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개방 바란다면 ‘개방’ 강조 말아야”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06.2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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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권 평화자동차 대표 인터뷰 / “대북 사업, 통일에 기여”

▲ 박상권 평화자동차 대표1951년 전남 광주출생1973년 중앙대 졸업1975년 일본 세계일보 기자1979년 미국 인터내셔널            오세아닉 엔터프라이즈 회장1992년 미국 뉴요커 호텔 사장1994년 평양 보통강호텔 총지배인 1999년 평화자동차 대표이사2000년 평화무역 대표이사2003년 평화항공여행사 대표이사2009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2010년 남북경제인협회 회장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 2000년 2월3일 북한 남포에 눈이 내렸다. 눈발이 몰아치는 33만평 허허벌판에 자동차 공장 착공식이 열렸다. 2년 후인 2002년 4월 그 공장에서 승용차를 생산한 사람이 박상권 평화자동차 대표이다. 평화자동차는 1998년 남북이 처음으로 합작해서 설립한 자동차회사이다. 10년 동안 휘파람, 뻐꾸기, 준마, 삼천리라는 이름을 단 승용차와 소형 버스 8종을 생산해왔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남북 관계가 흉흉하지만, 박대표는 올해 가장 많은 2천대 판매를 낙관했다. 그는 성공한 대북 사업가이면서 지난 18년 동안 1백80여 차례나 북한을 방문한, 북한 실정을 가장 잘 아는 북한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 구상(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개방하면 10년 안에 국민소득 3천 달러가 되도록 지원한다는 구상)’에서 ‘개방’이라는 용어를 뺄 것을 주장했다. 북한을 개방으로 이끄는 데 ‘개방’이라는 용어가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박대표는 세습 문제 등과 관련한 최근의 북한 분위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했다.

북한에서 자동차를 생산해 온 지난 10년을 평가한다면?

평양과 남포 경계에 있는 논바닥에 공장을 지어 차를 생산했고, 팔아왔다. 10년 전에는 하루에 한 대 팔기도 어려울 정도로 북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다. 판매 대수가 2002년 1백15대에서 지난해 1천4백50대로 늘어났다. 최근 3년 연속 이익을 내고 있다. 그만큼 북한 경제가 성장했다. 무엇보다 북한 사람에게 차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점이 큰 성과이다. 또, 주변 국가들을 보면서 경제 발전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인식이 그들에게 생겼다.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

나는 지난 18년 동안 1백8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이런 사람이 북한에서 사업에 실패하면 다른 나라 기업이 북한에 투자하겠느냐는 인식을 북한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다. 북한에게 이익이 되면 그냥 놔두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사업이 없어질 수 있는 곳이 북한이다. 금강산 사업이 그렇지 않은가.

올해 판매 목표는?

남한 기준으로는 부끄러운 수치이지만 올해 1천8백대가 대외적으로 밝힌 판매 목표이다. 올 상반기에 이미 8백대가 팔렸는데 이 추세대로라면 연말까지는 2천대(매출 4천만 달러)까지 팔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차가 없어 못 팔 정도로 수요가 많다.

누가 자동차를 사는가?

북한에는 이주의 자유가 없어서 개인이 자동차를 살 이유가 없다. 대부분 기업체가 차를 산다. 북한은 모두 국영기업이라서 계획 경제에 따라 한 회사가 해마다 수십 대씩 차를 산다. 또 북한에 주재하는 대사관에서 차를 사기도 한다.

자동차 가격은 얼마인가?

승용차는 1만3천~1만5천 달러이고 버스는 1만8천 달러 정도이다.

중·장기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까지는 이탈리아 자동차 피아트, 중국 화천자동차, 한국의 체어맨 등을 모델로 차를 만들었는데, 앞으로는 자체 모델의 자동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평양은 공해 문제에 예민해서 전기자동차도 만들려고 한다. 또 유통 사업도 펼칠 계획이다. 러시아,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홍콩 등지에서 수입한 물건을 팔 것이다. 훗날, 백화점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호텔 사업은 어떤 상태인가?

평양에 있는 보통강호텔 사업은 자동차 사업보다 먼저 시작했다. 호텔은 여러 사람이 모이므로 인맥을 형성할 수 있고 각종 정보도 오가는 곳이다. 나만큼 북한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자동차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그래서 말인데, 개도국 등에서 사업하려면 먼저 호텔을 경영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호텔이 어려우면 식당이라도.

일각에서는 박대표의 행보에 대해 통일을 대비한 정지 작업으로 보기도 한다.

통일을 생각하지 않는 대북 사업은 부질없다. 대북 사업은 통일에 이바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내 생애에 틀림없이 통일된다. 내 나이 60인데, 앞으로 90까지 산다고 보고 30년 계획을 세웠다. 고려대 대학원 북한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고 박사에도 도전하려고 한다. 북한 현실에 대한 경험이 있으니 이론까지 겸비하면 정부에 통일에 대한 의견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를 할 생각인가?

아니다.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분위기이다.  

북한이 중국과 가까울수록 통일은 늦어진다. 친구도 자주 만나야 친해진다. 북한이 중국보다 남한과 가까워지도록 하는 전략을 짜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또 중국은 우리에게 적수이다. 중국을 잘 파악하면서 전략적으로 북한을 대해야 한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남북 정상회담이 효과적일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가능하리라 보는가.

▲ 북한에 있는 평화자동차 전시장. ⓒ평화자동차

민감한 문제이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비핵 개방 3000 구상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 구상은 옳다. 우리 정부가 핵을 빼고 북한과 할 이야기가 무엇이 있겠나. 그만큼 절박하다. 북한은 스스로 핵보유국이라고 한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는 4년 가까이 비핵 개방 3000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개방’이라는 말을 빼고 그냥 ‘비핵 3000’이라고 하면 북한도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현재 북한 국민소득이 5백~6백 달러인데, 개방하지 않고는 10년 안에 3천 달러가 되지 않는다. 또 핵이 있어도 불가능하다. 북한에서는 그 누구도 ‘개방’을 입에 올리지 못한다. 이를 정부가 모르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정부에 말하고 싶다. 그러면 북한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북한으로부터 어떤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본다.

통일에 대한 생각은 남과 북이 어떻게 다른가?

북한은 무력 통일, 남한은 흡수 통일을 생각한다. 무력과 흡수로는 통일이 어렵다.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야 통일이 가능하다.

한국, 북한, 미국 등에서 북한 출입이 잦은 박대표에게 정보를 요청하지 않나?

내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아는 것도 없고 무언가를 알더라도 말하지 못한다. 말하면 금방 알려진다. 물론 그럴 만한 정보도 없다. 

북한에서 고위급은 어디까지 만나보았나? 김정일 위원장도 만났나?

나만큼 북한 사람을 많이 만난 사람이 있을까. 고위층은 다 만나보았다. 김정일 위원장은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가까이서 볼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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