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관제탑에 다시 뜨는 ‘기획팀’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09.2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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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전략실 차장에 ‘정보 분석·대관 업무’ 적임자로 장충기 사장 임명…전략기획 업무 총괄할 듯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3월31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를 위해 영국 런던으로 출국하고 있다. ⓒNewsis

 

‘삼성 컨트롤타워(관제탑)에 기획팀이 재건될 것인가.’ 장충기 사장이 지난 9월20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에 임명되자 삼성그룹 안팎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룹에서 오랫동안 기획 담당 임원으로 일한 장사장이 미래전략실 2인자에 오르면서 ‘기획팀’ 재건이 점쳐지는 것이다. 삼성 구조조정본부(미래전략실 전신) 재무팀 천하를 이끈 이학수·김인주 전 전략기획실 실장과 차장은 물러났다. 이제 미래 먹거리 마련이나 인적 쇄신, 경영권 승계 같은 전략기획 업무가 중시되다 보니 장사장이 중용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장차장은 앞으로 김순택 미래전략실장을 보좌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을 총괄한다. 그는 부산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1978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지난 1994년 기획담당 이사보로 그룹 비서실에 합류했다. 기업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로 삼성그룹의 관제탑이 바뀌는 과정에서 줄곧 기획 담당 임원으로 재직했다. 기획 담당 임원이라지만 신규 사업 개발이나 그룹 사업 조정 같은 경영 기획 본연의 업무를 수행한 것은 아니다. 담당 업무는 정보 분석이나 대관(對官) 업무에 그쳤다. 삼성그룹 기획팀은 다른 대기업 집단의 대관 업무 부서에 가까웠다.

삼성그룹 내에서 기획팀 역할을 대관 업무 부서로 격하시킨 이는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이다. 지난 1999년 초 구조조정본부를 장악하며 실권자로 떠오른 이 전 실장은 “지난 10년 동안 기획팀이 기안한 투자는 모두 실패했다. 앞으로 기획팀은 종이에 그림만 그려라”라고 선언했다. 1993년까지만 해도 회장 비서실을 장악한 부서는 기획팀이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1993년 프랑크푸르트와 도쿄에 임원진을 불러 신경영을 선언할 때만 해도 기획팀이 득세했다. 이회장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어라’라고 일갈하며 신경영 전도사로 나설 때 기획팀은 실무적으로 뒷받침했다. 오전 7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하는 7·4제나 자동차 사업 진출을 주관한 부서도 기획팀이었다. 기획팀을 이끈 이는 지승림 구조본 기획팀장이었다. 당시 기획팀과 유일하게 경쟁할 수 있는 부서는 재무팀이었다. 이학수와 김인주는 재무팀 소속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삼성그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자 재무팀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캐시플로(현금 흐름)’에 기초해 그룹 구조조정을 추진하다 보니 재무팀에 힘이 실렸다. ‘지승림팀’의 입지는 갈수록 옹색해졌다. 기획팀이 무너진 결정적 계기는 1999년 삼성자동차 퇴출이다. 삼성자동차 사업이 실패하자 지승림 팀장이 그 책임을 졌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은 만류했지만 지승림이 주도해 자동차 사업에 진출했다’라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기획팀은 공중분해되고 재무팀이 실권을 잡았다. 당시 지승림 팀장은 2000년 사직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장충기 당시 기획팀 이사는 살아남았다. 장차장은 상무로 승진하며 중용되었다. ‘이학수 실장과 같은 경남 밀양 출신이라는 덕을 본 것’이라거나 ‘장차장이 지닌 치밀한 일처리 능력을 높이 샀다’라는 상반된 평가가 나돌았다.

 

‘불도저’ ‘돌다리’ 별명 가진 ‘전략통’

 

▲ 장충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 ⓒNewsis

 

장차장은 대관 업무 부서로 축소된 기획팀 역할에 탁월한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구조본에서 한 번도 낙마하지 않고 줄곧 기획팀장을 지내며 구조본 7인방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구조본은 당시 ‘무소불위’ 조직이었다. 구조본 팀장 중에서 장차장은 당시 51세로 김준 회장실 비서팀장(당시 47세)과 최광해 재무팀장(당시 49세) 다음으로 나이가 적었다. 최주현 경영진단팀장이 동갑이었다. 구조본 7인방은 이학수와 김인주로 이어지는 ‘구조본 천하’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했다. 

장차장은 ‘불도저’와 ‘돌다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사안이 주어지면 갖가지 변수를 고려해 조심스럽게 의사 결정을 하지만 한번 결정된 안건에 대해서는 소신껏 밀어붙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학계, 재계, 정계 가리지 않고 지인이 많다. 대관 업무팀이나 홍보팀에서 수집한 정보는 분석해 회장 보고서에 담는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이태원 자택에서 기획팀이 수집하고 장팀장이 분석한 정보로 세상 흐름을 읽었다. 이 과정에서 탁월한 정보 분석력을 발휘했다고 평가받는다. 장차장은 ‘정보 분석과 대관 업무’라는 새로 규정된 기획팀 업무에 가장 적합한 역량을 갖춘 인사였다.  

‘비밀주의’가 팽배한 구조본 특성상 장차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수행했는지는 파악하기 쉽지 않다. 가끔 국회 청문회에서 장차장의 실명이 거론되거나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를 때나  업무가 파악되었다. 지난 2007년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청문회에서 노회찬 당시 국회의원은 “부산고 1년 후배인 장충기 부사장과 가평베네스트에서 자주 골프를 쳤다는 제보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기획팀이 대관 업무를 맡다 보니 장팀장이 검찰 관계자와 자주 접촉하며 관리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지난 2008년 3월 삼성특별검사팀은 김인주 전 전략기획실 차장과 함께 장팀장을 소환하기도 했다. 장팀장은 김차장과 함께 ‘비자금 조성과 관리에 관여하고 금융감독원과 정치권 로비를 맡았다’라는 의심을 받았다.

온갖 풍파를 겪었지만 삼성그룹 기획팀장은 변함없이 장차장이 맡았다. 2008년 잠시 전략기획실이 해체될 때 삼성물산 임원으로 물러나는 듯했으나 2009년 미래전략실이 생기자 사장으로 승진하며 삼성브랜드관리위원장으로 복귀했다. 지난해 커뮤니케이션팀장이 되었다가 신설된 미래전략실 차장으로 승진했다. 앞으로 신수종 사업, 인적 쇄신, 경영 승계 작업이 산적하다 보니 ‘전략통’인 장차장을 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까지 삼성그룹의 기획 업무는 재무팀이 수행했다. 기획팀은 정보 분석이나 전략 수립 업무에 치중했다. 장차장은 지난 2년 동안 브랜드 관리나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수행했다. 그래서인지 과거 전략기획실 차장이던 김인주 사장과 달리 재량권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그룹 내에서도 김순택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의 보좌 업무를 중시하고 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장차장이 김순택 부회장과 팀장 사이에 위치해 미래전략실 6개팀을 계선상에서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김부회장을 보좌해 김부회장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역할을 담당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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