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욕망 뒤엉킨 ‘홍대 앞’특별구
  • 김세희 기자·이규대 인턴기자 ()
  • 승인 2011.06.2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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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익대 주변의 밤은 낮보다 더 화려하다. 각종 클럽과 카페, 음식점, 술집이 즐비한 이곳은 주말이면 젊은이들의 천국으로 변한다. 음악과 공연 등 대중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옛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문화가 퇴조한 자리를 노골적인 ‘욕망’이 채워가고 있다며 아쉬워하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대체 홍대 앞의 밤 문화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루는 홍대 앞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았다. 

▲ 낮보다 밝은 홍대 앞의 밤은 술과 유흥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몸을 가누지 못해 실려가는 여성의 모습을 목격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 6월18일 토요일 밤 11시 반.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주변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로 어수선했다. 대중교통 운행이 종료되는 시점을 얼마 앞두지 않은 때였다. 일군의 사람들이 홍익대학 주변에서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반대로 홍익대학 쪽을 향해 유입되는 사람들의 흐름 역시 뚜렷했다. ‘저녁의 사람들’과 ‘밤의 사람들’이 서로의 자리를 바꾸면서, 주말 밤의 홍대 앞은 그 진면목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북적거리는 인파는 지금이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는 사실을 의심하게끔 했다. 거리는 활력으로 넘쳤다. 카페, 음식점, 술집 등은 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영업을 계속했다. 지나다니는 차량도 많았다.

거리를 메운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나이가 많아야 20대 중반, 적게는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각선미를 강조하는 핫팬츠나 미니스커트, 몸에 밀착해 곡선을 드러내는 원피스 같은 과감한 의상을 착용한 여성들이 많았다. 개성적인 머리 모양과 옷차림을 한 남성들도 많았다.

유명 클럽 앞에는 어김없이 줄이 늘어섰다. 자정 전까지 무료입장 이벤트를 벌이는 클럽이 많아 특히 이 시간 전후로 줄이 길었다. 입구에서 일일이 신분증과 얼굴을 대조하는 탓에 길게 늘어선 줄은 쉽게 줄어들 줄 몰랐다.

클럽 주변의 벤치, 상점 난간 등에는 사람들이 즐비하게 앉아 있었다. 친구를 기다리거나 다른 클럽으로 이동하기 전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맵시 있게 모자를 쓴 한 남성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친구 둘과 함께 다른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김현재씨(33·가명)였다.

그는 주중에는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주말에는 DJ로 활동한다. 작업실이 근처에 있어 홍대 주변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는 항상 사람이 많다. 그런데 오늘 특히 더 많은 것 같다. (홍대 앞 문화가) 과거에 비해 대중화되었다. 덕분에 더 어린 친구들이 많이 이곳을 찾게 되었지만, 그만큼 홍대만의 색깔도 사라졌다”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곁에 있던 친구 박민환씨(33·가명)가 거들었다. “과거에는 음악·공연 등 대중문화의 중심지였는데, 지금은 한마디로 말해 ‘까졌다’. 더 노골적인 방향으로 변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홍대 주변에서 오래 머물러온 사람들은 최근의 변화에 대해 아쉬움을 갖고 있다고 한다. 물론 ‘원나잇 스탠딩’이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자유분방한 만남이 성행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과거의 다양성 있던 문화가 사라지고 지금은 노골적으로 욕망을 추구하는 모습만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특히 남성들의 경우가 그렇다. 김씨는 “클럽을 찾는 여성의 경우 춤추러 오는 경우가 약 80%, 남성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오는 경우가 20% 정도이다. 남성은 여성과의 만남이 목적인 경우가 거의 100%라고 보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장소를 이동해, 한 유명 클럽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두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앳된 얼굴의 김민정씨(24·가명)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클럽에 온다고 했다. 홍대 앞 클럽의 매력에 대해 묻자 “재밌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다. 강남 쪽에도 클럽이 많지만 여기가 더 자유롭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소 조심스럽게 ‘원나잇’ 문화에 대한 질문을 꺼내보았다. 그러자 “우리는 하지 않지만”이라는 전제와 함께 “많이 일어나고 있다”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곁에 있던 친구 정소라씨(24·가명)는 “음흉한 남자들이 많다. 물론 음흉한 여자도 많다”라고 짧게 덧붙였다.

