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 비행, 끝은 어디인가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07.2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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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임준선

금이 금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에 가격이 6배나 뛰었고, 최근에도 세계 경제의 불안정과 유동성 과잉이라는 뒷바람을 받아 고공 비행을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 온스당 2천 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금을 사두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과연 금은 투자 대상으로서 매력적인 상품일까.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금값의 비밀’을 풀어보았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사는 안지은씨(40)는 요즘 횡재한 기분에 들떠 있다. 안씨는 지난 2000년 아들의 돌을 맞아 잔치를 열었다. 당시 돌잔치에 참석한 친지나 직장 동료들은 돌 반지를 선물했다. 안씨는 맞벌이이다 보니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돌 반지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겼다. 친정어머니는 얼마 전 안씨에게 돌 반지를 돌려주었다. 안씨는 시가 1천만원이 넘는 순금 52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안씨는 고민에 빠졌다. 안씨는 “갖고 있자니 1돈에 20만원이 넘는 금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고, 팔자니 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보도가 마음에 걸린다”라고 말했다. 주요 원자재값이 그러하듯이 금값은  세계 경제 여건이나 원자재 수급 현황에 따라 결정된다. 금값은 지금 사상 최고치까지 치솟고 있다. 경제 불안과 유동성 과잉이 겹치면서 금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리스가 지난 7월 초 채무 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빠질 우려가 커지자 아테네 시민들은 예금 계좌에서 돈을 빼 금 주화를 사들였다. 채무 불이행이나 통화 가치 절하를 우려한 시민들이 예금을 찾아 금 사재기에 나선 것이다. 경제 위기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경고등이 켜지면 전세계 투자자는 금을 사들인다. 지난해 5월 불거진 남유럽 재정 위기는 아직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 의회가 8월2일까지 채무 한도 증액에 합의하지 못하면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디폴트에 빠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미국 정부는 이미 임계치까지 불어난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두 차례 양적완화 조치를 통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시중에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했다. 미국이 지난 6월 말 2차 양적완화 조치를 마무리하자 이번에는 일본이 전세계에 유동성 공급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도호쿠 지방 대지진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 내각은 60조 엔이 넘는 자금을 풀고 있다. 미국·유럽·일본 같은 경제 선진국은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기 부양책으로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추었다. 유동성은 넘치고 금리는 낮다 보니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떠오른 신흥 시장은 성장을 포기하더라도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 정책까지 펴고 있다.

넘치는 유동성은 주식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가 싶더니 최근 안전 자산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그렇다 보니 금과 스위스프랑화의 가치가 오르고 있다. 지난 7월18일 금값이 1트로이온스(troy ounce, 31.1 그램, 8.3 돈)당 1천6백 달러를 넘어섰다. 사상 최고치이다. 스위스프랑화의 실질 가치도 교역 상대국 통화와 비교해 사상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지난 10년 동안 거의 6배 넘게 뛰었다. 지난 7월21일 미국에서 채무 한도 협상이 타결될 조짐이 보이고 주식시장이 안정되자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8월 인도 금선물은 온스당 1천5백96.9달러까지 빠지기도 했다. 

금값이 오른다는 것은 최악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금 투자자 다수는 문명의 몰락과 함께 화폐·채권·주식 같은 종이 자산이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금을 산다. 미국 보수주의 정치평론가이자 TV 프로그램 <폭스뉴스>의 진행자인 글렌 벡은 “다가오는 위기에 대비해 금을 사두라”라고 주장한다. 위기감이 고조될수록 금에 대한 수요는 커지고 있다. 신흥 국가 중앙은행들은 지난 20년 동안 금을 팔던 것을 멈추고 금 사재기에 나섰다. 중동에서는 ‘금괴 자판기’까지 등장했다. 지금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공항에서는 수많은 여행객이 금화를 사기 위해 북새통을 이룬다. 개인 투자자는 kg 단위로 금괴를 매입한다.

요즘은 금 ETF가 인기이다. 금 ETF는 금에 간접 투자하는 펀드 상품으로,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다. 금 ETF는 도입된 지 10년이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금 ETF 운영 펀드가 보유한 금 물량이 2천2백t까지 늘어날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금 ETF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개인 투자자나 기관 투자자는 금선물에 투자하거나 금 광산업체의 주식을 매입한다.

