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열쇠 ‘도둑’에게 맡기는 나라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06.2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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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neypapa@naver.com

공무원들이 떨고 있다. 정부가 공직 비리에 대한 고강도 감찰에 나서면서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태세이다. 이명박 대통령까지 ‘공직 기강 확립’을 강하게 주문하면서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이대통령은 지난 6월17일 열린 국정토론회에서 “온통 나라 전체가 비리투성이 같다”라고 격한 표현을 썼다.

대통령의 ‘진노’에 화들짝 놀란 것은 공직 사회를 감시·감찰하는 기관들이다. 총리실 주재로 정부 합동단속반도 꾸려졌다. 지금 공직 사회에는 매서운 사정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정부종합청사를 비롯한 관가에는 벌써부터 전운이 감돌고 있다. 6월22일 점심 시간에 정부중앙청사 식당가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내부 분위기’에 대해 “저축은행에서부터 시작해 공직자 비리가 터져나오고 대통령까지 나서면서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괜한 시비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이번 달에 있을 모임과 약속을 모두 취소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점심 때 청사 주변 식당에 가면 말을 아끼고 그냥 밥만 먹는다. 감찰반이 돌아다니고 있어 조심하고 있다. 지금 시범 케이스로 걸리면 끝장이다”라며 주변을 살폈다.

실제 이날 정부청사 주변 식당은 예전 같지 않게 조용했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꽉 들어차 발 디딜 틈도 없었으나 왁자지껄 대화하는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공무원들은 식사가 끝난 후 썰물처럼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최근 공직 사회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공직 사회의 비리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관행처럼 이어져왔다. 그랬던 것이 최근 잇달아 터지고 있는 대형 사건과 맞물리면서 공직자들의 비리가 고구마 줄기처럼 달려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빙산의 일각’이다. 지금도 관가 어딘가에는 더 큰 비리가 숨어 있고, 곰팡이처럼 증식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탐욕스럽고 부정을 일삼는 ‘탐관오리’들이 있는 한, 공직 비리의 생명력은 질길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부산저축은행 사건은 공직 비리의 ‘종합판’이다.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힌다. 공직 비리를 감시·조사하는 감사원 감사위원이 비리에 한통속이 되었다.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금감원 국장은 억대의 금품을 받고 뒤를 봐주었다. 전 금융감독원장까지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국세청 직원들도 돈을 받고 세무조사를 무마해주었다. 공직 사회가 뼛속까지 비리로 오염되어 있다고 할 만하다.

공직 사회의 비리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서울지방국세청 국장을 지낸 세무사 이 아무개씨는 학원 대표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3억원을 챙겼다가 들통 났다. 국토해양부 과장은 부동산투자신탁회사의 사주에게서 수천만 원의 현금과 산삼까지 받았다.

국토해양부 등 정부 중앙 부처에서는 관행적으로 세미나를 빙자한 ‘연찬회’가 열리고 있었다. 주로 목·금요일에 열린다고 해서 ‘목·금 연찬회’라는 말이 붙었다. 연찬회가 끝난 후에는 관례적으로 골프 접대나 향응을 받았다. 관가에서는 ‘연찬회’를 일컬어 ‘염불보다 잿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공직 사회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시사저널>은 공무원 사회에서 일어난 기가 막힐 ‘공직 비리 백태’를 여섯 가지로 압축해 깊숙이 살펴보았다.

■ 개인 돈 챙기듯 공금·국가 보조금 횡령

▲ 지난 6월17일 민생 점검 및 공직 윤리 확립을 위한 장·차관 국정 토론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금이나 국가 보조금 횡령은 탐관오리들의 단골 메뉴이다. 오죽하면 ‘나랏돈은 눈먼 돈’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못 먹는 것이 바보’라는 인식이 팽배해져 있다. 곳간을 지키라고 열쇠를 맡겼더니 오히려 도둑으로 변해 야금야금 빼먹는 꼴이다.

