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뇌관은 ‘빚더미 자영업자’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1.09.20 12: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융권에서 빚 내 생활비 충당하는 ‘생계형’ 크게 늘어…내수 시장 악화로 사업 개선 전망도 불투명

▲ 농협중앙회 본점 영업부에서 한 고객이 직원에게 개인 대출에 대해 물어보고 있다. ⓒ뉴스뱅크 이미지

사례1 “사업 자금을 대출받기 위해 알아볼 곳은 다 알아보았다. 이제는 사채까지 끌어다 써야 할 판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추 아무개씨(41·남)의 말이다. 그는 지난 2009년부터 코마스크를 개발·판매하고 있다.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박태환 선수가 착용하면서 주목을 받았던 상품과 비슷한 종류이다. 하지만 판로 개척이 쉽지 않았다. 사업이 정착될 때까지는 외부에서 자금을 수혈해야 했다. 일부를 은행에서 대출받았지만,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대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럽발’ 경제 위기로 소비마저 위축되었다. 추사장은 현재 사업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사채를 쓰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그는 “대출 한도가 있기 때문에 은행에서는 담보를 걸어도 대출이 되지 않는다. 지인들에게도 돈을 끌어다 썼기 때문에 남은 것은 사채밖에 없지 않겠느냐”라고 토로했다.

사례2 서울에서 레저 관련 사업을 하는 엄 아무개씨(50·여)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엄씨는 올 초 지인들과 함께 회사를 차렸다. 사업 특성상 여름이 되면 일정 부분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여름 내내 계속된 폭우로 사업은 엉망이 되었다.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 문턱을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정부가 관리하는 중소기업 지원 자금을 알아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러는 사이 경영은 계속 악화되었다. 직원 월급까지 밀린 상태이다. 조만간 회사 문을 닫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엄사장은 설명했다.

주요 은행들은 최근 중소기업을 위한 추석 특별 자금 대출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은행, 하나은행 등은 지난해에 비해 2~4배까지 대출 규모를 늘렸다. 하지만 대출 심사에 합격하는 기업은 일부에 불과하다. ‘실핏줄 경제’를 지탱하는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엄사장은 “자영업자의 ‘부익부 빈익빈’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자금력이 어느 정도 되어야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털어놓았다.

‘경제 개미’로 불리는 자영업자들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계속되는 경기 악화로 사업 기반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한국 경제의 기초가 무너질 수 있다’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이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들의 채무가 증가한 것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5월 발표한 ‘예금 취급 기관의 가계 대출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 대출 규모는 2004년 이후 월평균 순증액보다 58.8% 증가했다. 특히 제2 금융권 대출 비중이 크게 높아져 주목된다. 2009년 41%에서 2010년 50%로 상승했다. 용도 역시 ‘주택 구입 이외에 대출’이 42%로 전년 대비 6%나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대출 수요의 상당수가 자영업자일 것으로 보고 있다. 자영업자에 대한 은행권의 대출 요건이 강화되면서 마이너스 대출 등으로 사업 자금이나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서민 금융기관이나 마이너스 대출 중심으로 대출이 늘어났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택 구매보다 사업 자금이나 생활 자금 목적으로 자영업자가 대출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실핏줄 경제 터지면 대재앙 온다”

기자가 만난 자영업자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직원보다 못한 사장’이 주변에 적지 않다고 한다. 일부는 마이너스 대출 등으로 생활비를 대체하기도 한다. 때문에 ‘자영업자발’ 가계 부채 부실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서연구원은 “가계 부채의 핵심이 자영업자라면 위험 수준은 외형상 드러난 것보다 심각할 수 있다. 자영업자의 자금줄 역할을 해오던 제2 금융권이 막힐 경우 가계 부채 부실의 단초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가계 부채 비율은 1백54%에 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정부는 그동안 부채의 절반 이상이 고소득층 임금 근로자이고, 주택 구입 용도라는 이유로 위기 상황을 부정했다. 하지만 상위 20%의 고소득층에서 임금 근로자가 차지한 비중은 34%에 불과했다. 나머지 58%는 자영업자였다. 대출 역시 주택 구매(25%)보다 사업 자금 마련(34%) 목적이 더 많게 나타났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계속된 자영업자 부실을 구조적 문제에서 찾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자영업자가 집중적으로 양상된 것은 지난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 중산층 역할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직자들이 크게 늘어났다. 명예퇴직자로 전락한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창업을 선택했다. 퇴직금과 아파트 담보 대출을 받아 자영업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성공률은 5%에 불과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다. 내수 시장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자영업자들은 생계형으로 전락했다. 대출 역시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제1 금융권에서 시작한 대출은 제2 금융권을 넘어 사채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 후유증이 지금의 자영업자 대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 영세 자영업자들이 몰려 있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재래시장 모습. ⓒ연합뉴스

대기업의 OB 출신들이 대거 일감을 따내면서 독립한 것도 토종 자영업자의 몰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주요 대기업의 하청업체 중에는 퇴직자 출신이 적지 않다. 중소기업이 설 땅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민생 경제 생태계의 ‘사막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장준영 민생경제연대 상임대표는 “자영업자의 몰락은 가계 부채의 핵폭탄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 차원에서 실핏줄 경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자영업자를 똑같은 잣대에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지역 신용보증재단을 통해 생계형 자영업자의 지원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