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 떠나자마자 미국-알카에다 “새로운 전쟁 시작됐다”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1.05.10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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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복 테러 저지·테러 조직 괴멸·확산 차단에 총력 알카에다는 후계자 선정·보복 공격 준비·전열 재정비 나설 듯

 

▲ 5월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빈 라덴의 사망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 아래는 빈 라덴 사망 관련 기사들. ⓒAP·EPA 연합


9·11 테러의 아이콘으로 꼽혀온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최후를 맞은 것을 계기로 미국과 알카에다 테러 조직 간에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빈 라덴을 사살한 기념비적인 전과를 올린 후에도 마냥 축배만을 들고 있지 못하고 새로운 테러 전쟁에 돌입했다. 당장 알카에다를 비롯한 무장 세력들의 보복 테러를 막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알카에다 조직도 후계자 선정과 보복 공격, 전열 재정비에 나섰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빈 라덴 사살은 ‘전환점 아닌 이정표’

미국 정보 당국이 4년간이나 집요하게 추적해 파키스탄 은신처를 포착해내고 미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이 급습해 사살함으로써 9·11 테러 공격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은 최후를 맞았다. 빈 라덴 제거는 분명 미국이 테러 전쟁에서 기념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며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정표일 뿐 전환점은 아니라는 것이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 회장 등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환자의 환부를 도려내 치료를 한다고 해도 질병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 것 같이, 테러의 상징 인물을 제거했지만 테러리즘 자체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빈 라덴 제거가 테러 전쟁에서 하나의 이정표일 뿐 전환점은 아니라는 해석이다.

미국은 10년 이상 제1의 공공의 적으로 삼아온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테러 전쟁에서 현재까지 가장 획기적인 전과를 올렸다. 또, 미국을 공격하는 테러 분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정의의 심판대에 올린다는 메시지를 전세계에 던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테러와 싸워야 하는 미국의 단합과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보복 테러를 우려하며 테러 경계를 한층 더 강화해야 하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빈 라덴 제거 작전을 펼친 미국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중에서도 베스트라는 ‘팀 식스’ 대원 24명은 이번 작전을 끝내며 빈 라덴이 소장하고 있던 정보들을 대거 수거해 왔다. 미국은 빈 라덴의 은신처에서 입수한 핵심 정보들이 알카에다 테러 조직의 보복 테러를 막고 나아가 테러 조직을 괴멸시키는 데 결정적 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해군 특수부대가 노획한 빈 라덴 소장품들에는 각종 정보가 담겨 있는 컴퓨터와 USB 드라이브, DVD 등 전자 장비 100여 점과 문서 1천여 건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전문가 수백 명이 투입되어 분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폴리티코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특히 빈 라덴 정보들에는 알카에다의 향후 테러 계획과 새로운 테러 타깃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테러 조직에 관한 극비 정보들까지 들어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빈 라덴 정보들을 초반에 분석한 결과 알카에다 테러 조직들은 철도에 대한 후속 테러를 계획한 것으로 드러나 이에 대한 비상을 걸었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워싱턴의 정보 관계자들은 “미국 정보 당국이 매우 흥분해 있다. 빈 라덴 정보 중에 10%만 제대로 해독해낼 수 있다고 해도 엄청난 성과가 될 것이며 알카에다 조직의 궤멸을 앞당길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를 반영하듯 존 브레넌 백악관 반테러 담당 보좌관은 NBC 방송에 출연한 자리에서 “알카에다 조직은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번 빈 라덴의 사망을 계기로 나머지 조직도 괴멸시킬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미국의 대테러 전쟁 새 전략

▲ 지난 5월5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방문한 뉴욕의 그라운드제로에서 경찰들이 거동이 수상한 남자를 체포하고 있다. ⓒAP연합

미국은 이제 빈 라덴 사망 이후 테러 조직들의 테러를 저지하고 조직을 괴멸시키려는 새 테러 전쟁 전략을 수립해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 회장 등 미 전문가들은 테러리즘 자체를 없앨 수는 없어도 사전에 분쇄할 수 있는 공격 체계와 방어 체계를 구축하고 테러 조직 대원 모집과 테러리즘의 확산을 차단하는 포괄적인 테러 전쟁 전략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첫째, 알카에다 등 무장 세력들의 보복 테러나 후속 테러를 사전에 분쇄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빈 라덴의 소장품과 정보들을 분석해 보복 테러나 후속 테러 계획을 포착해냄으로써 사전에 저지하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테러 용의자들 가운데 칼리드 세이크 모하메드 등 주모자들을 족치게 되면 빈 라덴의 정보와 짜맞출 수 있게 될 것으로 미국 정보 당국은 예상하고 있는 듯하다. 불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게 한다는 테러 분자 신문 기법으로 빈 라덴 전령의 실명을 알아내 집요하게 추적함으로써 10년 만에 은신처를 잡아낸 것처럼 더 많은 테러 계획과 테러 전략, 테러 조직 정보를 끌어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알카에다 테러 조직의 전모를 파악해 최대한 괴멸시키는 강도 높은 전략을 펼 것으로 예고하고 있다. 빈 라덴이 갖고 있던 정보들에는 전세계 알카에다 조직들에 대한 기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고 각국에 퍼져 있는 테러 세포 조직, 자금줄, 전략 등을 파악하면 사실상 괴멸시키는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다고 미국은 보고 있다.

