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호·황보관을 삼킨 잔인한 달, K리그의 ‘독배’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05.02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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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시즌 초반 성적 부진 이유로 사임한 두 감독의 비애

 

▲ 최순호 ⓒ뉴스뱅크이미지

축구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이다. 높은 연봉과 스포트라이트, 50명 가까운 선수단을 이끄는 권한 등 많은 것이 주어지는 영광의 자리이다. 그러나 승부가 끝난 뒤 결과에 따라 찬사와 비난의 갈림길에 선다. 패했을 경우 마치 법정에서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의 심정이 된다. 기대와 칭찬 속에 감독직을 시작했다가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으며 떠나는 경우가 더 많다.

2011년 K리그는 전체 일정의 4분의 1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 벌써 두 명의 감독이 그 성배의 독에 쓰러졌다. 2009년 신생팀이던 강원 FC를 맡아 3년째 팀을 이끌어오던 최순호 감독이 지난 4월4일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그로부터 3주 만에 지난 시즌 K리그 챔피언인 FC 서울의 황보관 감독이 부임 1백10일 만에 물러났다. 황보관 감독 역시 성적 부진이라는 딱지가 달려 있었다. 최순호·황보관 두 감독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 되고 만 것이다.

‘꼴찌의 역전’ 등 파란 많은 시즌, 이변과 함께 몰려든 경질의 파도

연이은 감독 사임 사태는 2011년 K리그 초반 판도를 흔드는 이변이 만든 결과이다. 올 시즌 K리그는 역대 어떤 시즌보다 이변과 파란이 많다. 지난해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팀 가운데 현재도 6위권을 지키고 있는 팀은 전북(2위)과 제주(6위) 두 팀뿐이다.

지난 시즌 부진했던 명문 포항과 수원이 선두권으로 올라온 것은 예상된 결과였다. 변수는 만년 하위권을 맴돌던 시민구단의 반격이다. 지난 시즌 13위인 대전과 15위 꼴찌였던 대구가 그 선봉에 섰다. 두 팀은 탄탄한 수비와 빠른 카운터 어택을 앞세워 강팀을 잡는 이변을 일으켰다. 대전은 최근 주춤하며 5위를 기록 중이지만 4라운드와 5라운드가 끝난 2주간 1위를 달렸다. 8위 대구도 매 라운드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6위 싸움의 한복판에 있다. 늘 어려움을 겪던 군 팀 상무도 올 시즌 상주로 연고지를 이전한 뒤 힘을 내며 3위를 기록 중이다.

반면 서울, 울산, 성남 등 전통의 강호들은 모두 10위권 밖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디펜딩 챔피언 서울이 16개 구단 중 14위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충격이다. 서울은 지난 시즌 팀 우승을 이끈 포르투갈 출신의 넬로 빙가다 감독이 재계약 협상 과정에서 높은 몸값을 요구하자 이를 뿌리치고 일본에서 지도자 및 행정가 수업을 받던 황보관 감독을 깜짝 발탁했다. 그러나 황보관 감독은 리그 일곱 경기에서 단 1승만을 거두었다. 리그 7라운드에서는 신생팀 광주에게까지 패하며 물러났다. 강원의 경우 올 시즌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한 채 5전 전패를 기록했다. 창단 3년차를 맡아 6강 플레이오프에 도전하겠다며 호기 넘치는 출사표를 밝혔던 최감독은 팀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떠나겠다는 의사와 함께 사임했다.

최순호·황보관 두 감독의 실패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세대 출신 지도자의 엇갈린 희비를 보여준다. 같은 세대인 전북의 최강희 감독과 제주의 박경훈 감독은 승승장구하며 롱런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현역 시절 최강희·박경훈 감독보다 더 높은 명성과 인기를 누렸던 최순호·황보관 감독은 지도자로서는 열세에 놓이게 되었다. 이미 30대이던 2001년 포항의 감독을 맡았던 바 있는 최순호 감독은 내셔널리그에서 야인 생활을 보낸 뒤 2009년 신생팀 강원을 맡았다. 장기적인 비전으로 팀을 이끌겠다며 공격 축구를 위한 의도적 반칙 자제, 외국인 선수 기용 최소화 등의 신선한 방법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천·경남 등 다른 시민구단이 차례로 플레이오프 무대에 진출하는 사이 강원은 부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그의 비전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끝났다.

