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위한 통로, 정말 열려 있나
  • 박김영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
  • 승인 2011.10.0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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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학교 특수교사조차 수화 못해…<도가니>도 전국 10곳에서만 자막 넣어 상영

▲ 지난 9월30일 광주 인화학교 안에서 장애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작은 사진은 비공개로 진행된 대책위 관계자들과 시민들의 만남을 알리는 안내판. ⓒ광주·시사저널 박은숙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올해부터 교육 시설에서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이 단계적으로 이행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정당한 편의 제공’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모니터링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모니터링을 하면서 만난 청각장애 학생들 가운데는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보청기를 버리거나 안 들려도 들리는 척한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자신이 비장애인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할 때, 그것이 비장애 학생들에게 무시당하는 이유가 되고,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은 장애인들이 거부하고 싶은 현실이다. 그래서 수업을 모두 이해할 수 없어 성적이 떨어진다고 해도 자신이 장애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법이 있으나 그 법을 요구할 수 없는, 법이 넘을 수 없는 더 높은 편견과 인식이 있다.

장애인과의 소통 방안 고민하는 계기 되어야

2005년 당시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 학생들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드러나면서 공동대책위원회가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조사를 진행한 뒤 가해자들을 고발 조치해야 한다는 의미 있는 결정문이 내려졌다. 그래서 피해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치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도 끝나지 않은 사건으로 남겨져 있었고, 사람들은 이 사건을 가슴 한편에 묻어둔 상태였다. 2005년 대책위가 인화학교 마당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던 어느 날 필자는 인화학교를 방문했었다. 피해 장애 학생 중 한 학생의 아버지도 청각장애인이었다. 아이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수화로 말씀하시면서 가슴을 치셨다. 필자는 그 수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버지의 마음이, 가슴이 부서지는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영화 <도가니>(감독 황동혁)가 상영되면서 많은 사람이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동안은 1년에 한두 번, 특히 4월20일 장애인의 날이 되면 언론에서 장애인 단체들에게 장애 여성의 성폭력 사건이 어느 정도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연락이 오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영화 때문에 장애인 성폭력 문제가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성폭력 문제뿐만 아니라 고립된 교육 현장, 집단 시설, 문화의 접근성, 소통의 단절, 사회로부터의 배제 등이 이러한 사건을 만들었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또 하나의 언어로서 수화의 제도화 필요

<도가니>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소통이다. 청각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임에도 청각장애인이 볼 수 있게 자막 처리된 영화는 전국의 10곳에서만 상영되었다.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흥행을 하고 있음에도 하루 한 번만 자막 처리된 영화를 상영했다. 한마디로 장애인차별금지법 21조에 나와 있는 문화의 접근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은 한국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자막이 나오는 외화만을 보아야 한다.

한국 영화가 자막 처리를 하지 않는 이유를 영화 제작사들은 비장애인 관람객이 거부감을 갖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청각장애인과의 소통이 단절되었던 것처럼 <도가니>에서도 특수교사들이 특히 청각장애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서 수화를 하지 못해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 교사를 임용하는 데에 수화 교육이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청각장애 학생이 있어도 교사와 학생 사이에 소통이 안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청각장애인의 사회 접근권이 단절된다. 영화를 계기로 인화학교 같은 시설 학교에서도 청각장애인 집단이 고립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청각장애인이 소통하는 방식은 구화, 수화, 문자이다. 통합학교를 다니는 청각장애 학생들은 이러한 방식을 이용해 비장애 학생들과 소통하려고 하지만 수화가 되지 않는다. 비장애인들이 수화를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청각장애인이라고 모두 수화를 하지는 않는다. 부모는 청각장애 자녀가 비장애인 사회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수화보다 구화를 해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또 하나의 언어로서 수화가 제도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비장애인의 소통은 철저하게 정상성을 추구하고, 그 정상성이라는 것도 권력의 가치 지향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영어는 하나의 권력 지향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시간과 자본을 투여하지만, 사회의 가치성이 높지 않은 집단의 소통 단절을 위해 국가가 자본을 투여하지는 않는다. 소통이 되지 않은 탓에 청각장애인은 사회에 존재하지만 여전히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고 고립되는 것이다.     

2009년 청각장애인 남성이 친구와 기분 좋게 술을 한잔 마시고 택시를 탔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경찰서였다. 깨어나서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 여기가 어디쯤인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글을 쓸 수 있는 종이와 펜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관은 이 장애인이 술주정을 부린다고 생각하고 윽박질렀다. 결국 소란이 벌어졌고 경찰의 구타가 이어졌다. 이것으로 인해 청각장애인은 혼수 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2010년 사망하게 되었다.

영화 <도가니>에서의 사건은 지금도 어느 곳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곳에서 약자에 대한 폭력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청각장애인에게 일어난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약자에 대한 폭력과 권력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이와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를 개선하고 사회적인 인식의 전환도 있어야 하겠지만, 먼저 소통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있어야 한다. 국어와 수화를 같이 쓸 수도 있다. 인간의 진정한 진화는 여러 생명체와 소통하는 것이어야 한다. <마서즈 비니어드 섬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노라 엘렌 그로스 지음, 박승희 옮김)를 읽어보면 이곳 주민들에게 수화는 자연스러운 언어이다. 우리도 다양한 언어들을 찾아내고 그러한 것으로 소통하면서 폭력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 <도가니> 바람이, 스쳐가는 바람이 아니라 변화의 바람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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