셋째, 미국 내 보안 안전망과 첩보망, 감시·경계 장치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테러 공격을 당할 수 있는 위험 지대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은 항공기뿐만 아니라 원전 시설, 철도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 주요 관광 명소 등에 첨단 감시 장비를 설치하고 불시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넷째, 중동 지역과 이슬람 국가 정부들에게 반테러 전선에 동참하도록 강력한 외교와 군사 협력을 추구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중동 지역과 이슬람 국가들의 다수가 테러리스트들은 아니지만 테러 조직원들의 다수는 이 지역 출신 이슬람교도라는 점에서 해당 국가들이 테러는 무조건 분쇄해나가는 정책을 펼치도록 반테러 연대를 구축한다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다.

다섯째, 중동, 이슬람 국가의 젊은이들이 테러리스트가 되지 않도록 각국에서 민주화 개혁, 빈부 격차 해소, 인권 존중 등이 이뤄지도록 글로벌 협력을 추진해나간다는 것이 빈 라덴 이후 미국의 테러 전쟁 전략이라고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 지난 5월3일 파키스탄인들이 빈 라덴의 사망을 애도하고 있다. ⓒ로이터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한 미국에서는 이제 테러 전쟁에서는 “파키스탄이 문제이다”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파키스탄이 빈 라덴을 비호했거나, 비호하지 않았다면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라고 미국인들은 비판하고 있다. 못 믿을 파키스탄은 더 이상 테러 전쟁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분노의 소리가 높아지고, 한 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원조를 즉각 중단시키려는 워싱턴 정치권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파키스탄 영토에서 전개하면서도 파키스탄 정부측에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 미 해군 특수부대원들을 태운 블랙호크 헬기가 파키스탄 영토를 비행하는 것을 허가받았을 뿐이다. 미국이 파키스탄을 극도로 불신하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표출한 것이다. 미국은 파키스탄 당국에 미리 작전 내용을 알렸다면 곧바로 누설되어 빈 라덴을 잡지 못하고 미군들만 위험을 겪었을 것이라면서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미국은 나아가 파키스탄에게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동굴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 육군사관학교에서 고작 100m 떨어진 도시 한복판 저택에서 수년간 은신하고 있었는데도 어떻게 파키스탄 당국이 모를 수 있었느냐는 의구심이다. 리언 파네타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상·하원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비공개 브리핑에서 “파키스탄측이 연루되어 있든지, 무능했든지 둘 중 하나이다”라고 꼬집었다.

파키스탄 당국이 빈 라덴의 파키스탄 내 은신 사실을 알고서도 비호했거나 몰랐다면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라는 비난이다. 미국 내에서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파키스탄 정보국(ISI)이 3년 이상 이어진 것으로 보이는 빈 라덴의 은신을 모를 리 만무하다는 의혹의 시선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불신과 분노는 빈 라덴이 최후를 맞은 곳이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육로로 100여 km 떨어진 인구 12만명의 도시 아보타바드에 있는 저택이었고 게다가 파키스탄 육군사관학교에서는 불과 100m 떨어진 코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맨션은 1에이커 대지에 보통 가옥보다 8배나 큰 3층 건물과 부속 건물로 이루어진 100만 달러짜리 저택이었다. 이 주택에는 빈 라덴 가족들이 3층짜리 건물에 거주하고 있었다. 전령 두 명의 가족들은 부속 건물에 살고 있었는데 미군의 작전으로 빈 라덴을 포함해 다섯 명이 사망하고 여성 두 명과 남성 네 명, 어린이 여섯 명은 생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파네타 CIA 국장은 파키스탄의 연루 아니면 무능, 둘 중의 하나라고 꼬집었지만 미국 전문가들은 둘 다 혼재해 있는 것이 파키스탄의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 회장은 “파키스탄 정부의 한쪽에서는 테러 분자들에게 동정적이어서 이들과 싸우기는커녕 비호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테러 분자들을 효과적으로 분쇄할 능력이 없는 상황이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파키스탄 국민들의 다수는 빈 라덴을 비롯한 테러 분자들을 감싸면서 반미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미군들이 자국 영토에 쳐들어와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벌인 것을 성토하는 반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국민 다수의 반감을 감안해 미군의 이번 작전은 파키스탄의 주권을 침해한 불법 행동이라고 비난했으나 정면 대결할지, 아니면 무너지는 대미 협력 관계를 수리할지 고심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정치권 “파키스탄 원조 끊어라”

워싱턴 정가에서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협력하는 대가로 한 해 평균 20억~30억 달러씩 보내는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를 중단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 상원 정보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의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은 파키스탄 당국이 빈 라덴의 은신 사실을 알려오지 않은 이유를 답변해야 한다고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프랭크 로텐버그 민주당 상원의원은, 의회가 파키스탄 당국으로부터 답변을 들을 때까지 파키스탄에 대한 군사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2002년부터 2010년까지 9년 동안 1백33억 달러의 안보 분야 원조와 60억 달러의 경제 지원 등 무려 2백억 달러나 파키스탄에 제공했다. 미국의 파키스탄 원조는 2011년에는 30억 달러가 지원되고 2012년에는 반테러 원조 23억 달러와 외교 원조 30억 달러 등 53억 달러가 배정되어 있다.

그러나 워싱턴 정가에서는 파키스탄과 관계를 끊으면 미국의 테러 전쟁이 수렁에 빠지게 될 위험이 생긴다면서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를 성급하게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지금은 파키스탄에서 손을 뗄 때가 아니다”라며 성급한 파키스탄 제재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으로서는 파키스탄에 계속 거액을 제공하면서도 믿지 못하는 불편한 파트너 관계를 지속할지, 어떻게 해서든 완전한 파트너로 만들어 테러 조직 분쇄에 동참시킬지에 대한 고민거리 하나가 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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