얼마 전 충북 영동군이 발칵 뒤집힌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4월 영동군의 한 면사무소 여직원이 2천여 만원의 공금을 횡령하고 투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해 11월에는 유가 보조금을 관리하던 건설과 직원이 7억여 원을 빼돌렸다가 적발되었다. 지난 2월에는 보건소 회계 업무를 맡던 직원이 재활치료센터 공사비와 의약품 구입비 등 10억3천7백만원을 빼내 잠적했다. 영동군은 횡령 사건이 잇달아 터지자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받았다. 급기야 영동군수와 충북도지사까지 나서 영동군의 공금 횡령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근무하는 한 세무직 공무원은 아예 ‘공금 횡령 전용’ 차명 계좌를 만들었다. 그는 2009년 1월부터 지난 2월까지 지방세 체납으로 압류된 물건 등에 대한 법원 경매를 통해 시에 입금되는 배당금을 자신의 차명 계좌로 빼돌렸다. 이런 수법으로 23회에 걸쳐 총 3억7천만원의 공금을 횡령했다.

전남 순천에서는 시청 공무원 두 명이 짜고 허위 공문서를 작성해 국가 보조금을 빼돌렸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전남, 경남·부산 등 남해안 3개 시·도 관광협의회의 전남지부에서 지역관광 활성화 목적으로 지급받은 국가 보조금 8천8백만원 가운데 3천2백만원을 개인 주머니에 챙겼다. 순천시 예산에 편성되지 않아 시에 감사 대상에서 제외된 국가 보조금 관련 서류를 조작하거나 시연 일자를 부풀리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들은 완전 범죄를 위해 주민들의 계좌에 먼저 입금한 후 이를 현금으로 되돌려 받았다.

전원책 변호사는 “우리나라 공직 사회 부패의 뿌리는 ‘패거리 문화’에 있다. 제일 상층부부터 패거리 문화가 시작되었고, 그것이 먹이 사슬처럼 얽혀 있다. 그렇다 보니 아랫사람이 보기에 못 먹는 놈이 바보이다. 이러니까 뇌물을 주거나 받고 나서 들켜도 ‘내가 참 부끄럽다’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도 다 해먹는데 재수 없게 걸렸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변호사는 또 “패거리 문화를 없애려면 지연·학연·전관예우 등을 타파해야 한다. 어느 순간에 한꺼번에 없앨 수는 없겠지만 법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불이익을 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 ‘칼만 안 든 날강도’처럼 금품·향응 수수

▲ 지난 6월23일 과천 정부청사 공무원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 청사를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금품과 향응 수수도 공직 사회에 만연해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금품이나 향응을 받은 공무원의 수가 최근 급증했다. 2009년에 3백81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약 두 배에 달하는 7백60명이었다. 금품 향응 수수가 가장 많았던 2005년보다 23명이나 많았다.

경기도 건설본부 소속 6급 공무원인 이 아무개씨는 영락없이 ‘칼만 안 든 날강도’였다. 이씨는 2009년에 고속도로 공사를 감독하면서 ‘현장 감독’을 봉으로 내세웠다. 이씨는 룸살롱에서 외상으로 1백70만원어치의 술을 마셨다. 그런 후 공사를 맡은 건설회사의 현장소장에게 “업무상 먹은 룸살롱 외상값이 있으니 대신 갚아달라”라고 요구했다.

