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패배자’냐, ‘보수의 샛별’이냐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1.08.31 01: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세훈 시장 ‘정치적 운명’에 대한 평가 엇갈려…“장기적으로 보아 얻은 것 더 많다” 분석이 더 설득력

▲ 8월21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에서 가진 기자회견 중 무릎을 꿇은 채 투표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 8월26일 사퇴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정치적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가 정치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사실 이번 패배의 단초는 오시장의 정치력이 지닌 한계에 있었다. 무상급식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지난해 6·2 지방선거는, 비교적 순탄한 정치 인생을 걸어온 오시장에게 닥친 첫 위기였다. 오시장은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가까스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서울시의회가 여소야대로 재편되면서 위기는 계속되었다. 불리한 상황을 지혜롭게 돌파하는 것, 이것이 오시장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포용과 화합 그리고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을 평가받는 시험대였던 것이다.

그런데 임기 초반부터 정책을 둘러싼 잡음이 잇따르면서 시의회와의 관계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그러자 오시장은 주민투표 카드를 꺼내들며, 서울시민을 향해 직접 호소하는 초유의 수단을 강구했다. 하지만 이것은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오시장은 시장직 재선 이후 주민투표 패배에 이르기까지 정치력에 한계를 드러냈다. 화합과 조정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긴밀하게 협조하며 일을 추진하지도 못해 당과의 갈등도 뿌리 깊다. 정치 전문가들이 향후 오시장의 정치 행보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오시장이 구사하는 정치 전략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철저한 계획에 따라 정치나 행정을 수행하기보다 시민의 정치 성향 및 여론에만 포커스를 맞춘 ‘이미지 정치’를 주로 했다. 그 맹점이 이번에 드러났다”라고 평가했다. 정치인으로서 부적절한 자질을 노출했다는 지적은 특히 뼈아프다. 고원 서울과기대 교수는 “서울시장직은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모험을 걸 만한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너무 가볍게 결단을 내렸다.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진중하고 냉철한 판단력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내 반감은 부담으로 작용할 듯

오시장을 향한 한나라당 내의 반감도 향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의 ‘올인’ 전략에는 당과의 사전 조율 및 합의하는 과정이 없었다. 당내에서 “개인의 도박에 왜 당이 판돈을 올인하는가”라는 투의 불만이 나왔던 이유이다. 이에 대해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오시장에게 당보다는 자기 개인을 우선시한다는 불만은 과거부터 있었다. 그런 인식이 이번에 더욱 굳어졌다. 앞으로 당내에서 세를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오시장이 반드시 실패한 것만은 아니라는 반론도 강하게 제기된다. 이른바 ‘복지 포퓰리즘’ 전쟁의 최전선에서 보수의 가치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오시장을 “포퓰리즘과 싸운 올곧은 정치인이다”라고 치켜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8월2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오세훈은 이겼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보수는 졌다”라며 투표율 미달의 책임을 오시장이 아닌 여당측에 돌렸다.

실제로 주민투표가 쟁점이 되면서, 정치권 밖의 보수 진영에서는 오시장을 높이 평가하는 흐름이 두드러졌다. 주요 보수 단체는 성명을 발표하며 오시장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등 보수 논객들과 각종 보수 성향 언론 또한 오시장의 행동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지난 4·27 재·보선 패배 이후 여당 지도부의 잇따른 ‘좌클릭’에 보수 세력의 위기감이 고조된 탓이다. 야권의 전면적 무상급식 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한 오시장은 ‘보수의 전사(戰士)’ 격으로 부상했다. 이에 대해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오시장이 보수 정치인으로서의 상징성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보수 정치인들의 전투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투쟁력을 갖춘 정치인으로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또 이번 주민투표는 좋든 싫든 ‘오세훈’이라는 정치인의 존재감을 좀 더 선명히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얼미터가 주민투표 직전 실시한 조사에서 오시장이 ‘차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에 등극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차기 대선조차 치르지 않은 상황에서 2017년 대선을 둘러싼 여론이 큰 의미가 있을 수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지금 장기적인 안목에서 주목받는 정치인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의미 있는 지표라는 분석도 있다. 서울시의 주민투표를 전국적 이슈로 만든 까닭에, 그 중심에 섰던 오시장은 인지도를 더욱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주민투표가 다소 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치밀한 전략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는 얘기도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오시장의 한 측근은 “현재의 여소야대 구도에서는 오시장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은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에 에워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 시장’으로 계속 남느니,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이 상태로 2014년까지 그냥 자리만 지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회의감이 많았다”라고 밝혔다. 주민투표가 즉흥적인 발상이 아니라 향후 정치 일정까지 염두에 둔 전환점이었다는 뜻이다.

이렇듯 오시장이 확보한 인지도나 상징성을 고려했을 때 그의 재기는 앞당겨질 수도 있을 전망이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직전 정치권 밖에 있던 오시장이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했던 전례도 있었다. 내년 총선 및 대선 과정이나 그 이후의 정국에서 한나라당이 위기에 빠져들 때 이를 타개할 구원 투수로 등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벌써부터 19대 총선 출마 가능성, 심지어는 보수 신당 소속으로의 대선 출마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오시장의 ‘자기 쇄신’ 필요하다는 주장도

물론 섣불리 예단할 일은 아니다. 이번 주민투표 패배로 입은 상처가 크기 때문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오시장의 재기 시점에 대해 “앞으로 정치적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지금 상황만 놓고서는 무엇이라 판단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오시장의 재기 가능성이나 그 시점은 향후 복지 이슈의 흐름이나 보수 세력 구도의 변화 등과 같은 외부 상황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시장 자신의 자기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진 소장은 “‘복지 포퓰리즘’을 막겠다고 했는데 오시장 자신도 ‘행정 포퓰리즘’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실력으로 보여주는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큰 정치인이 되는 길목에는 언제나 큰 위기가 있다. 오시장이 아직 젊고 유망한 정치인이기 때문에, 철저한 자기반성을 거치며 기다린다면 기회는 꼭 다시 올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