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던’ 이민 정책 방향 바로잡는 미국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1.09.0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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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추방관’ 오바마 대통령도 재선 위한 듯 이민자 보호 조치·외국 인력 영입 방안 등 내놓아

미국의 이민 정책이 유턴을 하고 코스를 바꿀 조짐을 보여 주목되고 있다. 미국 내 불법 체류자들은 현재 1천8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중에서 7백50만명이 불법 노동자로 추정된다.

워싱턴에 있는 대표적인 반(反)이민 단체인 이민연구센터(CIS)는 불법 이민자들이 교육과 의료 등 각종 서비스를 세금 납부액보다 많이 이용하고 있어 연방 정부가 해마다 1백4억 달러의 적자를 내도록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맞서 이민 옹호 단체들은, 이민 노동자들이 반이민 단체의 주장보다는 훨씬 많은 세금을 납부하고 있으며 농업·건축·서비스 등 미국인 근로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이른바 3D 업종은 이들이 없을 경우 붕괴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사회보장국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서류 미비 노동자(불법 체류자)들은 급여에서 원천 징수되는 페이롤 택스(사회보장세, 메디케어 의료보장세)만으로도 한 해 60억 달러 이상을 납부하고 있다. 그러나 연금과 의료보험 등을 이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처럼 서류 미비자들이 급여에서 원천 징수를 당했지만 찾아 쓰지 못하는, 주인 없는 사회보장세 납부액 3천7백60억 달러가 연방 정부에 축적되어 있다.

▲ 미국 샌디에고에 접한 국경을 넘는 멕시코인들. 이들 중 90%가 불법 체류자로 잡혀 멕시코로 되돌아간다. ⓒDPA 연합

미국 고학력 기술 전문직, 이민자들이 주도

특히 서류 미비 노동자들은 농업·건축·서비스·청소업 등 3D 업종을 지탱하는 필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농업의 경우 1백80만 농장 근로자 가운데 최소한 50만명에서 75만명을 차지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서류 미비 노동자들은 또, 건축 분야 일용직 근로나 호텔이나 식당 등 서비스업계의 서빙과 청소 등을 도맡고 있다.

이들 이민자는 미국의 고학력층, 과학기술계, 전문직들을 주도하고 있다. 이민자들은 의료계 전문 인력의 거의 절반, 컴퓨터 프로그래머 가운데는 10명 중 4명, 수학 화학 등에서는 10명 중 3명을 차지하고 있다. 또 석사의 16%, 박사의 27%를 기록하고 있다. 이민자들은 미국 숙련 기술자들 가운데 15.5%를 차지하고 있으며 STEM(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 분야와 전문직으로 갈수록 그 비율이 대폭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앞으로 5년 동안 대졸자 인력이 3백만명이나 부족해 취업 이민 문호를 확대하는 것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제시된 조지타운 대학의 연구 보고서는 미국에서 2018년까지 대학을 졸업한 노동력이 3백만명 부족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 보고서는, 그때까지 미국 경제는 대졸자 인력 2천2백만명이 필요하지만, 미국 내 학교에서는 1천9백만명을 배출하게 된다고 추산했다. 이 때문에 3백만명의 인력 부족이 예상되어 외국 태생 이민자들의 영입이 필요해질 것이라고 조지타운 대학 보고서는 강조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대표해 증언한 브래드 스미스 법률고문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만 컴퓨터 과학 및 엔지니어링 분야 2천6백29명을 비롯해 4천5백51명의 일자리를 채우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1월20일 취임 이후 거꾸로 가는 이민 정책을 취해 이민 사회의 실망과 분노를 초래했다. 이민 개혁을 외쳤던 오바마 대통령은 현재 ‘이민자 추방관’으로 떠올라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2009년과 2010년에는 한 해에 40만명씩을 추방했다. 2011 회계 연도에도 30만여 명을 더 추방해 100만명 이상의 이민자들을 내쫓았다.

