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먼길 돌아 국회에 가나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1.04.0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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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위해 6백km 걷고 있는 이진섭·균도 부자의 ‘균도와 걷는 세상 이야기’ 동행 취재

모처럼 봄날의 기운이 만연했다. 눈이 시리게 하늘은 파랬고 햇볕은 따뜻했다. 걷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3월30일, 이진섭-균도 부자는 경북 문경시청을 출발하며 워킹화의 끈을 조여맸다. 오늘은 문경온천까지 가야 한다. 문경온천까지 가는 3번 국도는 거의 고속도로나 다름없다. 부자가 나란히 손을 잡고 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도로이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을 옆으로 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어쩌면 지방도로 돌아갈 것도 고려해야 했다. 그럴 경우 이들 부자의 이동 거리는 20km 이상이 될 수도 있다.

▲ 3월30일 발달장애 아들인 균도(왼쪽)와 아버지 이진섭씨가 부산-서울 간 도보 행군을 위해 문경을 지나고 있다. ⓒ시사저널 전영기

지난 3월12일 이진섭 부산장애인부모회 기장·해운대지부장은 아들 균도(18)와 단둘이서 부산을 출발했다. 열여덟 살,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된 균도는 발달장애인이다. 자폐성 장애 1급 진단을 받았다. 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뇌병변장애 등을 아우른다. 이들 부자는 4월20일 ‘세계 장애인의 날’에 맞추어 서울 국회의사당에 입성하는 것을 목표로 부산에서 서울, 거리로 6백여 km를 걷기로 했다. 비장애인도 하기 어려운 시도였다. 이씨는 “우리 둘 다 이번에 걷기 전까지는 운동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일종의 모험에 가까웠다.

이씨와 균도는 ‘균도와 걷는 세상 이야기’라는 이번 여행의 테마가 적힌 조끼를 입고 여행 중이다. 이번 장시간 여행이 균도에게는 진정한 첫 세상 나들이이다. 문경까지 왔으니 도보로 이동한 거리가 이미 3백km를 넘었다. 절반 이상 온 셈이다.

이들 부자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문경온천으로 향하는 길을 기자도 함께 걸었다. 출발할 때보다 훨씬 까맣게 탄 균도와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넸다. 어떻게 첫마디를 던질까 잠깐 고민했다.

“많이 탔네?” 그다지 반응이 없다. 오히려 명함을 이리저리 만지던 균도가 “옹~”이라고 말한다. 옹? 옆에서 아버지가 거든다. 균도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옹’이란다. ‘좋아하는 음절’이라고 하는 것이 적확한 표현일 듯하다. 균도는 발음이 재미있는 단어를 좋아한다. ‘옹’ 말고도 그런 단어는 더 있다. ‘고들빼기’나 ‘소대가리’도 균도가 사랑하는 단어이다. 걷는 동안 기자도 균도와 함께 ‘소대가리’ ‘고들빼기’를 외치며 함께 걸어갔다.

균도는 태어날 때 양수와 태변을 흡입해 순간적으로 호흡이 막히는 사고를 겪었다. 일시적인 무호흡은 뇌손상의 원인이 되었고 발달장애로 이어졌다. 이씨와 그의 아내 박금선씨(45)는 뇌손상 때문에 찾아올지도 모를 아들 균도의 장애에 대해 애초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보통 장애 어린이가 있는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은 여성의 몫, 특히 엄마의 몫이다. 아버지는 한 발짝 물러서 있는 가정이 적지 않다. 이씨도 처음에는 그런 아빠였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났다. 균도가 열 살 때 학교 친구들의 강압으로 지렁이를 먹고 오는 일이 생겼고, 그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바꿔 먹었다. “내가 학교에 가서 항의를 했다. 엄마가 가는 것보다 아빠가 나서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인 것 같더라. 그 일을 계기로 내가 좀 더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 문제는 아빠가 책임져야”

▲ ‘장애아동복지지원법 통과를 위한 걷기 여행’에 나선 이진섭씨가 지난 3월30일 경북 문경시를 지나던 중 아들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고 있다. ⓒ시사저널 전영기

