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광구>를 보는 두 개의 낯익은 시선
  • 라제기│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11.08.16 14: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봉 전 언론과 평단은 영화 전반에 걸쳐 혹평 / 개봉 후 관객 평은 대체로 후하지만 아쉬움 많아

ⓒbodo CJE&M제공

“놀라운 기술적 완성도에 박수를 보낸다.” “공부가 더 재미있었어요.” 

지난 8월4일 개봉한 블록버스터 <7광구>에 대한 전혀 상반된 반응이다. 상업성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블록버스터가 영화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는 힘들다지만 <7광구>에 대한 평은 유난히 극과 극이다. <7광구>를 향한 두 개의 다른 시선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현주소를 보게 한다. <7광구>는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한국산 디지털 3D 영화라 할 수 있다.

‘제2의 <디 워>’ 논란?

<7광구>는 개봉 전부터 혹평에 시달렸다. 지난 7월26일 언론시사회 이후 신통치 않는 이야기와 어설픈 3D가 문제라는 지적이 언론 곳곳에서 언급되었다. 급기야 개봉 직전까지 재편집과 컴퓨터그래픽 재작업을 하고서는 개봉 당일 오후에서야 극장에 선보이는 해프닝을 벌였다.

우려와 달리 출발은 좋았다. 개봉 첫 주 1백36만1천10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불러모으며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가장 빠른 흥행 속도를 보였다. 개봉 전 혹평을 받았던 영화의 성적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준수한 흥행 성과이다. 언론과 평단의 평가에 비해 관객의 평은 대체로 후하다. 기대 밖이라는 감상평과 함께 3D의 기술적 완성도에 대한 평가가 높다.

<7광구>를 둘러싼 두 가지 시선은 2007년 <디 워> 논란을 연상케 한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는 평론가의 혹평을 받은 반면 많은 네티즌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당시에도 평론가들은 서사 구조의 부실을 지적했고, 네티즌은 기술적 측면에서 <디 워>를 긍정 평가했다. 관객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영화사의 마케팅 전략이 네티즌들의 지지와 맞물리며 <디 워>는 7백86만명 동원이라는 흥행 기록을 올렸다. ‘한국 영화 최초의 아이맥스 3D 상영’ 등의 문구로 호객하는 <7광구>의 상업적 전략도 <디 워>와 닮은꼴이다.

그러나 <7광구>가 <디 워> 같은 흥행 실적을 남길지는 미지수이다. 개봉 첫 주말을 거치며 흥행 기세가 많이 꺾였다. 8월10일 개봉한 한국 영화 <최종병기 활>(13만8천9백13명)과 <블라인드>(6만4천9백52명)의 영향으로 1일(8월10일 기준) 흥행 순위도 2위(7만1천3백44명)로 밀려났다. <블라인드>와의 격차도 크지 않아 치열한 흥행 경쟁이 예상된다.

투자배급사인 CJ E&M 영화 부문 관계자는 “광복절이 낀 3일 연휴 관객이 극장에 몰려 시장이 커지니 아직도 흥행 여력은 충분하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적지 않은 영화인들이 <7광구>의 고전을 점치고 있다. 자칫하면 손익분기점도 못 맞출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7광구>가 언론과 평단의 비판적 평가를 무릅쓰고 제2의 <디 워>가 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듯하다.

문제는 <7광구>가 100억원대를 들인 블록버스터로서 여러 면에서 완성도를 지니고 있느냐는 것이다. <7광구>의 완성도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 댈 필요는 없다는 것이 영화계의 일반적인 인식. 한 해의 가장 큰 시장인 여름 극장가의 블록버스터는 최대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다. <7광구>는 적극적인 3D 영화 제작 시도와 해외 시장 개척 의지 등도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부실한 이야기에 대한 평단과 언론의 지적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영화에 해당된다지만 특별히 블록버스터는 시나리오에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는 것이 영화 관계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더욱이 공상과학영화인 <7광구>는 좀 더 많은 자원을 투입했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한 충무로의 한 중견 감독은 “블록버스터라면 제작비의 10분의 1 정도를 시나리오 개발에 사용해야 한다. 블록버스터일수록 치밀한 이야기 구조는 필수이다”라고 강조했다.

<7광구>의 시나리오는 제작자인 윤제균 감독이 초안을 작성했고, 제작사인 JK필름의 여러 관계자가 각색에 참여했다. 시나리오 개발 명목으로 별도의 비용을 책정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시나리오는 영화의 씨앗이다. 1급 시나리오에서 1급, 2급, 3급 영화가 나올 수 있지만 3급 시나리오에서는 3급 영화만 나온다”라고 말했다.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영화 관계자들이 특별히 마음에 두어야 할 말인 듯하다.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쥐벽서’ 사건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뱅크시가 만든 다큐멘터리이다. 그렇다고 뱅크시가 그래피티의 역사나 작업 방식을 친절히 안내하는 영화를 찍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접으시라.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그런 기대를 완전히 불식시키면서도, 그 이상의 진실을 폭로한다.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제목은 관람객이 기프트숍을 거쳐 밖으로 나가게 되어 있는 미술관의 동선을 가리키는 말로, 미술관 중심의 기존 미술이 얼마나 상업적인지를 꼬집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뱅크시가 아니라 티에리이다. 그래피티 작가를 따라다니며 강박적으로 촬영을 해댄 인물로, 영화 전반부에 담긴 뱅크시와 다른 그래피티 작가의 작업은 티에리가 찍은 것이다. 기존 미술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미술관이 아닌 거리에서 경찰에게 쫓기며 작업한 뱅크시의 작품이 미술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것은 대단한 모순이다. 자본에 저항하는 행위마저도 과정의 도발성은 제거한 채 결과만을 물신화시켜 고가의 상품으로 팔아버리는 끔찍한 생리를 목도한 뱅크시는 티에리에게 그동안 찍은 필름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거리 예술의 진실”을 공개하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티에리의 다큐멘터리는 끔찍하게 난삽했고, 뱅크시는 자신이 편집하겠다며 필름을 넘겨받는다. 대신 티에리에게는 직접 작품을 해보라고 권유하는데, 그 뒤는 어찌되었을까. 티에리는 ‘미스터 브레인워시’라는 이름으로 그간 보아온 그래피티 작업을 차용해 상업적인 대성공을 거둔다. 거기에는 뱅크시의 격려사와 언론의 펌프질도 한몫했다. 영화는 티에리라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통해 현대미술의 허구성을 까발리는 허무 개그처럼 보인다. 그러나 티에리를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어 조롱하는 이 영화 역시 뱅크시와 티에리가 짜고 친 고스톱이 아니었을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