한 힙합 클럽 바깥에서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던 박찬경 매니저(29·가명)는 “3~4년 전부터 클럽 문화가 변했다”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클럽을 많이 찾았었는데 요즘은 다르다고 한다. 그는 “춤을 추러 오는 소수를 제외하면 무조건 ‘부비부비’하러 온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부비부비’가 90% 이상이다. 우리 클럽뿐 아니라 다른 클럽도 마찬가지다. 각 클럽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장르적 특색이 없어졌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최근에는 클럽에 숨어드는 고등학생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신분증을 위조한다든지, 자기와 닮은 형제의 신분증을 빌리는 등의 수법을 동원한다. 박매니저는 “우리 클럽에서도 최대한 막아보려 노력하고 있으나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술집 역시 잔을 부딪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홍대 앞에서 인기 있는 한 바에서 일하는 매니저에 따르면 낯선 사람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것은 클럽에서든 술집에서든 매한가지라고 한다. 그는 “남자 손님만 오는 경우 열에 아홉은 작정하고 온 것이라 보면 된다. 여자 손님의 경우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래도 합석을 요구한 남성들이 마음에 들면 허락하기도 하고, 설사 외모가 좀 떨어지는 상대들을 거절하는 경우에라도 속내는 좋아하는 듯이 보인다. 말 걸어주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새벽 2시,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거리

▲ 새벽 2시, 클럽 입구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시사저널 유장훈

시간이 새벽 2시에 가까워지면서 거리 분위기는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자정 무렵보다 활력은 떨어졌지만 더 무질서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으슥한 골목에서는 농밀한 스킨십을 나누는 남녀가 자주 보였다. 무엇보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발그레한 얼굴로 건물 바깥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자주 보였다. 수채 구멍에 대고 속을 게워내는 사람, 친구의 부축을 받아 자리를 떠나다 주저앉아 구토를 하는 사람도 보였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한 여성은 지인으로 보이는 남성에 의해 끌려나오고 있었다.

주말 밤 홍대 앞 거리에서는 싸움도 자주 발생한다. 바에서 4년간 종업원으로 일한 김해림씨(24)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는 과정에서 싸움이 잦다. 우리 가게에서보다는 바깥 길거리에서 싸움이 난 것을 많이 보았다. 주로 남자들끼리의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노종석씨(27)도 “주말에는 내가 보고 있는 범위 안에서만 하루에 한 번꼴로 싸움이 발생한다. 서로 툭 치고 지나가서 싸움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고, 술을 마시고 기분 탓에 공연한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외국인과 내국인 사이에 시비가 붙었을 경우 더 심각한 상황이 빚어진다는 점이다. 대부분 술김에 싸움이 나는 데다가 상대가 외국인이라는 특성상 사후 조치 또한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FF, 고고스, 고고스2 등 유명 클럽과 바가 있는 골목은 외국인들의 유입이 많은 곳이다. 워낙에 관광지로도 홍보가 되어 있다 보니 수도권에 주둔하는 미군은 물론이고 부산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하는 외국인까지 상경하곤 한다.