세계에서 가장 금을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인도이다. 힌두교 국가 인도는 해마다 전세계 금의 25%가량인 8백t을 소비한다. 자체 생산량으로는 금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인도는 해마다 4백t이 넘는 금을 수입한다. 인도 경제가 살아나고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인도인의 금 소비량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얼마 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금 2백t을 한꺼번에 사들인 적이 있다. 이언 아미티지 씨티증권 원자재 영업 총괄대표는 지난 7월19일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달러를 대체할 안전 자산으로 금을 선호하는 현상은 2~3년 지속된다. 온스당 2천 달러까지 오를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금 채굴은 갈수록 어려워져 수요 못 따라가

금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나 공급은 이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캔 금은 17만t에 이른다. 체적이 8천7백50㎥를 넘는다. 한 면이 21㎡(평방미터)인 정육면체를 상상하면 얼핏 맞을 듯하다. 광산업계는 지난해에만 금 2천6백89t을 캐냈다. 한 해 최대 생산량이지만 10년 전과 비교해 늘어난 양은 미미하다. 금광이 오래되면서 금 채굴이 갈수록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금광석의 품질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금속 전문 컨설팅업체 GFMS에 따르면, 금 광산에서 캐는 금광석의 등급은 1999년에 비해 30%까지 떨어졌다. 등급이 높은 금광석을 얻기 위해서는 더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 채굴 장비와 연료값 같은 채굴 비용이 불어나고 있다. 인건비도 치솟고 있다. 10년 전 1트로이온스의 금을 캐기 위해 들인 비용은 2백 달러를 조금 웃돌았다. 이 비용은 지난해 8백57달러까지 치솟았다.

새 금광맥을 찾는 비용도 불어나고 있다. 광업 전문 컨설팅업체 ‘메탈이코노믹스그룹(MEG)’에 따르면, 금광업계가 한 해 광맥 탐사에 쓰는 금액은 2002년 5억 달러에서 2008년 30억 달러까지 올랐다. 비용은 여섯 배로 늘었으나 찾은 양은 오히려 줄었다. 접근이 용이한 광맥은 일찌감치 파헤쳐졌다. 북미나 호주 같은 안전지대에서 채굴 가능한 금 광산이 줄어들고 있다. 금 광산업자들은 이제 남미나 아프리카처럼 ‘말썽 많은’ 지역까지 돌아다니고 있다.

영국 종합 시사 주간지 <디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6월2일 ‘이상한 금의 세계’라는 기사에서 ‘세계가 망하면 금 투자자는 “내가 그럴 거라고 말했잖아”라고 하겠으나 투자자가 어느 날 미몽에서 깨어나 노란 금속(금)이 튤립처럼 쓸데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금 투자는 불타서 사라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국제 파생상품 투자 업체 퀀텀펀드의 운영자 조지 소로스는 지난 1분기 8억 달러어치의 금을 팔아치웠다. 금값이 오를 만큼 올랐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은 지난 5월 “오를 만큼 오른 금에 투자하는 것은 어리석다”라고 말했다. 이용은 한맥투자증권 해외파생영업팀장은 “5년이 지나도 금값이 지금처럼 높지 않을 듯하다. 단기간에 지나치게 오른 감이 있어 개인 투자자는 금에 투자하더라도 단기로 가져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다른 투자 상품과 마찬가지로 금값은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다. 가끔 속절없이 급락하기도 한다. 금값은 지난 1980년 사상 최고치를 넘어선 뒤 20년 동안 85% 떨어져 1999년 온스당 3백30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위험 피하려 금 사는 것은 어리석은 짓”

마크 펠트스타인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 상승이나 달러 가치 하락 위험을 피하기 위해 금을 매입하는 행위는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지적한다. 금값이 물가 상승률에 비례해 오르지 않고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보전할 만큼 오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1980년 금값은 온스당 4백 달러였다. 그 후 10년 동안 미국 물가는 60%나 올랐으나 금값은 여전히 4백 달러였다. 2000년 미국의 물가지수는 1980년에 비해 2배 이상 올랐으나 금값은 온스당 3백 달러까지 떨어졌다. 달러 가치 하락으로 자산 가치가 떨어지는 위험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금은 유용하지 않다. 1980년 1달러는 2백 엔이었다. 25년이 지나 1달러는 1백10엔까지 떨어졌다. 금값은 1980년이나 2005년이나 같았다. 그러다 보니 펠트스타인 교수는 ‘물가 상승이나 통화 가치 하락으로 발생하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금보다는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물가연동채권(TIPS)이나 (경제 기초 여건이 좋은) 나라의 통화를 사는 것이 훨씬 낫다’라고 주장한다.  