또 지난 2년여 동안 5천 군데 이상의 업체에 대해서는 불법 이민자를 고용하고 있는지 감사를 실시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내 고용주들이 근로자의 이민 신분을 확인해 작성해놓고 있어야 하는 I-9 양식에 대해 대규모로 서류 감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 감사에서 작은 실수라도 적발되면 벌금을 물어야 하고 불법 고용으로 간주되면 업주들은 벌금형과 형사 처벌까지 받는다. 이민 당국의 서류 감사가 실시되면 서류 미비 근로자들이 대거 잠적하거나 해고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이민 당국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근로자들의 온라인으로 합법 취업 자격을 즉석 확인할 수 있는 미국 이민국의 E-Verify 프로그램에 가입해 불법 고용 차단에 동참하고 있는 업주들이 해마다 두 배씩 늘고 있다. 현재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근로자의 취업 자격을 확인하고 있는 미국 고용주들은 24만6천명에 달하고 해당 업체들은 85만 곳에 이른다.

조지아, 앨러배마,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1년 전 애리조나에서 10만명 이상이 이탈했던 사태와 같이 서류 미비자들의 대규모 탈출 러시가 벌어졌다. 조지아 주의 농장업계에서는 한꺼번에 1만1천명의 노동자가 사라져 복숭아 수확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3억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 토네이도에 강타당해 복구가 한창이던 앨러배마 지역에서는 히스패닉 건설 근로자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아 복구 작업이 마비되기도 했다.

경제 회복 위해 이민 확대로 노선 바꿀 듯

▲ 미국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 때문에 미국은 유학생들에게도 인색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The New York Times

합법적으로 미국 이민을 신청한 외국인들은 영주권을 취득하기까지 취업 이민의 경우 6~7년, 가족 이민의 경우 10년 이상 대기해야 하는 극심한 기다림의 고통을 겪고 있다.

현재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외국인의 수는 무려 5백55만명에 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외국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은 4백68만명이고, 미국에 이미 들어와 기다리고 있는 외국인들은 86만명에 이른다. 미국 이민을 신청하고 그린카드를 기다리고 있는 한국인은 모두 16만명으로, 한국 내 대기자가 6만9천명, 미국 내 수속자가 9만명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신청자들은 많은데 미국은 한 해에 100만명 안팎에만 영주권을 발급하고 있고, 특히 취업 이민은 한 해 14만명으로 제한하고 있어 적체 현상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 경제가 불경기를 겪으면서 이민 당국이 보충 서류를 잔뜩 내도록 요구하고 현장에까지 직접 나와 조사를 벌이는 등 까다롭게 심사하는 바람에 영주권 취득이 한층 어려워지고 더 오래 걸리게 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의 경기 침체와 워싱턴 정치권의 제한 정책 등으로 미국 유학생들이 졸업한 후 한 해에 10만여 명씩 대거 미국을 떠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USA투데이는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경제를 활성화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민 확대가 가장 확실한 해법이라며 취업 이민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자는 방안들이 미국 경제계와 워싱턴 정치권에서도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머지않아 미국의 이민 정책이 이민 확대로 방향을 꾸리라는 신호가 나오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벤 버냉키 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 등 전·현직 미국 경제 사령탑들은 미국 경제의 노동력 부족과 사회보장연금 재원 바닥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취업 이민을 현재보다 2~3배 늘려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들은 한 해에 영주권을 제공하는 취업 이민의 쿼터를 현행 14만개에서 적어도 29만개, 나아가 42만개로 대폭 늘려야 한다고 촉구해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재선을 위해 절실한 이민자 표심을 잡기 위한 듯 불법 체류 청소년 추방 유예 등 이민자 보호 조치를 취하고, 석사 창업자에게는 취업 없이도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게 허용하는 등 고급 외국 인력 영입 방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워싱턴 연방 의회에서도 취업 이민 영주권 쿼터를 10만개 이상 늘리거나 창업 영주권 제도를 도입하자는 등의 이민 개혁 법안들이 상정되어 있다. 미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2012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2013년에는 미국의 이민 정책에서도 일대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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