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능력 안 되면 대물림 없다더니…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1.05.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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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2세 경영’ 추진 의심받아 두 아들, 핵심 계열사 지분 매집 등 영향력 확대

 

▲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뉴스뱅크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친·인척을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윤회장은 지난 1980년 일곱 명의 직원과 자본금 7천만원으로 그룹 모태인 웅진씽크빅(옛 웅진출판)을 설립했다. 이후 건설과 식품, 섬유 소재, 태양광, 금융 등으로 급속히 사업 영역을 확대해왔다. 지난해 웅진그룹의 매출은 5조2천억원. 재계 순위 32위(공기업 제외)의 ‘공룡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1970년대 이후 창업한 국내 기업 중에서 30대 그룹으로 성장한 곳은 웅진이 유일하다. 그만큼 성장과 함께 투명한 경영 전략을 유지해왔다.

윤회장도 평소 윤리 경영을 강조했다. 창업 초기부터 투명한 경영을 첫 번째 원칙으로 삼았다. 친·인척을 회사에 근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기본이다. 납품업체에도 친·인척 기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친·인척이 도움을 요청하면 돈을 주지 납품을 허용하지 않았다”라고 윤회장 스스로 말할 정도였다. 자식도 마찬가지였다. “경영 능력이 안 되면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검증을 해보고 능력이 안 되면 과감하게 전문 경영인을 세울 것이라는 얘기이다. 때문에 윤회장의 2세들은 그동안 계열사 지분을 거의 갖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2세들의 계열사 지분이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장남인 형덕씨와 차남 새봄씨는 지난해 12월 웅진케미칼(옛 새한) 주식 1백20만주를 나란히 매입했다. 올 2월에는 보유 주식을 1백75만주로 늘렸다. 언론에서는 웅진 2세들의 핵심 계열사 지분 매집 사실을 주목했다. 이 와중에도 두 아들은 꾸준히 계열사 주식을 매집했다.

지난 4월25일 기준으로 형덕씨와 새봄씨의 지분은 2백33만주(0.49%)로 확대되었다. 윤회장(8.65%)에 이어 개인 2대 주주에 오른 것이다. 웅진코웨이와 렉스필드컨트리클럽 지분도 각각 1.26%와 1.9%씩 보유하고 있다. 그룹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의 지분은 각각 2.08%와 1.66%를 보유하고 있다. 2세 경영을 위한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1년 단위로 초고속 승진한 것도 ‘눈길’

▲ 지난 4월13일 웅진폴리실리콘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윤석금 회장(오른쪽 세 번째). ⓒ연합뉴스

두 아들의 계열사 지분 확대가 경영 능력 검증을 바탕으로 진행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이들의 그룹 내 영향력이 최근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형덕씨는 지난 2008년 웅진코웨이 영업본부 대리로 입사했다. 이후 1년마다 승진을 했다. 2009년 신상품팀장(과장), 2010년 경영전략팀장(차장), 2011년 경영기획실장(부장) 등 알짜 부서를 옮겨다니면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차남 새봄씨도 지난 2009년 웅진씽크빅의 학습지 영업을 관리하는 교문 기획팀에 입사했다. 이후 2010년 전략기획팀을 거쳐 지난해 웅진케미칼 경영관리팀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2세 경영을 위한 본격적인 수순 밟기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웅진그룹측은 여전히 “2세 경영은 시기상조이다”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2세들이 보유한 지분은 그룹 입장에서 극히 적은 양이다. 2세 경영 운운하는 것은 그룹 사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일련의 흐름이 경영 승계를 위한 정지 작업 차원이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계열사 지분을 동일하게 유지한 상태에서 그룹 일을 시키면서 자연스럽게 경쟁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회장도 최근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너가 있는 기업이 좋은지 아닌지를 보고 있다. 굴지의 그룹은 오너가 없는 기업이 잘된다. 반면 일본의 강소 기업은 오너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 “기업인이 적통에 연연하면 후대에 회사를 망칠 수 있다”라고도 했다. 2세 경영은 물론이고, 두 아들에 대해서도 검증을 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미 두 사람은 한국능률협회(KMA)와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이 운영하는 기업 후계자 과정을 이수한 상태이다. 일부 재벌 2·3세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병역 문제도 해결되었다.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그룹의 후계 구도 또한 어떤 식으로든 가시화될 것으로 재계에서는 바라보고 있다.

이 경우 윤회장이 최대 주주인 경서티앤알(100%)과 웅진캐피탈(81.8%)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특히 부동산 개발업체인 경서티앤알은 현재 매출의 100%를 계열사인 극동건설에 의지하고 있다. 계열사 의존도 역시 1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오너 일가 밀어주기’라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 오너가 100% 소유한 회사를 통해 승계 자금을 마련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주요 재벌들이 오너 일가가 거느리는 비상장 회사를 통해 승계 자금을 마련해왔다. 윤석금 회장 역시 환갑을 넘긴 만큼 2세 경영 체제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2세 승계 구도가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웅진그룹은 현재 지주사인 웅진홀딩스를 중심으로 웅진코웨이, 웅진폴리실리콘, 웅진씽크빅, 웅진에너지, 웅진케미칼, 서울상호저축은행 등 30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2008년을 전후로 인수되거나 새로 설립되었다. 윤회장은 지난해 ‘제2의 도약’을 선언했다.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앞으로 가야 할 목표가 멀고도 높다”라고 말했다. 오는 2015년까지 매출 15조원, 영업이익 2조원 달성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도 세웠다. 때문에 웅진그룹은 앞으로도 당분간 윤회장의 강력한 오너십 아래서 운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회장이 최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인수한 자회사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시공 순위 32위인 극동건설은 최근 건설 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저하되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관련해 시행사가 차입을 하기 위한 지급 보증 규모는 지난해 말 자기 자본의 두 배를 넘어섰다. 최근 웅진그룹이 1천억원 규모의 유상 증자에 참여한 것도 이 때문이다.

PF 지급 보증과 관련된 우발 채무가 터지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지난 2009년 말 1백6억원이던 웅진폴리실리콘의 총 차입금도 지난해 2천6백93억원으로 급증했다. 웅진그룹측은 “극동건설이나 웅진폴리실리콘의 실적 개선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그룹의 리스크는 크지 않다”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웅진홀딩스의 장기 신용등급은 웅진코웨이(A+)보다 두 단계 낮은 A- 등급을 받고 있다. 시기상 후계 구도보다 조직을 추스르는 강력한 오너십이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웅진그룹은 후계 구도를 저울질하면서 당분간 윤회장의 강력한 지휘와 통제하에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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