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정신과 치료 받고 있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8.03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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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씨, 지난 3월 세브란스병원에서 우울증 진단받아…“정상 생활 어려운 수준” 소견

▲ 지난 2009년 1월10일 박대성씨가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시사저널자료

지난 2008년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서 활동하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대성씨(34). 박씨는 당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정부의 외환 정책 등에 대한 글을 올려 ‘인터넷 경제 대통령’으로까지 불리며 한껏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지금 그의 삶은 파괴되었다. 박씨는 지난 3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및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다.  

박씨는 2009년 1월7일 전기통신기본법을 위반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긴급 체포되었다.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였다. 그의 구속은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라는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되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해 4월20일 1심에서 무죄로 풀려났지만, 검찰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러자 박씨는 그해 5월 자신을 구속시킨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 심판을 청구했고, 12월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결국, 박씨를 구속시켰던 법 조항의 효력이 상실되면서 검찰은 항소를 취하했다. 박씨가 그 지긋지긋한 ‘미네르바 사건’의 터널을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박씨의 악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대성씨는 정부에서 조작한 가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박씨는 그들과 2년째 지루하게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미네르바’로 인해 구속까지 당했던 박씨가, 이제는 그 자신이 ‘진짜 미네르바’임을 또 입증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초, 사석에서 만난 박씨는 “내가 어렵게 사는 서민들을 위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내가 배운 경제 지식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싶다”라고도 했다. 구속 이전에 비해 몸무게가 무려 30kg이나 빠진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목소리에는 그래도 강단이 있었다. 그는 헤어질 때 “(가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의) 재판 때문에 너무 피곤하다”라며 답답한 심정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7월25일 만난 박씨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완전히 맥이 빠져 있는 느낌이었다. 행여 지나다가 ‘툭’ 치면 ‘픽’ 쓰러질 정도로 유약해보였다.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대인기피증도 생긴 듯했다. 그를 여러 차례 만났지만, 모자를 눌러쓴 모습은 처음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정상인’은 아닌 듯했다. 

‘가짜’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폭행 위협도

▲ 지난 7월25일 만난 박대성씨는 초췌한 모습이었다. ⓒ시사저널 박은숙

지난 3월29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심리검사실이 박씨를 대상으로 실시한 ‘심리 테스트 보고서’에는 박씨가 심리 테스트를 의뢰했던 사유가 소상히 기록되어 있었다.

‘2009년 하반기부터 ‘정부에서 (가짜 미네르바로) 조작한 사주를 받았다’라고 주장하며 인터넷에 (박씨의) 주민등록번호, 집 주소 등 신상 정보를 올리며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신상을 보호하고, ‘내가 정부에 의해 돈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신상 정보를 유포하는 사람들을 고소해서 현재까지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2010년 11월 말, 성남지방법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 법원 문 앞에서 (박씨를 가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하는) 피고인 세 명이 환자(박씨)를 폭행하려고 했다.

고소 대리인(박씨의 지인)이 뺨, 다리, 복부를 맞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구나. 밤에 계획 살인으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불안감과 공포감을 느꼈고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졌다고 한다. 음식을 먹지 않아도 공복감이 없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으며, 항상 불안하고 초조해 병원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유로 실시된 박씨에 대한 병원의 테스트 결과는 대략 이렇다. ‘사고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다.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상황 판단에서 멀어져 있는 상태이다. 우울감이나 불안감의 수준은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영위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보고된다. 겉으로 표출되지 못한 부정적 감정이 누적되어 있고, 사소한 심리적 혼란감과 정서적 불편감을 쉽게 ‘폭발’(trigger·방아쇠)시킬 수 있겠다. 심리적 에너지 수준이 현저히 저하되어 있어서, 평소에도 무기력감을 느끼고,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동기를 얻기에 매우 어려운 상태라 할 수 있겠다.’

기자가 그를 만났을 때도 그런 증상들이 엿보였다. 두 시간 정도 대화하는 동안 그의 눈빛에서는 수시로 불안해하는 기색이 비쳤다. 말 속에는 무기력감이 잔뜩 배어 있었다. 몇 차례 눈시울이 붉어졌고, 울먹이기도 했다. 박씨는 “사실상 일상생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한계에 다다랐다. 아니, 그 한계를 넘어섰다. 인생 자체가 완전히 쓰레기통이 되었다. 자살하려고 ‘한강에 가야 하나’를 생각한 적도 있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된 까닭에 대해 “처음에는 공권력에 의해 ‘미네르바’로 구속되었고, 다음에는 예기치 못한 ‘가짜 미네르바’ 소송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이 나라를 떠나야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국가가 멀쩡한 애를 데려다 완전히 매장시켜버렸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네르바 사건’ 이후 박씨의 아버지는 화병으로 마신 술 때문에 간경화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여동생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생활비는 친척들이 보태주는 돈으로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박씨는 이날 기자와 대화하던 도중 갑자기 바지 뒷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오늘 외삼촌이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주셨다. 빈털터리가 되었고, 인간관계까지 다 파괴되었다. 이제는 병까지 생겼다. 도대체 이게 뭔가”라며 울먹였다.

박씨에게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가 꿈꾸는 ‘미래’는 아주 ‘소박’했다. “나는 장남이다.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 지금은 가짜 미네르바 재판 때문에 취직도 하지 못한다. 재판이 자꾸 길어지고 있어 정말이지 답답하다. 하루빨리 재판이 끝났으면 좋겠다. 재판이 끝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직장에 다니면서 주말에 쉴 수 있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7월29일 박씨가 ‘가짜 미네르바’라는 내용의 글을 포털 사이트에 올린 혐의로 황 아무개씨 등 두 명에 대해 추가 기소했다. 이들은 또 박씨의 포털 사이트 아이디와 전화번호, 주소 등을 인터넷상에 무단 게재한 혐의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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