이씨의 술값 대납 강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현장소장에게 “오늘 술 한잔 할테니 술값은 나중에 갚아달라”라고 전화한 후 다음 날에 50만원짜리 술값 영수증을 내밀기도 했다. 이씨는 또 골프 매장에서 골프용품을 고른 뒤 비용은 현장소장에게 대신 내도록 했다.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사무관 안 아무개씨는 인천공항에 파견 나가 있었다. 안씨는 게임업체 대표인 박 아무개씨로부터 출입국 관련 청탁을 들어주고 4천여 만원을 받았다가 적발되었다. 박씨에게 돈을 받은 공무원은 또 있었다. 박씨는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도 돈을 건넸다. 세무서에도 검은손을 뻗었다. 세무 공무원들에게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며 청탁했다. 그 대가로 향응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공무원들의 금품·향응 수수에 대해 각 지방자치단체도 징계를 강화했다. 경기도는 금품·향응 수수나 공금 횡령·유용 등의 혐의로 징계받은 공무원은 수수액의 1~5배까지 징계 부과금을 내도록 했다. 경기도교육청은 6월1일부터 100만원 이상 금품·향응을 받은 교육 공무원은 무조건 형사 고발하기로 했다. 충남 당진군은 공무원 비리를 신고하는 사람에게 최대 5천만원의 보상금을 내걸었다. 이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 법인카드 ‘쌈짓돈’처럼 사용

▲ 지난해 12월 비리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이대엽 전 성남시장의 집에서 현금과 고급 양주 등이 무더기로 나왔다. ⓒ연합뉴스
공직 사회에는 법인카드를 개인 주머니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 실태 조사를 보면 공무원들이 법인카드를 어떤 용도로 생각하고 있는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일부 공공 기관에서는 법인카드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 골프장, 노래방 등에서 법인카드로 수억 원을 사용하거나 환송회 등의 명목으로 유흥업소에서 수천만 원을 결제하기도 했다. A기관 직원들은 2009년 1?8월 법인카드 사용이 제한된 골프장과 노래방에서 무려 1억2천만원을 사용했다. B기관은 퇴임 직원 환송회 등의 명목으로 유흥주점에서 법인카드로 2천만원을 사용했다.

또한 법인카드로 개인 골프용품, 고가의 선물 등을 무단 구매했고, 과도한 접대비를 숨기기 위해 분할 결제(쪼개기)하거나 허위 증빙서를 작성하는 등의 탈법 행위도 일삼았다. 또 구체적인 사용 내역 없이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심야 시간이나 휴일에 수억 원을 사용했고, 내부 회의 개최 명목으로 수시로 주점을 이용했다.

C기관은 2008년 7월?2009년 12월까지 주말과 공휴일에만 법인카드로 1억1천9백60만원(9백89건)을 사용했다. 물론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증빙 서류도 없었다. D기관 직원들은 공휴일에 공사 감독 명목으로 2천6백만원을 썼으나 출장 명령서 등 사용 내역을 입증할 자료가 부족했다. 권익위는 이들 기관이 어디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법인카드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전체 공공 기관에 확대해 설치하기로 했다.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스템 문제를 제기한다. 이교수는 “내부 시스템이 이런 문제를 조장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연구소나 대학에서 정부 용역을 맡으면 인건비는 잘 인정하지 않으면서 술 먹고 밥 먹고 출장 간 것은 경비로 다 인정해준다. 공무원 사회에서도 경비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대충 해서 적당히 올리면 다 인정해주다 보니까 면역이 생긴 것이다”라고 말했다.

■ 장부 조작해 공금 빼돌리기

장부를 조작해 공금을 빼돌리는 수법도 고전에 속한다. 지난해 12월 대전 동구청에서 일어난 일이다. 구청 공무원 수십 명이 허위로 출장 장부를 만든 후 출장 여비 수천만 원을 타냈다. 더욱이 대전 동구청의 예산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을 때였다. 월급을 지급하지 못해 대전시에서 긴급 예산을 지원받아 간신히 월급을 주고 있었다.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 혐의를 받은 공무원 중에는 구청 국장급도 있었다. 이들은 관내 출장이라는 명목으로 매달 정기적으로 가짜 근무 상황부를 적어 청구하는 방법으로 2007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8백70회에 걸쳐 4천7백39만원 상당의 출장 여비를 수령해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수도권의 한 지자체 과장급 공무원 등은 허위로 출장 처리를 하거나 직원 출장비 중 일부를 환수하고 관련 업체 등에서 받은 금품으로 공통 경비를 조성해 과 회식비 등으로 사용하다 총리실에 적발되기도 했다. 서울의 한 국립대 교수는 다른 사람의 사업자 명의를 도용해 허위로 물품 계약 및 용역을 하는 것처럼 장부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공금을 빼돌렸다.

