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정치권, 왜 싸움 키우나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1.04.1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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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투쟁 이어 부채 감축안 놓고 여야 재격돌 국가 디폴트까지 볼모로 한 대결이어서 ‘주목’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AP연합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당과 존 베이너 미국 하원의장이 선도하는 공화당이 벼랑 끝에서 대치하며 결투를 벌이고 있다. 연방 정부 기관들을 폐쇄시킬 수도 있다며 예산 투쟁을 벌인 데 이어 이제는 미국의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초래할지 모르는 적자와 부채 감축 방안을 놓고 격돌할 채비를 하고 있다. 워싱턴 정치권의 투쟁은 단순한 숫자 싸움이 아니고 정책과 이념 대결이다. 백악관 주인과 연방 상원 다수당을 판가름할 2012년 11월 선거를 겨냥해 일찌감치 밀릴 수 없는 맞대결에 돌입했기 때문으로 관측되고 있다.

워싱턴 정치권은 마지막 순간 정부 폐쇄 사태를 모면한 예산 삭감 투쟁을 마치자마자 적자 및 부채 감축 투쟁에 돌입했다. 1라운드 예산 투쟁보다 2라운드 부채 감축 격돌이 더 큰 싸움이 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미국은 현재 눈덩이처럼 불어난 연방 적자와 14조 달러를 넘어선 국가 부채에 짓눌려 있다. 민주당의 수장,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하원의 지휘자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예산 투쟁을 마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적자 및 국가 부채 감축을 놓고 진검 승부에 돌입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선공을 취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4월13일 장기적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 얼마나 연방 적자를 감축할 것인지를 담은 적자 감축 방안을 공표했다. 부유층에 대한 감세 혜택을 폐지하는 방안을 포함시켜 공화당과 정면 승부를 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어느 정치인도 손대기를 꺼려하는 노년층 의료보험인 메디케어와 저소득층 의료보장제인 메디케이드에서도 절약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맞서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은 향후 10년간 무려 6조 달러의 예산을 삭감해 적자를 감축한다는 공화당의 장기 계획을 하원에서 승인해 적자 감축 대결을 부채질했다.

적자 및 국가 부채 감축 대결은 예산 삭감 투쟁보다 더 치열한 격돌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의 국가 디폴트를 볼모로 잡고 벼랑 끝에서 대치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격돌은 부활절 2주 연휴를 가진 후 미국 의회가 5월2일 다시 문을 열면서 국가 부채 상한선 조정 문제를 다룰 때 벌어지게 된다.

‘숫자 싸움’ 넘어 정책·이념 투쟁으로

현재 미국 정부가 허용받은 부채 상한선은 14조2천5백억달러인데 미국의 국가 부채는 지난해 말에 이미 14조2백52억 달러로 상한선에 육박했다. 5월16일이면 상한선에 도달한다고 미국 재무부는 밝혔다. 만약 7월8일까지 연방 의회가 국가 부채 상한선을 상향 조정해주지 않으면 미국 정부가 디폴트에 빠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공화당 하원은 부채 상한선을 상향해 조정받으려면 백악관과 민주당은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것은 물론 건강보험과 환경, 낙태 등에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앞서 워싱턴 정치권이 정면 대치를 하면서 첫 번째 볼모로 잡혔던 것은 연방 정부 폐쇄 사태였다. 그야말로 마지막 순간을 의미하는 11시에 가까스로 타협점을 찾아 연방 기관들이 폐쇄되는 것을 모면했다. 이미 시작되어 절반밖에 남지 않은 2011 회계연도 예산안에서 전년보다 3백85억 달러를 삭감하는데 합의함으로써 연방 기관 폐쇄라는 혼란을 피할 수 있었다. 당초 민주당은 3백30억 달러, 공화당은 4백억 달러는 삭감해야 한다고 맞섰다가 중간선에서 타협한 것이다.

