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데니시 크라운’ 향해 뛴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06.0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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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국내 축산 농가 현실에 맞춘 유통 패커 구축에 박차…안심한우 등 개발해 보급 나서

 

▲ 최원병 농협중앙회장(맨 오른쪽)이 지난 6월2일 우리 농축산물 나눔행사에 참석해 우리 농축산물을 참석자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농협중앙회 제공
농협중앙회는 ‘한국의 데니시 크라운’을 꿈꾼다. 데니시 크라운은 덴마크의 협동조합형 패커(Packer)이다. 패커는 대형 축산물 유통업체를 일컫는다. 도축·가공 시설과 유통망을 갖추고 축산 농가와 연계해 축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농협중앙회 축산물판매분사는 덴마크의 데니시 크라운이나 뉴질랜드의 폰테라 같은 협동조합형 패커 모형을 국내 축산 농가 현실에 맞게 바꾼 한국형 축산물 유통 패커로 거듭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축산물 유통 사업을 ‘농협 안심 축산 사업’이라고 이름 지었다. 농협중앙회 축산물판매분사는 지난 2008년 11월 안심한우 사업에서 시작해 안심한돈, 안심계란, 유황오리, 안심벌꿀까지 확장하고 있다. 축산물판매분사는 지난 6월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농협 하나로클럽에서 안심 벌꿀 출시 기념식을 열기도 했다. 농협 축산물판매분사가 지금까지 개점한 안심 축산물 전문점은 1백22개이다. 지난 5월27일 하루동안 서울 성북구 장위시장점, 서울 도봉구쌍문동 백운시장점, 서울 은평구 은평뉴타운점을 잇달아 개점하기도 했다. 남성우 농협 축산경제 대표이사는 “축산물 사육·도축·가공·유통·소비에 이르기까지 식품의 안전성과 거래 투명성을 높이고 유통 단계는 줄이는 방식으로 축산물 유통 구조를 개선해 축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산 소고기 파동이 일어나면서 식품 안전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높아졌다. 미국산 소고기 불매 운동에 그치지 않고 촛불 집회라는 대규모 시위 형태로 수입 축산물에 대한 소비자 불안이 표출되었다. 미국산 소고기가 광우병 원균인 프리온에 오염될 수 있다고 판단한 소비자는 미국산 소고기를 비위생적인 식품으로 인식하고 수입 자체를 반대했다. 채형석 농협중앙회 축산물판매분사장은 “당시 촛불 집회 시위대가 농협중앙회로 몰려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소고기 생산과 유통은 농협이 맡아야 할 업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축산물 안전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거세졌다고 판단한 농협중앙회는 당시 축산경제기획부 산하에 안심한우 추진사업단을 만들었다.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국내 양축 농가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채형석 분사장은 지난 2008년 11월 ‘안심한우’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 남성우 농협중앙회 축산사업 대표이사(왼쪽 두 번째)가 지난 5월 전통 시장을 방문해 채형석 농협중앙회 축산물판매분사장(맨 오른쪽)과 안심한우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제공
 2015년까지 전문 판매점 2천개 개설 계획

 농협중앙회는 한·미 FTA 체결에 대비해 한우 산업을 지키고자 산지부터 소비지까지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축산물 유통 사업을 개시했다. 당시 12개 광역 브랜드 출하 두수를 합치면 3만6천두였지만 브랜드별로는 3천두에 불과했다. 그렇다 보니 단일 브랜드로는 연간 1만~2만두 물량을 판매하는 대형 유통업체에 공급하기 힘들었다. 대형 유통점의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브랜드가 필요했다. 횡성 한우에 대한 소비자 인지도는 70%가 넘지만 횡성 한우 유통량은 2천~3천두에 불과하다. 횡성 지역 현지나 횡성한우 전문점에서 비싸게 구입해 먹어야 한다.

 지역 한우마다 품질이나 맛을 내세운다. 소에게 밭에서 키운 채소를 먹이기도 하고 칡을 캐서 먹이기도 한다. 인삼까지 먹이는 농가도 있다. 농가마다 2~3마리를 정성들여키우다 보니 생산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우 농가가 제값을 받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는 비싼 한우를 먹어야 한다. 소고기 유통 마진이 지나치게 큰 탓이다. 소고기 유통 마진은 40%나 된다. 유통 비용을 대폭 줄여야 축산 농가의 수입을 높이고 소비자 가격은 낮출 수 있다. 농협중앙회가 농축산물 유통 개선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는 주로 집에서 축산물을 소비한다. 소고기 81%, 돼지고기 72%가 가정에서 소비된다. 농협중앙회는 소비자가 축산물을 직접 구입하는 곳에 안심 축산물을 공급하겠다고 나섰다. 농협중앙회는 지난 2008년 안심한우 출시와 함께 가장 먼저 국내 5대 유통 채널을 뚫으려 했다. 농협 하나로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GS리테일을 공략했다. 농협 하나로마트에 안심한우를 공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나머지 네 곳을 뚫기는 쉽지 않았다. 농협이 인증했다고 하지만 아직 낯선 브랜드인 데다 자사 축산물 브랜드까지 갖고 있는 곳도 있었다. 이 와중에 농협 안심한우를 팔겠다고 나선 곳은 홈플러스였다. 국내 2위 대형 마트 업체인 홈플러스는 지난 2009년 7월 자사 한우 브랜드 ‘으뜸선’을 포기하면서까지 농협 안심한우를 매장에 들였다. 채형석 분사장은 “글랜 아트웰 홈플러스 구매총괄 부사장이 농협 안심한우 판매를 결정했다. 국내에 아무 연고가 없는 영국인 부사장이 농협 안심한우의 유통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평가해 내린 결단이었다”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매장은 전국 1백26개이다. 농협 안심한우는 이제 전국 곳곳에 팔려나가게 되었다. 농협중앙회 축산물판매분사로서는 쾌거였다.