■ 허위 공문서 발송해 수당 챙기기

가짜 공문서를 진짜인 것처럼 발송해서 공금을 빼먹은 공무원도 있다. 지난 2월 경남 사천경찰서에서 적발한 사례이다. 사천시청에서 퇴직한 김 아무개씨 등 28명은 공로 연수 차원에서 제공되는 국외 여행 경비를 노렸다. 이들은 공무원으로 재직할 때인 2007년부터 2008년 사이에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허위 공문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수법으로 1인당 6백만원씩 총 1억6천8백만원을 가로챘다.

얼빠진 경찰관도 있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수사과에 근무했던 한 경찰관은 고소·고발 사건을 사건부에 등재하지 않은 채 수사를 진행하고 관련 공문서를 거짓으로 작성해 발송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2007년 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총 4회에 걸쳐 허위 공문서를 작성·발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고소·고발장을 접수하고도 사건 번호를 전산·임시 사건부·범죄 사건부에 입력하지 않은 채 임의대로 수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는 선거 홍보물 봉인·발송 작업에 투입된 인부의 명부 등을 허위로 조작해 1천6백만원의 수당을 챙긴 강릉시청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적발되기도 했다.

■ 근무지 이탈해 골프나 카드 도박

총리실에 적발된 지방 공무원들 중에는 평일 근무 시간에 골프를 즐긴 공무원도 있었다. 그는 3년여 동안 평일 근무 시간 중에 근무지를 무단 이탈하거나 허위 출장 처리하는 방법으로 근무지 인근 골프장에서 골프를 했다.

지난 4월에는 경기도 간부 공무원들이 직무와 관련 있는 업체로부터 골프 접대와 향응을 받았다가 물의를 빚었다. 식품 및 의약품 검사를 담당하는 기관의 한 연구관은 지난해 11월 직무 관련 업체로부터 해외와 제주도 등지에서 수차례에 걸쳐 2백만원 상당의 골프 접대를 받았다. 또 다른 기관의 인사는 10억원 상당의 용역을 수주한 업체로부터 3~4차례 향응을 제공받았다. 당시 이 인사는 공사 계약 및 관리·감독을 맡고 있었다. 경기도 소속 자치단체의 한 주택과장은 업무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관내 건축업자로부터 제주도 등지서 골프 접대를 받았다.

6월에는 팔당호 조사 용역업체 대표로부터 골프 접대 등을 받은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 간부 공무원이 경찰에 적발되어 검찰에 넘겨졌다. 이 간부는 지난 2009년부터 업체 대표로부터 모두 6차례의 골프 접대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총리실에 따르면 청사 사무실에서 카드 도박을 한 간 큰 공무원도 있었다. 국립 A기관의 경북 지역 소재 직원은 다른 기관 공무원 등과 수시로 어울려 소속 기관 청사의 사무실에서 카드 도박을 했다. 지난 5월 대전에서는 구청 공무원들이 카드 도박판을 벌였다. 이들은 관내 한 식당에서 100여 만원을 걸고 포커와 세븐카드를 치며 도박을 했다.

부동산개발업자로부터 공사 편의 등을 봐주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하고 접대성 상습 도박을 해온 경기 남양주시청 공무원들도 있었다. 이들은 무허가로 전원 주택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편의를 제공받기 위해 공무원들을 상대로 수천만 원의 접대 도박을 했다.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직자들의 기강 해이가 현 정부 들어 더 심해진 것 같다. 최상층부터 군대도 가지 않고, 위장 전입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청렴에 대한 권위를 상실했다. 이런 것이 아래로 전달되어 공직자의 기강 해이로 연결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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