하지만 예산 삭감과 부채 감축 투쟁은 단순한 숫자 싸움만이 아닌 이념과 정책 투쟁이다. 이 때문에 연방 기관 폐쇄와 국가 디폴트까지 불사하며 정면으로 격돌하고 있다. 실제로 공화당 하원 지도부에서 폴 라이언 하원 예산위원장은 예산 협상이 진행되는 도중 민주당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장기 플랜까지 의도적으로 들고 대결 싸움 의지를 불태웠다.

폴 라이언 하원 예산위원장이 내놓은 장기 플랜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무려 6조 달러나 정부 지출을 삭감해 적자를 획기적으로 감축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를 위해 노년층 의료보험인 메디케어 제도를 2022년부터 아예 폐지하고 민간 보험 구입 시 정부가 보조해주는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되, 수혜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67세로 올리는 등 파격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공화당은 이와 함께 지지 기반인 최고 부유층의 세율을 현행 35%를 25%로 대폭 낮추는 등 세제 개혁을 실시해야 한다는 공화당만의 플랜을 제시해 투쟁에 더욱 불을 지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에 밀리지 않고 있다. 오바마는 하원 안과는 정반대로 최고 2개 부유층들의 감세 혜택을 폐지하는 방안을 내놓아 맞불을 놓고 있다. 오바마의 안대로라면 부유층의 세율은 33%는 36%로, 35%는 39.6%로 대폭 올라가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등 두 가지 핵심 의료보험 제도에서도 낭비되는 예산을 최대한 찾아내 절약한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민주·공화 양당이 서로 밀리지 않으려고 투쟁하고 있는 것은 2012년 11월 백악관과 연방 의회 다수당을 결정할 선거를 겨냥해 서로 기선을 제압하려고 하기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전에 일찌감치 ‘올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44대 대통령을 상징하는 날인 지난 4월4일에 내년 대선전에서 재선에 도전하겠다며 공식 출사표를 던졌다. 선거를 19개월이나 남겨두고 일찌감치 출정한 것이다. 민주당은 내년 선거에서 백악관과 연방 상원 다수당을 수성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어느 쪽이 유리해질까

▲ 존 베이너 미국 하원 의장 ⓒAP연합

CBS 뉴스의 분석 결과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은 60%에 육박해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폭스뉴스의 조사에서는 미국민들이 새 대통령을 원한다는 의견이 48%로 나왔다. 현직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44%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 비상이 걸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첫 임기 동안 유권자들로부터 호감을 가질 만한 대통령으로 인식되었지만 결단력 있는 강한 지도자라는 평은 얻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민들의 세금으로 엄청난 돈을 풀었는데도 경제 회복 속도는 더디다는 불평을 사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 하원과 벼랑 끝 대치를 하다가 막판에 타협하고 또다시 공격적인 방안을 내놓아 싸움꾼으로 변신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취약점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2012년 미국의 선거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누가 될지, 어떤 바람을 일으킬지에 따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접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공화당은 2010년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어 하원을 탈환한 데 이어 2012년 선거에서는 연방 상원 다수당 자리와 나아가 백악관까지 빼앗아 오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의 모든 정책 추진과 힘겨루기는 오바마 정책을 뒤집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유일한 개혁 성과인 헬스케어 개혁법을 공식적으로 시행하기도 전에 폐기시키려 시도하고 있고 오바마 핵심 정책의 예산 깎기, 공화당만의 정책 제시로 싸움을 걸고 있다.

지금까지 벌어진 1라운드 예산 투쟁의 승자는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 정부의 문을 계속 열면서도 역사적으로 최대 규모의 예산 삭감을 양당 합의로 추진하게 되었다”라며 마치 승자처럼 행동했지만 사실상 패자나 다름 없다. 반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자신이 계획했던 당초 올 예산에서 7백85억 달러나 삭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화당이 다리 걸기만으로는 유권자 표심을 잡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현재 공화당 지도부나 잠재적 대통령 후보들 중에서는 바람을 일으킬 조짐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재선에 유리하게 작용할 호재들이 있다. 역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경제 회복세, 특히 일자리 문제의 해결이다. 최근 들어 일자리 문제에 청신호가 켜져 오바마 재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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