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 ‘증명서’
  • 조 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1.04.11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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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에 대한 한국의 ‘실효적 지배’ 확인시키는 기록 펴내

 

▲ 여기는 독도|전충진 글·사진| 이레 펴냄|352쪽|1만5천원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니, 땅이 미쳐 날뛸 일이다.” 신라 장군 이사부나 독도 지킴이였던 조선의 어부 안용복이 이렇게 말하며 지하에서 혀를 차고 있는 것 같다.

‘저런 일본’을 더 이상 돕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성토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지난 4월7일 밤 일본에서 규모 7.4의 강진 소식이 또 들려와 심란하게 했다. 더 이상 지진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데, 일본의 별종들 몇 무리가 화를 자초한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사람 대다수는 독도 문제와 별 상관없이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니 가수 김장훈의 말처럼 “일본 돕는 것은 휴머니즘이고, 독도는 독도다”라고 ‘쿨’하게 선을 분명히 긋고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독도 문제와 관련해 우리의 대응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한때의 구호만 요란할 뿐 실천하는 것도 별로 없고, ‘뜨거운 가슴’도 금세 식어버린다. 일본이 대대적인 공세를 펴는 것과 달리 우리의 목소리는 파도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는 표현이 걸맞다. 시설 보수 외에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도 눈에 띄지 않았다.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 정책이 어디 있었는가.

이렇게 지적이란 것이 별것도 아니다. 일관되게 외치라는 것이다. 행동으로 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김장훈의 독도 콘서트가 돋보이고, 전충진이라는 사람이 독도에서 1년을 현지인처럼 살며 기록한 <여기는 독도>라는 책이 눈길을 끄는 것이다. ‘독도가 왜 한국 땅인가’라고 물으면 곧바로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여기는 독도> 같은 책들은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에 맞서는 우리의 ‘독도 교과서’인 셈이다. 

이 책은 ‘독도는 대한민국의 실효적 지배하에 있는 유인도’임을 증거하는 최초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 저자는 본적지를 독도로 옮긴 뒤 2008년 9월부터 2009년 8월까지 1년간 독도에서 상주하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한국인을 위해 독도 ‘현장 르포’를 작성한 것이다. 저자는 “동해의 독도가 어처구니없는 분란에 싸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옛날의 사람들은 독도에 어떻게 갔고, 무엇을 보았고, 그곳에서 무슨 고기를 잡아 어떻게 회를 쳐 먹었는지 등등이 기록으로 남아 있었더라면 이런 험한 꼴은 당하지 않을 텐데 하는 그런 안타까움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는 어떤가? 독도에 대한 그런 현장 기록들이 있는가? 과문의 탓인지 모르겠지만, 독도가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 살림의 터를 잡고 일상을 영위하는 땅임을 증빙할 만한 오늘날의 현장 기록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라고 ‘이주’ 경위를 설명했다.

요란한 구호와 떠들썩한 주장만으로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가 될 수 없다. 우리 조상의 누군가가, 또 지금의 누군가가 분명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해왔고, 또 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하려 독도로 갔던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는 독도를 ‘독도’라고도 ‘다케시마’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프랑스 선박 리앙쿠르 호가 발견했다고 ‘리앙쿠르 암’이라고 부른다. 유인도로 인정하지도 않고 심지어 ‘섬’도 아닌 ‘암석’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교과서에서 ‘일본 땅’이 된 마당에 독도를 지켜 내는 일은 이제 논리만으로는 안 된다. 논리보다 더 꼼짝 못하게 할 무엇이 필요하다. ‘독도는 한국인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것을 육필로 기록한 이 책이 그 ‘무엇’이 아닐까 한다.  

 



ⓒ말글빛냄 제공
체제가 다르고 이념이 다른 두 강대국의 정상이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된 것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각 나라의 국민을 대변하는 그들이 노련한 외교술과 결단력을 발휘해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국민 눈치를 보아야 하고 측근들에게 끌려다니다시피 하는 지도자들이 많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영화배우 출신이어서일까. <위대한 협상: 세계사를 바꾼 8개의 협정>(프레드리크 스탠턴 지음 / 말글빛냄 펴냄) 중에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옛 소련 서기장이 핵무기 감축 협상을 성공시키는 과정은 영화를 보는 듯 극적인 장면들의 연속이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두 강대국 정상들은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냉전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87년 말,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ABM(탄도탄 요격 미사일) 금지 조약에 서명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핵무기들의 파기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당시 소련은 1천5백개가 넘는 핵탄두를 철거한 뒤 파기했고, 미국도 곧이어 약 4백기의 미사일과 2천여 개의 핵탄두를 철거한 뒤 파기했다.

소련은 핵탄두의 숫자에서 미국보다 4배가 많았는데도 파기하기로 동의했다. 검증 규정은 엄격했다. 모든 무기의 재고도 철저히 파악하고, 현장 검증과 근접 조사 그리고 미사일 생산 공장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를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서명이 끝난 뒤, 고르바초프는 “우리가 성취한 것은 바로 희망의 부활”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4년 뒤 한 발짝 더 나아가 전략무기 감축 협정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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