현재의 금값 상승세, 과거와는 양상 다르다?

ⓒ연합뉴스

금은 고위험 투자 상품이다. 주식, 채권, 부동산과 달리 금 가치는 기초 수익을 반영하지 않는다. 금은 철이나 비철금속과 달리 산업재로서 사용 가치가 크지 않다. 금값은 투자자 사이에 형성되는 자의적 판단에 기초한다. 그만큼 금값 변동 폭이 크다. 지난 수년 동안 금값은 온스당 5백 달러까지 떨어지다가 2천 달러까지 치솟고 있다. 금 투자는 투기에 가깝다. 금은 ‘사는 이가 모든 책임을 안아야 하는’ 캐비엣 엠프토르(Caveat Emptor) 상품이다. 그럼에도 금은 훌륭한 투자 상품이다. 금값은 2005년부터 지금까지 3배 넘게 올랐다. 그렇다 보니 금은 주식·채권·부동산 위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투자자에게 분산 투자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더욱이 현재 금값 상승세는 과거와 다르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7월19일 시장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시장이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것이 고무적이다. 이것(금값 상승)은 잠시 불다 마는 바람이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지금 유동성이 줄어드는 와중에 금 거래량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시장이 군중 심리에 끌려 다니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일본 종합상사 미쓰이의 연구원 데이비드 졸리는 “온스당 1천6백 달러는 지나치게 많이 오른 감이 있지만 금값 상승세는 여전하다. 수많은 이들이 금을 사고 있다. 금값이 높다고 사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온스당 1천6백 달러가 지나치게 비싸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값이 오르고 있으니 내일보다 오늘 사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 조지 프로보폴로스 그리스 중앙은행 총재가 지난 4월11일 그리스 채무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그리스나 포르투갈 같은 남유럽 국가가 겪는 재정 위기는 금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 그리스와 포르투갈은 엄청난 금 보유고를 자랑한다. 그러다 보니 유럽 안팎에서 ‘그리스나 포르투갈이 금을 팔아 빚을 갚아야 한다’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닉 무어 왕립스코틀랜드은행(RBS) 수석상품투자전략가는 7월4일 독일 유력 일간지 디벨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고객들이,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 정부들이 갖고 있는 금을 팔지 않는 이유를 추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스 중앙은행은 금 1백14t을 보유하고 있다. 대형 차량 4대가 가득 실어야 옮길 수 있는 양이다. 시가로 환산하면 58억 달러에 이른다. 포르투갈은 그리스보다 더 많은 금을 보유하고 있다. 리스본에 있는 포르투갈 중앙은행 금고에는 금 3백83t이 쌓여 있다. 시가 1백93억 달러가 넘는다. 포루투갈은 5백67t이나 되던 금 보유고를 지난 2007년 3백40t까지 줄였다. 금 매각 대금 40억 달러가 국고에 들어오자 포르투갈은 금 매각을 멈추었다. 공교롭게도 포르투갈은 지금 유럽연맹(EU)으로부터 1천1백60억 달러 원조 패키지를 받고 있다. 그렇다 보니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원조국에서 보유한 금을 팔아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를 상환해야 하지 않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로존 국가는 총 5천4백50억 달러에 이르는 금을 보유하고 있다. 유로존 국가 채무는 12조 달러이다. 보유한 금을 팔면 채무액의 4.5%를 갚을 수 있다. 유럽 중앙은행들은 마음대로 금을 팔 수 없다. 유럽 중앙은행이 맺은 금협정에 따라, 유럽 중앙은행이 한 해에 매각할 수 있는 물량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중앙은행들이 올해 팔 수 있는 물량은 4백t이다. 지금까지 팔린 물량은 53t에 불과하다. 그나마 52t은 국제통화기금(IMF) 보유고에서 나왔다. 유럽 중앙은행들은 오히려 금을 더 사들이고 있어 유럽 중앙은행 금고에는 금이 쌓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유로화나 파운드화로 환산한 금값은 사상 최고치를 웃돌고 있다. 

 유럽 개인 투자자들도 금을 사들이고 있다. 금 ETF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캐피탈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금 ETF 거래에 설정된 금은 2천1백71t에 이른다. 바클레이스캐피탈 소속 시장 분석가 수키 쿠퍼는 “인도의 결혼 시즌이 아니다 보니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금값은 오르고 있다. 지금 같은 환경에서 금값은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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