이씨는 걸어가며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줄곧 강조했다. “아이들 문제는 모른 척만 할 것이 아니라 아빠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아빠가 바뀌면 금방 바뀔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부산에서 문경까지 올라오는 길에서도 그것을 느꼈단다. 지역마다 발달장애 어린이 지원책이 조금씩 달랐다. 이씨는 “아빠가 나서는 지역은 다른 곳보다 지원책이 그나마 잘 되어 있다. 아빠가 나서야 정책과 연계도 잘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뒤따라오는 균도가 염려되었다. 차들이 빠르게 오가는 3번 국도는 위험천만했다. 이씨는 괜찮다고 했다. “여덟 살 때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난 뒤 차에 대한 무서움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라고 했다. 균도는 몸으로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머리로 기억하는 능력도 비상하다. 마치 영화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을 연상케 한다. 버스정류장 벤치에서 잠깐 쉬던 중 균도가 갑자기 물었다. “아저씨, 몇 년생이야?” “1978년생.” 균도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아빠는 용띠, 균도는 원숭이띠, 아저씨는 말띠.”

이씨는 균도의 장기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균도야, 모차르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지?” “1756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균도는 시인 이상이 언제 태어났고 사망했는지, ‘칠성사이다’와 ‘코카콜라’가 몇 년에 나왔는지도 줄줄 외우고 있다.

이씨는 “균도는 그나마 좀 나은 상태이다”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일찍 교육을 받아서다. 균도에게 드는 교육비는 생각보다 많았다. 균도가 2~6세 때 들어간 교육비가 어림잡아 1억원이었고, 초등학교 때 약 5년간 들어간 돈 역시 1억원 정도였다.

정부가 제공하는 장애 어린이에 관한 지원은 매우 제한적이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인 경우에만 치료비를 전액 지원해준다. 월평균 소득 100% 이상인 가구는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전형적인 선별 복지이다. 부자는 돈으로 치료하고 가난한 이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 치료한다. 반면 중산층은 지원을 받지 못해 과중한 경제적 부담을 지며 어려움을 겪는 일이 다반사이다. 발달장애 어린이가 언어 치료, 놀이 치료, 운동 치료 등을 받으려면 한 달에 어림잡아 1백50만~2백만원 정도가 든다. 이씨는 “아동복지법은 비장애 아동 위주이고, 장애인복지법은 성인 장애인이 중심이다. 장애 아동은 여기도 저기도 끼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발달장애 어린이의 부모들은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이 통과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보편적 지원책을 원하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국회의원 1백21명이 이 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계류 중인 상태이다. 이번 4월 임시국회에서도 통과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발달장애인 지원법’은 발의조차 안 돼

균도에게 가장 필요한 법인 ‘발달장애인 지원법’은 아직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2009년 기준으로 등록된 우리나라 장애인 인구는 2백42만여 명. 그중 발달장애인은 대략 16만여 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7% 정도이다. 가족까지 합칠 경우 대략 50만~60만명이 영향권 내에 든다.

이씨는 균도를 바라보며 발달장애인 지원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경까지 오는 길에 만났던 각 지역 공무원들에게 “지원법이 안 되면 지역에서 조례라도 만들어 부모들을 도와달라”라고 말했지만 대부분 “상위법이 없어서 힘들다”라는 대답만 해왔다. 균도의 사지는 멀쩡하지만 사회성 부족으로 부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신체장애인은 노동력이 일부분 상실되는 것이지만 발달장애인은 100% 상실이나 다름없다. 이씨는 “이 아이들이야말로 사회에서 가장 약자이다”라고 말했다.