황보관 감독은 부임 당시부터 이미 논란이 있었다. 우승을 일군 외국인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깜짝 발탁되었지만, 황보관 감독은 지도자로서의 검증이 끝나지 않은 인물이었다. 1996년 일본으로 건너가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오이타 트리니타에서 감독, 부사장 등의 요직을 거쳤다. 그러나 오이타 시절 감독을 맡은 2년 모두 팀 성적이 부진했다. 게다가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탓에 한국 축구의 실정과 선수 면면에 대한 파악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뚜껑을 열자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황보관 감독의 서울은 부진을 거듭했다. 황보관 감독이 K리그를 완벽히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우승을 노리는 서울의 팬은 기다리지 않았다. 결국 성적과 여론의 지지 중 무엇도 잡지 못한 황보관 감독은 사실상의 경질이나 다름없는 자진 사임을 했다.

현실주의에 밀려난 이상주의…‘수비’ 출신 감독이 성공하는 경우 많은 이유

▲ 황보관 ⓒ연합뉴스

일찌감치 물러나게 된 두 감독의 공통점은 ‘이상주의’를 내걸었다는 점이다. 최순호 감독과 황보관 감독은 공격에 중심축을 둔 축구를 통해 내용과 결과를 모두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보였었다. 반면 최강희·박경훈 두 감독은 이기는 축구를 한 뒤 내용을 보강하는 반대 방법을 택했다. 결국 그들의 운명은 결과를 우선시하는 프로의 생리를 따른 최강희·박경훈 감독의 승리로 끝났다.

축구인의 경우 현역 시절의 포지션과 플레이 스타일이 지도자로서의 축구 철학에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공격적 성향이 강한 스트라이커나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의 감독보다 안정적이고 유기적인 협동을 중시하는 수비수나 수비형 미드필더 출신의 감독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이다. 현역 시절 측면 수비수로 활약했던 최강희·박경훈 감독이 성공을 거두고,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인 최순호·황보관 감독이 쓴 잔을 마신 것이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다.

40대 중·후반 감독들의 성패가 엇갈리면서 K리그에는 40대 초반의 소장파 감독들이 떠오르는 현상이 빨라지고 있다. 이미 포항의 황선홍 감독과 성남의 신태용 감독이 K리그에서 맹활약 중이고, 소장파의 기수인 홍명보 감독은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이들에 이어 현역에서 은퇴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1973년생 최용수 코치가 황보관 감독이 빠진 빈자리를 감독대행으로 메우며 K리그 감독군에도 젊은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파리아스의 마법’, K리그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K리그 감독이 조기 이탈하면서 쏠린 관심을 차지한 인물이 있다. 포항의 전 감독인 세르지오 파리아스이다. K리그 최초의 브라질 출신 감독인 그는 38세이던 2005년 포항의 지휘봉을 잡았고 백패스 금지, 과감한 공격 전술을 앞세운 화끈한 축구를 펼치며 화제를 모았다. 2007년 K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2008년 FA컵 우승, 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와 리그컵 우승까지 클럽팀으로서 차지할 수 있는 모든 트로피를 차지하고 명실공히 최고의 감독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2009년 말 홀연히 한국 무대를 떠났다. 이미 포항측과 재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30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제시한 사우디아라비아 알 아흘리 클럽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순식간에 포항의 영웅에서 배신자로 추락한 파리아스 감독은 결국 계약 파기에 따른 보상금까지 감수한 채 중동으로 떠났다. 1년 만에 알 아흘리를 떠나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알 와슬로 옮긴 그는 최근 기존 계약이 끝나자 K리그에 복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이다. 현재 받는 연봉(13억원)에서 어느 정도의 삭감은 감수하겠다는 뜻도 보였다. 그 직후 황보관 감독이 물러남에 따라 파리아스가 서울 감독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루머도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서울의 한웅수 단장은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K리그를 등진 지도자를 데려올 생각은 없다”라고 단호히 부인했다. 그러나 루머와 관계없이 여전히 국내에 많은 팬을 보유한 파리아스 감독이 K리그로 돌아오겠다는 뜻을 보인 것만으로도 과연 ‘파리아스의 매직’을 다시 볼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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