이곳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는 “(외국인과 내국인 사이의) 싸움은 다반사이다. 술 취한 여성 한 명을 두고 서로 데려가겠다고 싸우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시비가 붙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그는 “대부분 신경 안 쓰고 그냥 두지만 가끔 주변 클럽 사람들이 끼어들어 싸움을 건 외국인만 따로 구석으로 끌고 가 때리기도 한다. 평소에 외국인들이 클럽에 들어와서 난동도 많이 부리고 하니 감정이 쌓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맞은 외국인은 술에 취해서 기억도 못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 불야성을 이루던 홍대 앞 거리는 새벽 4시를 넘어서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한편 클럽 관계자는 외국인 손님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늘어놓았다. 그는 “솔직히 미군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매상을 많이 올려주기는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아 감정이 상할 때가 있다. 거의 매주 주말마다 오는 인도인 남성 같은 경우 올 때마다 어린 한국 여성을 한 명씩 데리고 나간다. 한 번은 여성이 술에 취해 신발이 벗겨진 채로 끌려나간 경우도 있다. 어디에 가는지는 안 봐도 뻔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물론 애먼 외국인까지 비난할 것은 아니다. 같은 골목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한 아무개씨는 늦은 새벽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한국인 여성을 도우려다 오히려 봉변을 당할 뻔했다. 비틀거리는 여성을 ‘업어가려는’ 외국인 남성들을 물리치고 택시를 태워주려 했지만 도리어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한씨는 “그 이후로 길에 쓰러져 있는 여성들을 보아도 한 번쯤 더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최근에는 유난히 어린 한국 여성들이 (영어권) 외국인에게 관심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는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여자로서 보기에 안 좋을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새벽 3시가 넘도록 홍대 앞의 활력은 지속되었다. 3시 반이 넘어서야 비로소 이곳을 빠져나가는 흐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심야 택시를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 뒤로 뒹굴고 있는 쓰레기들이 보였다. 각종 전단지, 음료수 용기, 맥주병, 공연 포스터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밤거리를 가득 메웠던 활력은 쓰레기 더미를 치우는 환경미화원의 빗질과 함께 그 흔적을 감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끔한 얼굴을 한 이곳 거리는 새로 주말이 올 때마다 젊은 욕망으로 일렁일 것이다. 홍대 앞의 밤 문화는 조금 더 자유분방하게, 그러나 조금은 더 노골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상업화에 대한 자성 마친 후 다시 돌아온 ‘클럽데이’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홍대 앞을 떠들썩하게 했던 클럽데이는 지난 1월28일을 기점으로 잠정 중단되었다. 지나친 상업화와 선정성 논란, 연합 클럽 간의 내부 갈등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기에 클럽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이 분분했다. 그리고 5개월여가 흘러 지난 6월24일 클럽데이가 다시 돌아왔다. 기존의 라이브 클럽과 댄스 클럽이 혼용된 체제에서 댄스 클럽 아홉 군데만이 연합한 형태로 변화했다.

“클럽을 운영하는 업주들이 클럽데이를 중단함으로써 자기반성을 하고, 지나치게 상업화를 추구하는 것에도 제동을 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수익 분배 시스템에도 구조적인 변화를 주었다.” 클럽데이를 주관하는 클럽문화협회 장양숙 총무는 클럽데이를 재개하기까지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기존 체제에서는 클럽데이에 참여하는 모든 클럽이 똑같이 수익을 나누어 가졌다. 그러나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클럽과 그렇지 않은 클럽 사이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제는 이러한 갈등 해결에 기초해 수익 분배 시스템을 재조정했다.

상업화 논란에 대한 자성도 이루어졌다. 얼마 전 클럽 후퍼가 ‘짝짓기 파티’를 선전하며 지나친 상업화·선정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모텔비와 술 등을 상품으로 내건 이 파티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클럽을 운영하는 업주에게 초점을 맞추어 보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엄밀히 따지면 그들은 자영업자이다. 수익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고민을 ‘홍대 앞 클럽 문화’라는 울타리 안에 가둬두고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영세한 업체도 많고, 다른 업체와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칙적인 행동이 나올 때도 있다. 협회 차원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그래도 상업화를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들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장총무의 고민은 클럽 문화와 상업화의 경계선 즈음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장총무는 “곳곳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러한 생각들이 홍대 앞을 또 조금씩 바꾸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홍대 앞만의 문화, 다양함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노는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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