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칫집’이 왜 검찰 수사를 받을까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1.08.03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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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린푸드, 신세계푸드 경영 정보 빼낸 혐의로 압수수색…‘백화점 전쟁’ 연장으로 보는 시각도

▲ 신세계백화점(왼쪽), 현대백화점(오른쪽). ⓒ 시사저널 윤성호(왼쪽), ⓒ 시사저널 유장훈(오른쪽)

검찰이 경쟁사의 핵심 경영 정보를 빼낸 혐의로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인 현대그린푸드를 조사하고 있다. 지난 7월19일에는 경기도 용인시 동천동에 있는 현대그린푸드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5층에 있는 혁신TF팀 사무실과 6층 전산실을 집중적으로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경쟁사인 신세계푸드의 내부 자료가 현대그린푸드로 유출된 경로와 실제로 이 자료를 활용했는지 여부가 수사의 관건이다. 현재 대검 디지털포렌식팀에서 압수한 물품을 분석 중인 것으로 안다”라고 귀띔했다. 검찰은 조만간 관련자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현대그린푸드, 계열사 통합 효과로 상승세

현대그린푸드는 최근 깜짝 놀랄 만한 실적을 발표했다. 2분기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90.2%나 늘어났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각각 5.8%와 11.7% 증가했다. 식품 계열사인 현대H&S와 현대푸드시스템, 현대F&G를 하나로 합친 효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현대그린푸드의 실적이 개선되는 것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이지영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부터 합병한 현대F&G의 매출과 영업 이익이 반영되는 만큼 추가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주가 역시 최근 몇 개월 동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불과 6개월 사이에 주가가 60% 이상 올랐다.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는 이런 ‘잔칫집’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현대그린푸드측은 압수수색 사실을 시인했지만, 혐의 자체는 완강히 부인했다. 현대그린푸드의 한 관계자는 “내부 조사 결과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 조사를 지켜보면서 대응하겠다”라고 밝혔다. 압수수색을 한 수원지검 역시 함구하고 있다. 박경호 수원지검 2차장검사는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수사팀은 현재 혐의를 입증할 근거와 진술을 일정 부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19일 전산실과 혁신TF팀 사무실만을 콕 찍어서 들여다본 것도 그 때문이다. 사전 조사가 이미 충분히 진행되었다는 얘기이다.

검찰 수사가 내부 첩보를 통해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주목된다. 관련 업계와 검찰 등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세계푸드는 경쟁사인 현대그린푸드를 검찰에 고소했다. 신세계그룹 내 기업윤리실천사무국에서 감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정보가 유출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그룹의 한 관계자는 “유출된 자료에는 신세계푸드 중·장기 사업에 대한 외부 컨설팅 결과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경쟁사 직원을 거쳐 파일이 통째로 현대그린푸드에 넘어간 것으로 보고 검찰에 조사를 요청했다”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고소장을 접수한 뒤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고소장이 접수되면 경찰을 통해 수사 지휘를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검찰이 직접 압수수색에 나섰다는 것은 사안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반증이다”라고 귀띔했다. 

70조원 규모 식품 유통 시장 진출하면서 충돌

▲ 2009년 12월17일 ㈜현대푸드시스템(현 현대그린푸드)의 유가증권 시장 신규 상장 기념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업계 일각에서는 고소 사건을 최근 가열되는 ‘백화점 전쟁’의 연장 선상에서 보기도 한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최근 업계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09년까지만 해도 현대백화점이 신세계를 멀찍이 앞서나갔다. 하지만 지난해 들어 매출 격차가 4천억원대로 줄어들었다. 그러자 오너들 사이에도 미묘한 신경전이 감지되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은 10년 가까운 은둔을 깨고 경영 전면에 나섰다. 정회장은 올해를 ‘새로운 10년을 위한 도약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지난해에는 8년 만에 처음으로 신규 점포를 열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역시 추격에 고삐를 죄고 있다. 이른바 ‘트위터 경영’을 통해 상생과 소통을 강조하고 나섰다. 충주점 서관의 리뉴얼 작업과 인천점 증축도 추진하고 있다. 백화점과 이마트의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회사를 분할하기도 했다. 이러한 오너들의 자존심 대결이 계열 회사인 식품 유통업체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업계의 경쟁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총성 없는 전쟁터’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지난 2008년까지만 해도 신세계푸드가 시장을 선도했다. 당시 신세계푸드의 시장 점유율은 11.9%, 매출은 4천1백91억원을 기록했다. 점유율 9.4%, 매출 3천3백18억원을 기록한 현대그린푸드보다 앞서 나갔다. 지난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신세계의 연평균 매출액과 순이익은 21%에 달할 정도로 고속 성장을 이어갔다. 그런데 올해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식품 계열사 세 곳을 합병한 현대가 역전을 했다. 김주희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그린푸드와 현대F&G의 재무제표를 합산한 매출만 9천30억원대에 달한다. 지난해 매출 6천100억대를 기록한 신세계와 차이가 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신세계푸드는 올 초부터 70조원 규모의 식품 유통 시장에도 진출했다. 업소용 식품 브랜드인 ‘월채’와 가정용 브랜드인 ‘행복한 입’을 런칭했다. 현대 역시 최근 현대F&G 합병과 함께 가정용 브랜드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예정이다. 물론 이들은 각각 이마트나 현대백화점 등을 통해 제품을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시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양측이 신경전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지난 5월 현대그린푸드를 검찰에 고소한 곳은 신세계푸드이다. 하지만 관련 절차는 현재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세계푸드측 역시 “고소에 대한 것은 모른다. 그룹에서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라고 말해 이런 분석을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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