 축산물판매분사는 당시 국내 5대 유통 채널에만 안심한우를 공급하면 된다고 판단했다. 홈플러스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축산물 판매분사는 이마트, 롯데마트, GS리테일 유통을 타진했다. 나머지 대형 마트는 농협 안심한우 유통을 거절했다. 당시 5대 유통마트를 통해 팔리는 한우는 5만두밖에 되지 않았다. 한 해 국내에서 소비되는 한우는 65만두였다. 10%도 채 되지 않은 물량이 팔리는 대형 마트에 목을 맬 이유가 없었다.

 농협중앙회는 전통 시장과 집 주변 정육점을 주목했다. 축산물 유통량의 절반 이상이 정육점에서 팔리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는 정육점을 안심 축산물 판매점으로 만들기 시작해 지난해 6월 안심 축산물 전문 판매 1호점(까치산점)을 열었다. 농협중앙회는 내년까지 서울에 1천개 점, 2015년까지 전국에 2천개 점을 개설하려고 한다. 인천·부산·대구 같은 광역시까지 전문점을 확장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하고 있다.

신동호 까치산점 대표는 “농협 브랜드 덕에 매출이 늘어났다. 구제역 파동으로 축산물 소비가 줄어들 때도 매출이 꾸준히 유지되었다”라고 말했다.

▲ 소비자들이 농협의 안심계란을 살펴보고 있다. ⓒ농협중앙회 제공
 자체 안전성 검사에 합격한 축산물만 유통
 
 축산물판매분사 안심축산사업부에 따르면, 전문점 한 곳에서 한 주에 평균적으로 팔리는 고기는 한우 1~2마리, 돼지 30~35마리에 이른다. 전문점 1천개 소를 확보하면 연간 한우 5만 마리와 돼지 1백50만 마리를 판매할 수 있다. 안심축산사업부는 안심한우 전문점을 통해 지난 2009년 3만2천 마리, 지난해 5만 마리를 판매했다. 안심한우 브랜드에 대한 소비지 인지도도 크게 높아졌다. 안심한우는 지난해 소비자 인지도 44%까지 올라 횡성 한우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천~3천두밖에 되지 않은 횡성 한우 소비량을 감안하면, 안심한우는 이제 국내 소비자가 가장 많이 소비하는 한우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국내 축산업이 세계 축산업 기업과 규모로 경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브라질 축산업체 JBS는 한 해에 소 3백21만두를 도축한다. 지난해 한국에서 도축한 소는 65만두에 불과하다. 채형석 분사장은 “국내 소비자는 안전한 축산물을 원한다. 지난 2009년 시장조사 기관 갤럽이 축산물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가 축산물을 고르는 기준으로 응답자 42%가 품질, 30%가 안전, 24%가 맛을 꼽았다. 한국 축산업이 살길은 여기에 담겨 있다”라고 말했다. 농협안심축산은 생산·가공·유통 단계마다 농협중앙회가 안전성을 검사해 합격한 축산물만 유통한다. 농협중앙회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항생제 잔류 검사를 독자적으로 실행한다. 또 자체적으로 DNA 검사까지 실행해 한우라는 것을 입증한 제품만 유통한다.

 축산물판매분사는 유통 단계도 5단계에서 3단계로 줄였다. 생산자→우시장→수집상→도매상→유통점→소비자로 흐르던 축산물 유통 구조를 생산자→안심축산→유통점→소비자로 줄였다. 이로 인해 유통 비용이 한우는 두당 1백15만3천원, 한돈은 두당 5만5천원 감소했다. 소비자 가격을 8% 낮추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었다. 한경섭 안심축산사업본부장은 “농협축산경제 부문이 농가를 도우려면 생산이 아닌 부문에서 자립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가장 가능성이 큰 부문이 유통이며, 그 중심에 농협 안심 축산물 전문점의 역할이 있다”라고 말했다.
 
 채형석 분사장은 “구제역 파동 탓에 위기에 몰린 국내 축산 농가가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은 축산물 유통에서 찾아야 한다. 농협중앙회는 국내 축산 농가의 살길을 찾고 있다” 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농협중앙회는 권역별로 도축·가공 시설을 세우고 유통망을 정비하고 있다. 수도권에 축산물 종합 유통 센터를 새로 건설하는가 하면 친환경 청정 종돈장과 파이프스톤형 번식·비육 농장까지 추가 설치하고 있다. 이와 함께 축산물 위생·안전 시스템을 강화해 계열 농장에 대한 인증 시스템을 도입하는가 하면 생산에서 유통까지 HACCP(위해 요소 중점 관리 기준)를 적용하고 있다. HACCP는 생산·제조·유통 과정에서 식품 위생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해 요소를 분석해 제거한다. 이는 또한 식품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중점 관리 항목을 설정하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식품 안전 관리 제도이기도 하다.

 축산물판매분사는 올해 한우 7만두, 한돈 30만두, 계란 3억개까지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사업 품목도 늘리고 있다. 유황오리와 안심벌꿀까지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제품 차별화 차원에서 유황한돈까지 유통한다. 축산물판매분사는 또 2020년 안심한우35만두, 안심한돈 6백만두, 안심계란 20억개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로 인해시장 점유율을 한우 50%, 한돈 40%, 계란 20%까지 높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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