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한계라고 보아도 될까?

아니다. 본인들이 정말로 ‘코리안 루이비통’이 되고자 한다면 달라진다. 프랑스의 루이비통이 아니라 코리아의 루이비통으로 한국에서 기부도 하고 투자도 하고 고용도 해서 한국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야 한다. 틈만 나면 본국으로 송금하는 행위는, 결국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내릴 뿐이다.

외국 기업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보는가.

외국 기업이 한국에서 이익을 창출해 배당을 하거나 본국으로 송금하는 것은 전혀 불법적인 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한국 기업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한국 땅에 투자도 하고 기부도 해서 국민으로부터 존중받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에서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한국 시장에서) 발을 뺄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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