균도가 배가 고프다고 투정을 부렸다. 점심 식사 시간이 살짝 지난 때였다. 식당을 찾다 문경 레일바이크 출발지인 진남역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주인 아주머니가 균도의 조끼에 쓰인 문구를 보고 관심을 보였다. 이씨는 균도와 함께 걷는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다. 이씨는 사람 많은 식당으로 균도를 데리고 다니려 한다. 균도가 식당에서 시끄럽게 하는 경우가 있지만 오히려 붐비는 시간을 택해 식사를 한다.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우리 균도 같은 애가 해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니까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조금 힘들더라도 감수해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느덧 20km를 넘게 걷고 있었다. 저 멀리 문경온천의 숙박업소들이 보인다. 균도는 “아빠, 다리 아파. 다리 아파”라며 투정을 부렸다. 물집도 여러 번 터졌고 지금쯤이면 걷기에 익숙해졌을 법도 하지만 아직 균도에게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이씨는 균도의 한계가 20km쯤이라고 했다.

이진섭-균도 부자는 힘들어도 앞으로의 여정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이씨는 또 균도가 고맙다고도 했다.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균도가 자랐다는 것을 느꼈다. 말도 잘 듣고 나하고 같이 가자고 하면 잘 가고. 고마울 뿐이다. 균도는 기억력이 좋으니까 아빠하고 여행한 곳을 기억하지 않겠나.” 균도는 이씨가 “집에 갈래?”라고 물으면 “아니, 서울!”이라고 답한다.

걸어오며 이번 여행이 가진 무게도 새삼 깨닫고 있다. 오는 길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부모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이들 부자의 도보 여행을 응원하고 기다리며 환대해주었다. 이씨는 “다른 장애 어린이 부모들의 염원이 담겨 있으니까 올라가고 있다. 내 의지보다는 부모들의 의지를 받아서 가는 것이니까…”라고 곱씹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제 절반 정도 왔다. 그동안 아버지는 살이 빠졌고 아들의 얼굴은 까맣게 탔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발달장애인 문제를 세상에 알리며 3월30일 하루 동안 이들 부자가 걸은 거리는 25km 정도였다. 이진섭-균도 부자는 서로 ‘고들빼기’ ‘소대가리’를 외치며 오늘도 북쪽으로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다.


우선순위 다툼에서부터 밀려…예산 문제도 걸림돌
장애인 관련 법안, 왜 통과가 더딜까?


4월20일 세계 장애인의 날이 곧 다가온다. 정당들이 장애인 관련 공약이나 정책을 연례행사처럼 제시하는 날이다. 하지만 실제 18대 국회가 장애인 관련 법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살펴보면 이런 정당들의 노력은 일회성 행사와 다름없어 보인다.

의안정보시스템에 ‘장애인’이라는 검색어를 넣어보자. 3월30일 현재 1백31개의 관련 법안이 뜬다. 이 중 원안 혹은 수정안대로 처리된 것은 12건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대다수는 계류 중이다.

왜 이렇게 처리된 법안이 적을까. 일단은 다른 법안과 우선순위 다툼에서 밀린다.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가장 뜨거운 법안은 보건의료 관련 법안이다. 그만큼 보건의료계의 로비도 막강하다. 보건복지위 소속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2월 임시국회 때만 보아도 복지부가 장애인 관련 법안보다는 의약 및 제약 관련 법안들의 통과에 관심을 보였다”라고 말했다.

예산 문제도 걸림돌이다. 장애아동복지법안을 대표 발의한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실의 관계자는 “우리 입장은 강제 상정을 시켜서라도 빨리 진행하자는 쪽이지만 법을 통과시킬 경우 기획재정부와 예산 문제를 협의해야 된다. 제도 도입에 대해서는 복지부도 찬성하는데,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라 천천히 했으면 하는 입장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부 법안의 경우에는 장애인 단체의 내부 문제가 지적되기도 한다. 아직 발의조차 되지 않은 ‘발달장애인지원법’의 경우 일부 신체장애인 쪽에서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고 한다. 예산은 정해져 있는데 발달장애인 지원에 투입될 경우 신체장애 쪽 예산이 줄어들 우려 때문이다. 파이는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나눠먹어야 할 대상이 늘어나자 반감이 생기는 경우이다. 한목소리로 외쳐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처럼 갈라진 목소리가 도움이 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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